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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물과 성스러움

박상훈SJ 121.♡.226.2
2026.08.25 16:57 5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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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북부와 캐나다 서남부를 가로지르며 컬럼비아강이 흐른다. 2000년대 들어 강 유역에는 한 세기에 걸친 무분별한 벌목과 광산 개발, 방목, 댐 건설로 위험한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두드러진 피해 사례는 연어였다. 연간 약 1,600만 마리에 달했던 연어의 회귀 개체 수가 70만 마리로 급감했다. 지역의 가톨릭 주교들은 「컬럼비아강 유역: 현실과 가능성」이라는 사목 서한을 발표하며 위기에 빠진 강의 실상을 알렸다. 주교들은 컬럼비아강 유역을 ‘성사적 공유지’라고 부르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성스러움을 복원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성스러움

 

생명의 물인 세례의 물과 연어가 살아 있는 강물은 하나이다. 이 연결은 성사적이다. 영혼을 구하는 일과 연어를 구하는 일은 똑같이 성사적인 일이다. 성스럽다는 것은 경외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성스러운 것들 앞에 서면 우리는 그 존재의 탁월함에 경탄한다. 만약 성스러움을 잃게 되면 두려움과 충격에 빠지며, 성스러운 것이 훼손될 때에는 분노하고 모욕감을 느낀다. 성스러움과 만나면 언제나 강렬한 도덕적 감정이 작동한다. 한강이 파헤쳐 지고, 수라 갯벌이 매립되고, 풍천리의 잣나무 숲이 잘려나갈 광경을 떠올려 보라. 성스러움에 대한 도덕적 감각은 어떻게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가? 만일 지구가 하나의 성사라면, 우리는 지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물의 역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사실 땅의 행성이 아니라 물의 행성이다. 지구 표면의 74%는 물이며, 물의 97%는 바다이다. 그 바다에서 약 30억 년 전, 생명이라는 경이 자체가 처음 출현했다. 30억 년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의 피 속에 흐르고 있다. 피와 눈물 속의 염분은 바다의 염도와 비슷하며, 우리 몸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구와 거의 같은 70%이다. 더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생명 탄생의 가장 극적이고 결정적인 아홉 달을 소금기를 머금은 물속, 어머니의 자궁에서 보낸다. 이 모든 것이 참으로 신비롭다. 우리는 바다에서 태어났고, 바다를 우리 안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우리는 또한 바다를 호흡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바다의 한 식물 덕분이다. 공기의 상당 부분을 해양 식물성 플랑크톤이 만들어 낸다. 이들은 태양을 ‘먹는’ 방법을 아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무기물을 유기물로 바꾸고, 광합성을 통해 태양빛을 에너지로 전환한다. 자연이라는 생명의 ‘복지 체계’에 의존하는 모든 존재에게 먹이를 공급할 뿐 아니라, 숨 쉬는 데 필요한 산소와 수증기를 대기로 방출한다. 우리가 내쉬는 이산화탄소를 바다가 들이마시고, 바다가 내쉬는 산소를 우리가 들이마신다. 우리가 숨 쉬듯 지구도 숨을 쉰다. 바다가 기능을 잃으면 우리도 사라진다.

 

 

물의 현재

 

2024년 전 세계 담수 취수량은 4,300㎦에 이른다. 1950년과 비교하면 세 배 이상 늘어났고, 매년 1%씩 증가하고 있다(「UN 세계 물 개발 보고서 2024」, 10쪽). 그런데도 “21억 명은 여전히 안전한 식수를 구하기 어렵고, 이는 세계 인구 4명 중 1명에 해당”한다. 기후변화와 물 부족으로 “지난 50년 사이 담수 개체군은 무려 85%, 해양 개체군은 56%나 감소”했다(「2026년 창조시기 기념 안내서」, 14쪽). 인간은 담수의 거의 절반을 소비하며, 나머지 절반은 생물권 전체가 사용한다. 가난한 이들, 미래 세대, 그리고 나머지 생물권은 이런 과잉으로 정당한 몫을 빼앗기고 있다. 

 

사실 우리가 물을 소비하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면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에는 2,900리터의 물이 필요하고, 생수 한 병은 수돗물보다 2,000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생수 한 병을 만드는 데 그 병의 4분의 1만큼 석유를 소비하는 셈이니, 실제로는 그만큼 탄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물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물을 변화시키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 상태를 바꾼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물과의 상호작용이며, 그 과정에서 지구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킨다. 기후변화의 핵심 매개체는 물이다. 특히 바다의 온도가 대기의 활동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해양 온난화는 물 순환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습한 지역은 더욱 습하게, 건조한 지역은 더욱 메마르게 만들고 있다.

 

물 순환과 같은 비선형 시스템에서는 평균기온이 1~2도 상승하는 것만으로도 연쇄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전혀 새로운 힘이 작동하기 시작하며, 그 결과는 처음의 원인에 비해 훨씬 더 큰 규모로 나타난다. 생명은 한순간에 균형을 잃고 추락할 수 있다. 인간이 물과 공기에 끼친 변화 때문에 미래는 훨씬 불확실해졌다.

 

 

물의 윤리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이 세계가 ‘생명의 그물’로 엮인 성사라는 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감각이 없다면 물과 공기를 윤리적 세계 안으로 불러낼 수 없다. 만일 물조차 성스럽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성스럽다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거의 없다. 모든 건강한 윤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먼저 설명한다. 지금 우리에게 물은 무엇인가? 현대 사회에서 물은 세계 경제의 무질서한 성장에 봉사하는 자원이며 상품이다. 플라스틱에 담겨 쌓여 있는 물이나 데이터센터로 들어가는 용수는 상품이자 자원이지, 성사적 존재가 아니다. 성스러움의 의미를 상실하면 우리의 윤리 감각도 변한다. 물은 그저 물일뿐이다!

 

그러나 성사적 감각은 전체를 ‘온전하게’ 바라보게 하는 능력이자 은총이다. 물은 단지 기술과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다. 물은 인간이 만든 세계를 위한 자원만이 아니라, 신비가 드러나는 매개체이다. 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생명이다. 물은 경외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의 놀라움과 아름다움 앞에서 성사적 경외의 마음을 새롭게 회복하는 일이다. 인간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충족할 방법을 찾는다. 그렇다고 해서 바다와 강, 땅과 공기를 파괴하고 황폐하게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상품화된 세계를 성스러움과 다시 만나게 하는 일이야말로 창조세계의 회복이다.

 

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우리 자신을 ‘성사로서의 세계’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거룩한 신뢰’의 마음으로 창조세계를 돌볼 수 있다. 경제와 기술의 폭력적인 발전으로 인간이 지구 생명의 자연스러운 규모와 리듬으로부터 소외된 시대에, ‘성사적 세계’에 대한 각성이 ‘창조시기’의 피할 수 없는 소명일 것이다.

 

 

박상훈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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