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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세계 병역거부의 날 성찰 가이드] “전쟁을 거부하는 양심, 평화를 준비하는 용기”

인권연대연구센터 121.♡.226.2
2026.05.14 16:57 43 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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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세계 병역거부의 날 성찰 가이드

“전쟁을 거부하는 양심, 평화를 준비하는 용기”

 

 

맥락

 

2026년 세계 병역거부의 날(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ion Day)을 우리는 전쟁의 그늘이 다시 짙어지는 가운데 맞이합니다.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수단, 미얀마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전쟁과 국가 폭력은 수많은 생명을 빼앗고 있습니다. 전쟁은 우리 이웃들이 마주한 폭격과 피난의 모습으로, 국가 안보와 군비 증강의 언어로, 그리고 일상 속 혐오와 차별, 경쟁과 배제의 감각으로 우리 가까이에 와 있습니다.  

 

모두가 평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정작 적극적으로 평화를 선택하고 실현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자주 비현실적이거나 무책임한 사람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은 여전히 현실적인 지혜처럼 반복되고, 군사력과 무기, 억제와 보복의 논리는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평화를 원하기에 전쟁의 질서를 거부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병역거부는 단순히 군대를 가지 않겠다는 개인적 선택을 넘어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더는 협력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는 오랫동안 의심과 낙인, 처벌의 언어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오랜 노력 끝에 2020년 대체복무제가 시작되었지만,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가 온전히 존중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현행 대체복무제는 36개월 교정시설 합숙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복무 기간과 방식, 심사 구조와 사회적 낙인에서 여전히 징벌적 성격을 지닌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또한 대체복무가 병역 제도 내부에 위치한 또 다른 국가복무로 작동한다면, 그것은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충분히 존중하기보다 기존 병역 체계의 규율 안으로 다시 편입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군 복무뿐 아니라 현행 대체복무제까지 거부하며, 전쟁과 군사주의의 구조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더 깊은 질문 앞에 세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선택은 쉽지 않습니다. 법적 처벌, 생계의 위협, 가족과 공동체의 걱정,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움 때문에 병역거부는 우리 사회가 평화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묻는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평화를 향한 양심의 결단은 국가나 사회가 함부로 판단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양심이 공동선을 향해 어떤 다른 길을 열 수 있는지 함께 물어야 할 것입니다.

 

폭력의 질서가 아닌 생명과 돌봄의 질서로 공동체를 섬기려는 젊은이들의 적극적 평화 실천으로 병역거부를 바라보고, 세계 곳곳에서 징병과 전쟁, 점령과 내전, 군사주의와 국가 폭력 앞에서 양심을 지키려는 젊은이들을 기억하며, 2026 세계 병역거부의 날(5월 15일)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성경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 마태 5,9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 마태 26,52

 

 

성찰

 

병역거부는 “아니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아니오”는 단순한 부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예”이며, 폭력의 명령보다 더 깊은 부르심에 응답하려는 양심의 언어입니다. 병역거부자는 국가와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길 앞에서 멈춰 서서 묻습니다. 정말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가? 정말 안전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서에 참여해야 하는가?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폭력 앞에서 결코 무력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힘은 상대를 제압하는 힘이 아니었습니다. 체포의 순간 베드로가 칼을 들었을 때, 예수님은 그 칼을 다시 칼집에 넣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폭력을 피하라는 윤리적 조언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오지 않는지를 보여 주는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강제와 공포, 살상과 보복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병역거부의 양심은 복음의 중심과 깊이 닿아 있습니다. 그것은 폭력을 모른 척하는 순진함이 아니라, 폭력의 논리를 끝까지 직시한 뒤에도 그 논리에 자신을 맡기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평화를 말하면서도 전쟁을 준비하고, 생명을 말하면서도 살상을 훈련하며, 안보를 말하면서도 누군가의 생명을 도구로 삼는 세계 속에서 병역거부자는 온 몸으로 묻습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습니까?

 

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습니다. 전쟁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적대감, 혐오, 차별, 두려움, 무관심 속에서 준비됩니다. 마찬가지로 평화도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평화는 누군가 먼저 폭력의 언어를 멈출 때, 누군가 명령보다 양심을 따를 때, 누군가 전쟁의 질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할 때 조금씩 준비됩니다. 병역거부는 평화를 기다리는 태도가 아니라 평화를 준비하는 구체적 행동입니다. 병역거부는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 문화, 언어, 침묵에 우리는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평화가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시간과 삶을 통해 선택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길임을 드러냅니다.

 

병역거부는 군 복무를 한 이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누구도 폭력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깊은 탄식입니다. 군대 안에서 고통받는 젊은이들, 전쟁터로 내몰리는 사람들, 명령과 복종 사이에서 양심의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이들 역시 평화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병역거부는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폭력의 질서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호소입니다.

 

현행 대체복무제에 대한 질문도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대체복무가 양심을 존중하는 제도라면, 그것은 처벌의 변형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한 다른 섬김의 길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체복무가 지나치게 길고 제한적이며 군사 행정의 논리 안에 머문다면, 그것은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고 의심하는 방식이 되고 맙니다. 양심을 존중하는 사회는 “얼마나 더 벌을 줄 것인가”, "얼마나 공평하게 고통스러운가"를 묻는 사회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평화를 만들 것인가”를 묻는 사회일 것입니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공동선은 단순히 국가의 존속이나 질서 유지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공동선은 인간의 존엄, 생명, 정의, 평화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국가 방위가 언제나 공동선과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전쟁이 민간인 피해와 구조적 폭력, 군사 산업과 적대의 논리를 확대하고 있다면, 그 체계에 협력할 것인지 묻는 양심의 질문은 공동선을 해치는 질문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선을 더 깊이 묻는 질문이 됩니다.

 

그리고 병역거부자는 이 질문을 자신의 몸으로 살아냅니다. 그는 공동체를 향해 등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가 다른 방식으로 안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의무를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폭력에 기대지 않는 다른 시민적 의무를 수행하려는 사람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사회적 약자와 배제된 이들의 안전망이 되는 공동체를 위해,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병역거부의 날은 우리에게 병역거부자를 바라보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양심을 바라보라고 초대합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전쟁과 군사주의의 질서에 익숙해져 있습니까? 나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어떤 폭력은 필요하다고 쉽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양심을 따른 이들이 치르는 대가 앞에서 얼마나 함께 서 있습니까?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오늘도 전쟁과 징병, 국가 폭력 앞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감옥에 갇히고, 어떤 이들은 고향을 떠나며, 어떤 이들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배척당합니다. 그들의 외로운 선택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전쟁은 누구의 참여로 지속되는가? 평화는 누구의 거부로 시작되는가? 병역거부의 날, 전쟁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전쟁의 북소리에 묻히지 않도록, 그들의 결단이 처벌이 아니라 평화를 향한 공동체의 질문이 되도록, 함께 기억하고 말하며 행동하기를 청합니다. 

 

 

 

질문

 

1. 나는 전쟁과 군사주의를 나의 삶과 무관한 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일상 속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폭력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2. 평화를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폭력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쉽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요?

3. 전쟁과 징병, 국가 폭력 앞에서 신념을 지키려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위해, 오늘 내가 드릴 수 있는 기도와 연대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기도

 

평화의 주님,

전쟁을 거부하는 양심으로

어려운 길을 걷는 젊은이들을 기억해 주소서.

징병과 전쟁, 감옥과 추방, 조롱과 낙인 앞에서도

생명의 편에 서려는 이들을 지켜 주소서.

 

사랑이신 주님,

그들의 두려움 곁에 머물러 주시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위로를 주소서.

그들의 결단이 외로운 저항으로만 남지 않고

우리 사회를 깨우는 평화의 질문이 되게 하소서.

 

자비의 주님,

군 복무 중에 있는 이들 또한 기억해 주소서.

명령과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게 하시고,

폭력의 구조 안에서 상처 입은 모든 이들을

당신의 평화로 감싸 주소서.

 

길이신 주님,

저희의 양심을 깨워 주소서.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

전쟁을 현실이라 부르며 순응하는 마음,

타인의 고통을 멀리 있는 일로 여기는 마음을

당신의 빛으로 비추어 주소서.

 

생명의 주님,

우리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준비하게 하소서.

폭력이 아니라 돌봄을 배우게 하소서.

복종이 아니라 양심으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침묵이 아니라 연대로 당신의 평화를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이 성찰 가이드는 전쟁없는세상이 발간한 『2024 병역거부 가이드북』과, 2026년 2월 23일 완전 병역거부를 선언한 평화활동가 두부 김민형님의 병역거부 선언문을 주요 참고 자료로 삼았습니다. 두 자료가 전하는 병역거부의 역사와 제도적 쟁점, 그리고 전쟁과 군사주의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양심의 언어는 이 가이드의 문제의식과 성찰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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