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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사회] 한일 사회사도직, 두 사회의 거울을 보다

김민SJ 121.♡.226.2
2025.11.18 15:02 9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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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서로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지점에서 묘하게 다르다. 언뜻 당연한 말 같지만, 두 사회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차이가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선 사회문제의 전개 패턴은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한국이 경제 개발의 과정에서 일본의 모델을 중요한 참고 대상으로 삼았던 만큼, 일본이 먼저 겪은 사회문제를 한국 역시 거의 동일하게 마주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초고령사회가 가져오는 복합적 문제들이다. 이는 사회 전반의 구조를 뒤흔드는 거대한 변화이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자. 또 하나의 공통점은 빈부격차다. 특히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이른바 ‘이중노동시장’ 문제에서 일본보다 더 심각한 양상을 보인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의 빈곤 문제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서울역과 오사카 아이린 지구에서 직접 확인했던 풍경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너지 정책과 핵 문제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 한국은 2024년 전체 전력 생산의 31.7%를 원전이 차지했고,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8.5%까지 줄어들었다가 다시 20% 수준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원자력을 ‘친환경’으로 규정하려는 논리가 일정 부분 통용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이번 한일 사회사도직 모임에서 다룬 주제인 혐오의 확산과 정치화 역시 양국이 함께 겪고 있는 현상이다. 물론 혐오에서 자유로운 사회를 찾기 어렵지만, 양국에서 반중 감정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은 최근 지정학적 변화와 맞물려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준다.


그러나 유사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일 사회사도직 교류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오히려 이러한 ‘차이’였다. 3년 전 나가사키에서 만난 전직 전공투 출신 교사는 한국 시민운동의 성과를 칭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결국 권력을 바꾸지 못했지만, 여러분은 바꾸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 지점에서 멈추었지만, 여러분은 계속 진화해 오지 않았습니까?”

이 말속에는 일본의 단카이 세대가 한국의 86세대를 바라볼 때 느끼는 일종의 아쉬움과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동시에 이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경험이 갈라지는 결정적 분기점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경제적 민주화와 맞물려 있었다. 86세대는 정치와 경제 양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례적인 경험을 했다. 이는 일본의 경우와 선명히 대비된다. 단카이 세대는 경제성장의 주역이 되었지만 정치적 주도권은 확보하지 못했다.

 

이 차이는 시민사회의 역동성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한국에서는 시민사회가 정치 영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일본에서는 정치가 기득권의 영역으로 고착되었다. 나가사키에서 만난 그 혁명가의 말처럼, 한국 사회는 “권력을 바꾸어 본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이 정치적 경험의 차이가 예수회 사회사도직의 활동 방식에도 이어진다.

 

한국의 사회사도직은 이주·빈곤 문제를 공론화하고 제도적 변화를 촉구하는 ‘high advocacy’에 익숙하다. 반면 일본의 사회사도직은 현장 중심적이고 개인 실천에 가까운 형태가 두드러진다. 준 나카이 신부님의 결식아동 지원, 미츠노부 신부님의 꾸준한 탈핵 활동, 시모카와 신부님의 노숙인 사목 등은 그 상징적 예라 할 수 있다. 이는 어느 쪽이 더 옳다는 의미가 아니라, 각 사회가 축적해 온 정치·문화적 유산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비추는 ‘이란성 쌍둥이’에 가깝다. 일본의 현재는 한국의 근미래를 예측하는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최근 일본에서 참정당이 약진한 현상도 한국 사회가 유심히 살펴야 할 지점이다. 극우 정치의 본격적 정치화가 어떤 파장을 낳는지 일본은 먼저 경험하고 있고, 한국 역시 유사한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두 나라의 극우 경험 역시 맥락이 다르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전체주의적 사고가 사회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친 적이 있지만, 한국은 군사독재가 있었음에도 정치사상적 의미의 ‘파시즘’을 경험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에서 종교계 일부가 정치적 극우와 결합하려는 움직임은 새로운 유형의 도전이 될 수 있다. 이는 사회교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 존엄·공동선·연대의 원리들이 정치적 지형 속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 있음을 뜻한다.

 

한일 사회사도직 모임은 이러한 현재와 미래를 함께 성찰할 수 있는 귀한 지적·사도적 여정이다. 더욱 의미 있는 점은 이 모임이 예수회원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이들과 함께 배우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앞으로의 길을 묻는 과정 그 자체가 큰 선물이다.

 

사회사도직이 나아갈 길은 단지 전략이나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회가 가진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유산 속에서 어떻게 복음적 상상력을 새롭게 펼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번 모임은 그 상상력을 더욱 깊고 넓게 확장시키는 소중한 계기였다.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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