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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잊혀진 비극을 기억하기

김민SJ 121.♡.226.2
2026.03.26 13:39 1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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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s(Claudia Greco) 


솔직히 말하면 불과 얼마 전까지, 기쁨나눔재단의 석요섭 신부님이 레바논에 긴급지원을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말하기 전까지, 레바논은 나에게 잊힌 상태였다. 2024년 12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고 그가 러시아로 떠나면서, 그리고 시리아에 과도정부가 들어서면서 레바논에 대한 관심은 최소한 내 머릿속에서는 사라졌다. 2023년 6월 예수회 난민기구(JRS) 레바논 지부 댄 코루 신부님이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모금을 위해 한국에 방문해 이야기를 나눈 이후, 그리고 그때 레바논이 나라의 크기에 비해 놀라울 만큼 많은 수의 시리아 난민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후 레바논은 한동안 내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후 1년 6개월, 시리아 내전이 종식되는 듯하면서 레바논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며칠 전, 석요섭 신부님이 댄 코루 신부님이 자신의 폰으로 촬영한 메시지 파일을 건네주었다. 영상에서 코루 신부님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드론과 미사일을 퍼붓고, 지상군이 남부 레바논으로 진입하면서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했다고 다급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날에만 100명 정도의 필리핀, 예멘, 에티오피아, 시리아 난민들이 예수회가 관할하는 베이루트의 한 성당에 몰려들었다고, 그 이유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방공호에서는 레바논인들만 받을 뿐 난민들과 이주민들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성당은 이 정도 숫자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지 않겠냐고, 자기도 이들과 함께 침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미국의 대외원조기금이 삭감되어 이들은 문자 그대로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고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신부님의 목소리 뒤로는 드론과 미사일의 비행 소리와 폭발음이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다.

 

도대체 레바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첫 번째로 든 생각이었다. 이스라엘과 이란, 미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었나? 그리고 왜 아직도 레바논에 난민들이 있는 것일까?

 

난민이 너무 많은 나라

 

이 말은 참 조심스럽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레바논에는 난민이 너무 많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레바논 총인구에서 시리아 난민의 비율이 25%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UNICEF 2025 보고서에는 112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레바논에 거주하고 있다고 쓰여 있다. 유엔아동기금의 통계로는 난민 비율이 20% 정도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너무 많다. 게다가 레바논의 경제 상황이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걸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특히 2019년 이후 레바논의 국내총생산이 20%나 감소하고 환율도 불안정해지며 빈곤율이 70%에 이르는 재앙 수준임을 고려하면 난민들이 레바논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3년 전, 댄 코루 신부님은 레바논에 시리아 난민들이 많은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지리적으로 시리아는 북쪽으로 튀르키예, 남쪽으로 레바논과 맞닿아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언어도 아랍어를 사용한다. 둘째는 레바논 내전 당시 시리아가 많은 수의 레바논 난민들을 품어준 것에 따른 호감도 있다. 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레바논에 시리아 난민들이 대규모로 유입되었다. 레바논 정부도 파격적인 무비자 정책으로 이들을 수용하였다. 

 

댄 코루 신부님은 처음 그 모습에 무척이나 감동받았다고 한다. 난민을 환대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민들의 존재는 언제나 두툼한 청구서를 요구한다. 청구서는 통합(동화가 아닌)이 이루어질수록 두께가 얇아진다. 하지만 난민들을 사회 안으로 통합한다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상당한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그 과정이 없는 상태에서 난민들의 존재는 사회가 감내하기 힘든 짐이 되기도 한다. 댄 코루 신부님은 이를 공동체 주변의 가난한 동네에서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미숙련 노동시장에서 난민들과 가난한 레바논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게 된다. 한때 사회학적 연구에서 이주민들의 노동시장과 현지인들의 노동시장이 크게 겹치지 않는다는 의견이 주류를 형성한 적이 있다. 이 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노동 분화가 고도화된 산업사회에서만 이주민과 현지인 사이의 노동 경쟁이 회피된다. 레바논처럼 경제적 침체가 심화되고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수많은 난민들의 존재는 노동시장에서 잠재적 경쟁자가 되기 쉽고, 내가 먹을 빵을 노리는 경쟁자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레바논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이다. 그나마 튀르키예는 유럽연합에 난민들에 대한 두툼한 청구서를 내놓고 있다. 만약 유럽연합이 청구서에 적힌 금액의 상당수를 입금하지 않으면? 그러면 국경 개방이다. 문자 그대로 난민들을 동유럽에 풀어놓는 것이다. 하지만 레바논은 그럴 수도 없다. 레바논은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레바논에는 수많은 구호기관들이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있다. 일단 레바논의 정치적 상황 자체가 수많은 정파들로 쪼개져 있고, 특히 친이란 조직인 헤즈볼라는 레바논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엔에서는 공식적으로 레바논의 난민들과 이주민들이 사회복지 시스템(비록 부족하고 불안정하지만)에서 배제되어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는 법률적 보호, 건강과 의료, 교육 등 모든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체제에서 배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해서 방공호로 달려간 난민과 이주민들이 입장을 거부당했다는 댄 코루 신부님의 증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다. 이 우산 아래, 그들을 위한 자리는 없는 셈이다. 그래서 국제식량계획(WFP)과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유엔아동기금(UNICEF), 그리고 레바논 적신월사(레바논은 무슬림 국가에 해당되기에 적십자라는 명칭 대신 적신월을 사용함) 등과 같은 국제구호기관들이 난민들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트럼프 위기

 

하지만 작년 트럼프가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거의 폐지하다시피 하면서 수많은 국제구호기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중에는 예수회 난민기구 레바논 지부도 있었다. 미국국제개발처의 활동 범위와 예산 금액은 상당하다. 특히 유엔 인도주의 기관 전체 예산의 30~40%가 미국 정부에서 나왔다. 물론 이것도 이제는 옛말이지만. 예수회 난민기구 레바논 지부의 활동은 생존을 위한 직접 지원도 당연히 포함하지만, 예수회 난민기구의 전통에 따라 난민들의 교육 프로그램에 상당히 주안점을 두는 편이었다. 이 말의 의미는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스태프들의 고용, 기자재의 확보 등의 상당한 재정 지원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년 미국국제개발처의 소멸은 예수회 난민기구 등과 같은 인도주의 단체들에게는 거대한 재앙과도 같았다.

 

물론 미국국제개발처에 대한 냉소적인 견해가 없던 것은 아니다. 중동과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의 인도주의적 참사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병도 주고 약도 주는 꼴이라는 말이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병은 주지만 약을 안 주는 셈이니, 위선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질 나쁜 농담이나 될 것이다.

 

댄 코루 신부님의 아주 짧은 동영상은 큰 여운을 주었다. 비행체의 찢어지는 듯한 소리, 말을 하다가 깜짝 놀라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 그 와중에 댄 코루 신부님은 말을 이었다. “저는 이들과 함께 침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들이 가장 취약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은 나에게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 위에 짊어진 채 고통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의 골고타로 올라가는 시간이다. 아마도 댄 코루 신부님에게 사순은 두려움과 분노, 미칠 듯한 조급함의 감정 속에서 난민들과 이주민들의 곁에 머물며 그들과 함께 떨고, 이 불안한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지금 각자의 사순의 시간 안에 머물고 있다. 

 

누구나 각자의 십자가가 가장 무거운 법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것은 당신께서 우리 모두의 십자가를 짊어지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십자가의 길은 고통의 길이면서 사랑의 길이다. 지금 잊힌 가장 취약한 이들 중 하나인 레바논의 사람들, 이주민과 난민들이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는 것도 어찌 보면 우리가 그토록 걷기를 원하는 십자가의 길이 아닐까.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레바논의 난민들과 이주민들을 위한 예수회 난민기구(JRS)의 활동에 함께하고자 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기쁨나눔재단 레바논긴급구호 캠페인: https://www.gpnanum.or.kr/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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