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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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인권주일 성찰가이드] “두려워 말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아라”

인권연대연구센터 121.♡.226.2
2025.12.03 12:57 173 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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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인권주일 성찰 가이드

두려워 말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아라”

 

 

맥락

 

2025년 인권주일을 우리는, 특별히 12·3 비상계엄 사태 1주년이라는 한국 사회의 기억 속에서 맞이합니다. 지난해 12월 3일, 국가 권력은 비상계엄과 내란을 획책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고, 시민들은 주저하지 않고 광장으로 나와 그 폭주를 멈추었습니다. 탱크와 병력 앞에서 맨몸으로 서 있었던 이들의 용기는, 민주주의가 단지 제도와 선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연대임을 드러내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혁은 여전히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이들은 “민주주의가 정말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을 품은 채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혐오와 차별이 구조화되고 집단화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주민과 난민, 장애인과 노동자, 여성과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은 개인의 편견을 넘어, 정치·언론·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대·증폭되고 있습니다. 특히 제 44회 인권주일과 제15회 사회교리주간을 맞으며,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선태 주교의 인권주일 담화를 통해 이주민 혐오의 확산을 심각한 인권의 위협으로 바라보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어떻게 가장 약한 이들을 향한 폭력으로 전가되는지를 성찰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인권주일은 단지 인권 문제의 목록을 나열하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에 대한 신앙고백을 새롭게 하는 날입니다. 1년 전 오늘을 기억하며, 우리는 민주주의가 다시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한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도 서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이들의 용기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주민 혐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비하와 조롱,공적 책임을 외면한 채 사적 안위와 기득권 유지에만 매달리는 정치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시 질문합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은 지금여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위협받고 있습니까? 민주주의와 평등은 어떻게 다시 무너질 수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나의 두려움과 불안은 누구에게 전가되고 있으며, 지금 우리는 누구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습니까?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 고공과 거리에서 생존을 걸고 싸우는 노동자들, 이주민과 난민, 장애인과 청소년, 성소수자 등 사회의 주변부에서 목소리를 내온 이들은, 우리에게 인권은 이미 완성된 질서가 아니라, 매일 새롭게 선택해야 하는 삶의 방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 창세기 1,27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 이사야 41,10 

 

 

성찰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은 언제나 가장 구체적인 자리에서 시험받습니다. 12·3 사태 속에서 인간 존엄은 헌법과 법전의 문장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탱크 앞에 선 시민들의 몸, 계엄을 막기 위해 광장으로 달려간 사람들의 눈빛, 서로를 지키기 위해 손을 맞잡았던 그 순간들 안에서 인간다움을 향한 연대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존엄은 다시 다른 자리에서 우리를 부릅니다. 폭력적인 단속 끝에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 뚜안의 이름, 고공에서 구조와 변화를 요구하는 노동자의 몸, 혐오 발언의 대상이 된 약자들의 떨리는 목소리 안에서, 우리는 “인간 존엄은 정말 지켜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인간 존엄이 단지 개인의 선량함이나 감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권력의 사용 방식,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에 달려 있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이라는 고백은, 모든 사람 즉 국적, 성별, 성적 지향, 장애 여부, 법적 지위, 사회적 계층과 상관없이 돈이나 효율, 생산성으로 환산될 수 없는 존재라는 믿음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쟁과 불안의 구조 속에서, 나와 다른 이들을 수시로 서열화하고, 값어치를 매기며, 때로는 “불필요한 존재”로 취급하려는 유혹에 놓이곤 합니다.

 

이때 혐오는 단지 마음속의 감정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을 숨기는 껍질이 됩니다. 나보다 먼저 상처받는 이들을 향해 “너 때문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 ‘우리 삶이 힘든 이유’를 가장 약한 이들에게 전가하고 싶은 욕망이 혐오의 언어로 표현됩니다. 이주민과 난민, 장애인, 청소년, 성소수자,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을수록, 손쉽게 “희생양”으로 지목되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언론이 이런 두려움을 이용할 때, 혐오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 제도와 정책, 법과 담론의 형태로 굳어지게 됩니다.

 

인권주일은 무엇보다 "나는 어떤 두려움을 누구에게 돌리고 있는지, 나의 침묵은 누구에게 상처가 되고 있는지" 질문하기를 피하지 않는 날일 것입니다. 인권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편에 서고, 누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누구의 고통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한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먼저 다가가 물을 청하시며 대화를 시작하셨듯이, 인간 존엄을 살아가는 길은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 낯선 이웃, 늘 비난의 대상이 되어 온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그 한 걸음이 두려움의 벽을 흔들고, 서로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인권은 ‘대상 중심’이 아니라 ‘관계 중심’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주민과 난민, 소수자를 “돕는 대상”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보호가 필요한 약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며, 공동체의 동반자이고, 복음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끄는 스승이기도 합니다. 사회교리의 전통은, 가장 버려진 이들과 함께 서지 않고서는 결코 사회 변화를 말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가난한 이들과 소수자를 단지 프로그램의 수혜자나 도움이 필요한 상대로만 남겨둘 때, 우리는 여전히 “안전한 자리”에서 인권을 바라보는 데 그치게 됩니다. 반대로, 그들을 공동체의 중심에서 만나고, 그들의 경험과 지혜가 우리의 결정과 계획 안에 스며들도록 허락할 때, 교회와 사회는 비로소 복음이 요청하는 평등과 연대의 길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인권은 “정치적 취향”이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대로 빚어진 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관한 신앙의 선택입니다. 더 넓은 민주주의와 더 깊은 평등을 향한 길 위에 선 2025년의 인권주일,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며, 두려움이 아니라 존엄을 선택하겠다고 고백하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질문

 

1. 지난 1년 동안 내가 보거나 들은 혐오의 언어와 행동들 가운데, 나는 언제 침묵했고, 언제 멈추게 하려고 애써 보았습니까?

2. 나는 내 삶의 두려움과 불안을 누구에게 전가하고 있습니까? 그 두려움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나요?

3. 나와 우리 공동체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예: 혐오 표현에 반대의 목소리 내기, 인권단체 후원 등)

4. 인권을 '봉사 활동'에 한정 짓지 않고, 구조를 바꾸는 연대와 참여로 확장해 본다면, 지금 내가 시작할 수 있는 한 가지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요?


 

기도

 

자비로우시며 정의로우신 주 하느님,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된 모든 이들의 얼굴 안에서
저희는 오늘도 당신의 빛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저희의 두려움과 무지,
그리고 안일한 침묵으로 인해
형제자매의 존엄이 상처받고
혐오와 배제의 어둠이 더 깊어진 것을 고백합니다.

 

진리의 샘이신 주님,
민주주의가 위협받던 그날,
서로를 지키기 위해 광장으로 달려갔던 이들의 용기를
저희가 잊지 않게 하소서.
그 기억이 저희에게 책임과 연대의 길을
새롭게 비추는 등불이 되게 하소서.

 

자비의 주님,
이 땅에서 가장 먼저 상처 받는 이들과 함께 계신
당신의 마음을 저희 마음에 심어 주소서.
이주민과 난민, 장애인과 청소년,
비정규 노동자와 여성, 성소수자 등
주님의 사랑이 가장 먼저 향하는 이들을
저희도 기꺼이 맞이하게 하소서.

그들을 불편한 손님이 아니라
복음의 스승이자 공동체의 중심으로 모시게 하시고,
그들의 목소리와 지혜가
저희 사회와 교회를 새롭게 하는 기쁨이 되게 하소서.

 

평화의 주님,
저희 안에 남아 있는 두려움과 편견을 비추어 주시어
낯선 이를 위협으로 보지 않고
하느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눈을 열어 주소서.
정의와 진실을 뒤로 미루지 않고,
혐오와 차별에 맞서
평등과 존엄을 선택하는 용기를 주십시오.

 

사랑의 주님,
저희의 기도와 말이
현실을 바꾸지 못한 채 공허한 위안으로만 남지 않게 하시고,
저희의 시간과 재능과 자원을 나누어
구조를 바꾸는 연대의 길을 걷게 하소서.

이 땅에 더 넓은 민주주의와
더 깊은 평등이 자리 잡도록
저희 각자가 작은 도구가 되게 하시며,
서로에게 주님의 희망을 전하는
조용한 표징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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