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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근데 이래도 정말 괜찮을까?

조현철SJ 121.♡.226.2
2026.04.14 15:03 8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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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얼마 전 집 근처 정릉시장 쪽으로 산책하러 갔다가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떨어진 게 생각나 근처 마트에 들러 20L짜리 한 묶음을 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아주머니가 내 손에 든 봉투를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근처 마트는 동이 났다며. 산 데를 알려주자 당장 사야겠다며 부리나케 가버렸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에 맞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자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일어났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를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의한 액화천연가스(LNG) 파동을 합친 수준으로 평가했다. 아시아만 해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가 에너지 배급제와 휴교령을 시행했고 필리핀은 에너지와 관련하여 세계 최초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비상 상황으로 피해는 전방위적이다. 당장 농사철을 맞은 농촌은 부직포와 비닐 등 농자재를 구할 수 없어 발을 구르지만, 아껴 쓰는 것 외에는 별로 뾰족한 대책이 없다.

 

요즘 뉴스에서 에너지 절약이라는 말을 종종 접하는데 처음에는 조금 생경했다. 언제부턴가 절약은 듣기 힘든 말이 됐고 우리는 소비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한때는 절약이 일상이었고 무엇이든 아껴 쓰는 게 미덕이었다. 그런데 경제성장이 지상 과제가 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성장하려니 생산을 늘려야 했고, 생산이 늘어나니 소비를 늘려야 했다. 그렇게 절약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왔다.

 

이번 중동전쟁은 한동안 잊혔던 절약을 소환했다. 일본 교토의 한 목욕탕은 온수 절약 안내문까지 내걸었다. 에너지 비상사태로 우리나라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전량을 수입하면서도 우리는 돈만 주면 원유와 가스를 언제든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쟁이 그건 착각이라고 일러줬다. 지구에서 아직 고갈되지 않았다고 해도 자원은 팬데믹이나 전쟁 등으로 자원 수급에 큰 차질이나 실질적인 고갈을 겪을 수 있다. 많은 나라가 코로나19로 얼마간 이런 일을 겪었다. 요즘은 쿠바가 미국의 봉쇄 강화로 석유 기근을 겪고 있다.

 

이번 전쟁이 자원의 한계를 돌아보게 했지만, 사실 자원의 한계는 전쟁과 무관하다. 이 한계는 본디 있던 것으로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한계를 외면했고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물질적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상식을 지속 가능한 성장이나 녹색 성장으로 비켜 갔다. 그러면서 한계가 없는 듯 생산과 소비를 늘려왔다. 여기에는 기술이 한계를 극복한다는 믿음도 한몫했다. 근데 이래도 괜찮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재생 불가능 자원은 계속 채굴하면 언젠가 고갈된다. 석유 생산 정점을 뜻하는 피크 오일진실문제가 아니라 시기문제다. 비용이 많이 들고 가공도 힘든 셰일오일이나 오일샌드 등 비전통적 원유 채굴의 증가는 전통적 원유의 감소 징후다. 어류 남획으로 수많은 어종이 급격히 감소한 것처럼, 재생 가능 자원이라도 초과 이용(overshooting)’, 곧 재생되기 전에 너무 많이 소비하면 생태적 순환에 균열이 일어나 결국 고갈된다. 자원의 고갈을 막으려면 기술 개발보다 절약이 더 중요하다.

 

호모 오일리쿠스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이제 석유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됐다. 우리는 매일 석유를 먹고 바르고 입고 쓴다. 석유 매장량은 유한하고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아도 우리는 석유와 헤어질 결심은커녕 줄일 결심도 하지 않는다. 당장 석유화학산업에서 나오는 이윤도 크고 우리가 석유에 중독된 탓도 있겠다. 우리는 쓰레기봉투가 동날까 걱정은 해도 이참에 쓰레기를 줄이자는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일회용품을 비롯한 플라스틱 사용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늘어나는 추세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근데 이래도 괜찮을까?

 

에른스트 슈마허는 불교 경제학을 제안하며 소박함과 비폭력은 비례한다고 지적했다. 자원이 유한한 세계에서 적은 자원으로 사는 사람들은 많은 자원에 의존하는 사람들보다, ‘자급자족인 지역공동체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제무역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보다 다툴 일이 적다는 것이다. 서로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려 들면 갈등과 분쟁은 불가피하다. 이번 미국의 이란 침공도 올 초 베네수엘라 침공과 그린란드 접수 야욕도 에너지와 광물 확보와 지배라는 미국의 기존 행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 에너지 위기로 우리 삶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 훤히 드러났다. 허약한 체질을 바꾸려면 해외 에너지 의존부터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에너지 전환을 최대한 서둘러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은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에너지 절약도 포함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절약을 할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해외 에너지 의존 감축이 이전과 같은 삶을 지향한다면, 절약은 이전과 다른 삶을 지향한다.

 

유한한 물질세계에서 절약은 일상의 태도라야 마땅하다. 자원이 유한한 세계에서 절약은 궁핍이 아니라 자립과 공존의 의지다. 소비사회에서 절약은 소극적 체념이 아니라 적극적 저항과 전환의 의지다. 마음껏 소비하는 삶은 결국 자기 삶을 소비하고 약자의 삶을 배제한다. 진정한 풍요는 대량생산과 소비가 아니라 소박한 삶으로 이루어진 호혜의 공동체에서 나온다. 에너지 위기를 맞아 어떻게든 이전과 같은 삶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이해가 가도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근데 이래도 정말 괜찮을까?” 지금 하기에는 너무 한가한 물음일까 아니면 지금이야말로 꼭 해야 할 물음일까.

 

 

조현철 신부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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