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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사회] 새로운 세대의 가톨릭: 미국의 흐름이 던지는 질문

김민SJ 121.♡.226.2
2025.09.01 15:11 12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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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7일, 백여 명의 사람들이 오하이오주 작은 도시 스토이벤빌(Steubenville)에 있는 프란치스코 대학교 베리타스 센터 강당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국가를 회복하기: 미국 전통 속의 공동선’이라는 야심찬 주제로 진지한 토의를 벌이게 될 터였다. 이 컨퍼런스를 기획한 사람은 소랍 아마리(Sohrab Ahmari)로, 청소년 시절 테헤란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인물이다. 그는 한때 무신론자였으나 2016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반대하며, 가톨릭 전통의 공동선이 근대 사회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한편, 이 컨퍼런스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 중 하나는 J. D. 밴스였다. 러스트벨트라 불리는 미국 제조업 쇠퇴 지역에서 노동계급 가정 출신으로 힘겨운 청년기를 보낸 그는 결국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이 되었고, 현재는 미국의 부통령이다. 밴스 역시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계급을 희생시킨 자유주의에 대해 아마리 못지않게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아마리와 마찬가지로, 그는 최근 가톨릭으로 개종한 인물이다.

 

또 다른 핵심 인물은 스콧 한(Scott Hahn)이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그는 성경학자로 커리어를 쌓는 한편, 구약의 가르침과 자신의 믿음을 깊이 대조하며 신학적 탐구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결심했다. 밴스가 러스트벨트와 이라크라는 현실적 전쟁터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을 때, 스콧 한은 신앙과 성서 해석을 치열하게 검토하며 또 다른 차원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마리, 밴스, 스콧 한은 뉴욕타임즈의 엘리자베스 디아스가 표현한 ‘새로운 세대의 가톨릭’을 상징한다. 디아스는 2024년 8월 25일 기사 「J. D. 밴스는 어떻게 가톨릭의 길을 찾았나」에서, 밴스에게 가톨릭은 자유주의에 맞선 저항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새로운 가톨릭 세대로 불렀다. 이 세대의 가톨릭 신자들은 “산산이 부서진 세상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신앙이 구체적인 힘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왜 하필 가톨릭인가라는 질문에, 밴스는 간결히 대답했다. “오래되지 않았는가!”

 

즉, 아마리와 밴스, 스콧 한에게 가톨릭은 단순히 신심과 교리의 집합체라기보다, 근본이 사라진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안전지대였다. 그곳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갈 길을 되찾을 수 있는 근본적 터전이 된 것이다. 컨퍼런스를 열며 아마리는 이렇게 선언했다. “미국의 자유주의 합의는 소수 엘리트에게만 번영과 권력을 안겨주었을 뿐, 국가와 민족에게는 실패였다. 동등한 기회를 약속했지만 자유주의는 파괴적인 물질적 불평등을 낳았고, 노동계급과 중산계급을 직업과 건강의 불안정,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다.”

 

예상대로, 스토이벤빌 컨퍼런스는 급진적인 주장들이 쏟아지는 장이 되었다. 미국 내 제조업 부활과 세계화 억제, 성경과 공동선에 기초한 헌법 해석, 그리고 미국 그리스도교적 가치의 쇠퇴(LGBTQ, 낙태, 종교 탄압, 안락사 등)에 대한 강경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는 훗날 트럼프주의의 중요한 지분으로 연결된다. 스콧 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시민사회가 진정한 성서와 그 유사품, 은총의 삶과 헛된 자기위안의 삶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일관적이지도 않고, 궁극적으로는 자멸적입니다.” 이는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었다. 이후 유튜브를 중심으로 미국 가톨릭 인테그랄리스트들이 신정국가(theocracy)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으니, 금기가 깨어진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행사가 열린 스토이벤빌 프란치스코 대학교는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들의 사회 복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미국은 이미 1932년 ‘보너스 아미(Bonus Army) 사건’으로 참전군인 재통합에 실패해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 대학교는 곧 재정난에 시달렸다. 전환점은 1970년대 중반, 대학이 엄격한 가톨릭 교육이념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찾아왔다. 신학교육 강화, 신앙 중심 공동체 운동, 교도권 충실을 덕목으로 삼으며 학교는 활력을 되찾았다. 그 결과 이곳은 미국 프로 라이프 운동의 메카가 되었고, 학생 가운데 가톨릭 신자 비율은 97%에 달했다.

 

무신론자, 복음주의자, 그리고 다른 개신교 종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들이 오히려 더 보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1년 7월 트리엔트 미사를 제한했을 때, 미국에서 불만이 유독 거셌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토이벤빌 대학교와 이곳에서 열린 2022년 컨퍼런스는 미국 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세 가지 근본 질문을 던진다.

 

첫째,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단순히 ‘아노미 사회’라 부르기엔 더 복잡하고 심원한 변화가 이미 닥쳐왔다. 우리는 사회 자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

 

둘째,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신념, 믿음을 이 세상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 과거의 정답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정답일 수는 없다. 우리는 오늘의 문제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한다.

 

셋째, 가톨릭 인테그랄리즘(일부 학자들이 아마리, 밴스, 스콧 한으로 상징되는 흐름을 이렇게 부른다)은 단지 과거에 대한 시대착오적 노스탤지어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다면, 이 근본에 대한 처절한 그리움과 향수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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