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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난민] 모든 사람이 안전할 때까지

박상훈SJ 121.♡.226.2
2026.09.03 17:03 4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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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로힝야 학살 9주기를 맞아 로힝야 난민과 연대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영화 로스트 랜드상영회를 열었다. 영화는 누나인 소미라와 동생 샤피가 방글라데시에 있는 로힝야 난민 캠프를 떠나 삼촌이 사는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수 천 킬로미터의 여정을 담고 있다. 풍랑과 더위와 목마름을 견뎌가며, 배는 태국 남부 어느 해안에 도착한다. 그런데 여기까지 그냥 온 게 아니다. 탈출 경로마다 현지 브로커들이 돈을 갈취한다. 돈을 못 내면, 때려서 살해한다. 태국 국경 마을에서도 마을 주민들이 호의를 베풀며 도와주는 듯했지만, 결국 브로커에게 난민들을 팔아넘겨 버린다.

 

강제 이주와 생존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은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무궁화가 피었습니다노래를 부르며 숨바꼭질을 한다. 폐가 안에서 울려 퍼지는 아이들 웃음소리는 깊은 어둠을 뚫고 조금씩 번져 나오는 연한 빛과도 같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으려고 한다. 이런 순간은 단순히 휴식이 아니라, 아이들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복원력과 다름없다. 아이들은 아늑했던 과거의 기억과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창의적인 생존 방식을 통해, 점차 자신들 전체를 빼앗으려는 세계에 맞서 우리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에서 아동 심리치료를 했던 어느 의사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만약 내가 어느 낯설고 위험한 장소에 제멋대로 던져졌다고 생각하면,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누구도 환대하지 않는 곳에서 도대체 한순간이라도 버티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난민에게는 아주 특별한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니지만, 그 상태를 견뎌내는 역량이다. 혼란스럽고 취약하며 공포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지만, 여전히 경이로움의 순간들을 보는 시선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인간으로 바라보기를 거부하는 세상에 대항해, 여전히 인간다운 삶을 이어가는 질긴 회복력을 품어야 한다. 소미하와 샤피의 웃음소리가 그런 것이었다.

 

올해는 1951년 제네바 난민협약이 체결된 지 75년 되는 해이며, 기념하는 주제는 모든 사람이 안전할 때까지. 세계의 난민은 흔히 규모와 숫자로 집계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을 아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말까지 11,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떠나야 했다. 이 가운데 3,000만 명 이상이 난민이었다. 그러나 통계 뒤에 전쟁과 박해와 굶주림을 피해 떠나온 사람들의 인간적인 얼굴과 가족, 그리고 그들이 품고 온 이야기가 있다. 난민에게는 백만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난민협약은 갈수록 무력화되면서, 인간의 가치를 유용성과 시민권 안으로 구겨 넣는 비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난민은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번영과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취급된다. 그들의 얼굴과 삶의 이야기를 지우고, 마치 물건처럼 국가와 수용소 사이로 떠넘긴다. 이런 비인간성은 결국은 단절과 편견, 적대감과 폭력을 확산시킬 뿐이다. 레오 교황도 우리가 참으로 인간으로 남아있으려면사람을 타자화하며 두려움에 굴복하는 태도에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두려움과 배제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한다(고귀한 인류, 14-5).

 

몇 년 전 로힝야 난민 캠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먼지로 뒤덮인 벌판에 빽빽하게 붙어있는 움막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서울의 안온한 집에 사는 것과 로힝야 난민 캠프의 움막에 있는 것은 한마디로 우연에 불과하다. 누가 꼭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란 하나도 없다. 우리 모두는 가장 깊은 뜻에서, 있어야 하고 속해야 하는 곳을 여전히 탐색하고 있는 유민이다. 쫓겨난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우리가 정작 있어야 하고 속해야 하는 곳을 찾도록 도와준다. 이것이 아니라면 어떤 다른 인간의 행로가 있을지 궁금하다.


 

미얀마의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는 오랫동안 차별과 폭력에 시달렸다. 1982년 시민권을 박탈당해 모두 무국적자가 되었다. 2017년 8월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족이 살고 있던 라카인 주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여두 달 사이에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유엔은 이 사태를 집단학살로 규정했다현재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에는 110만 명이 넘는 로힝야 난민들이 있으며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촌이다아직도 미얀마에는 60만 명이 넘는 로힝야족이 뿌리 깊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다.


 

박상훈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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