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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사회] 발과 머리로 걷는 길, 선교본당살이를 시작하며

김정대SJ 121.♡.226.2
2025.09.25 14:54 19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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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나는 지난 9월 2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장위1동 선교본당에 이사 와서 주임신부라는 직책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선교 본당이란 과거 재개발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빼앗긴 세입자와 철거민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서울대교구가 시작한 사목이다지금 서울대교구에는 다섯 곳의 선교 본당이 있다.

 

새로운 일을 제안받았을 때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우선 내 안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 열정이 있는지 물어야 했다더는 젊었을 때의 열정이 내게는 없다그러나 이제는 젊음의 열정보다는 순화되고 균형 잡힌 삶의 여유가 있다그러나 여전히 나의 마음에 동요가 있었다나는 내가 새롭게 도시빈민 사목을 배우고 적응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그런데 빈민 사목에 대한 생소함도 그리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사실 이 사목은 오래전에 예수회원들이 시작했고 지금도 다른 예수회원이 하고 있다그래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문제는 빈민 사목과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노동 사목의 병행 가능성이었다병행의 여지가 있다면 빈민 사목을 시작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나는 이런 이유로 며칠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은 혼돈을 경험했다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마음의 혼돈은 며칠 뒤 쉽게 평온함으로 바뀌었다그래서 나는 지난 9월 2일부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과 삶을 시작했다.

 

도시빈민 사목은 예수회가 처음 시작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미국에서 선교사로 온 정일우 신부는 1970년대 판잣집이 즐비한 청계천의 한복판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았다그 당시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 정책으로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했다특히 번듯한 직업도 없이 서울에 온 사람들은 산업예비군으로 저임금 노동을 강요당했다이들은 마땅한 집도 구하지 못해 청계천을 따라 강변 주변에 판자촌을 형성하며 자리를 잡았다정일우 신부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그들에게 시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그냥 그들의 삶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의 청계천 정비 및 도시 미관 사업으로 인하여 그들은 어렵게 자리 잡은 터전도 강제로 빼앗긴 채정부가 지정한 또 다른 곳으로 강제로 이주해야 했다그들 중 일부는 정 신부와 함께 신천리(현 시흥시 신천동)에 복음자리라는 이름을 짓고 자리를 잡았다정 신부는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그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구원한다면서우리가 할 일은 가난이 죄가 되는 이 세상에서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올림픽을 위한 도시 미화라는 명분으로 상계동 재개발 사업을 강행했다이 과정에서 상계동에서는 수십 차례에 걸쳐 강제 철거가 진행되었다정부는 철거 용역과 공무원들을 동원해 포클레인을 앞세워 마땅한 보상책도 없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부수고 주거권을 빼앗았다이런 무자비한 주거권 박탈로 철거민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이곳에서도 정일우 신부는 삶의 자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살며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이어갔다이 상계동의 참상은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1990년대 종로구 무악동 일대는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세입자와 철거민들의 생존권 싸움이 치열했던 곳이다이곳에 예수회원들뿐만 아니라 교회의 많은 평신도와 수도자들시민 사회 활동가들이 무분별하고 무자비한 재개발로 삶의 자리를 박탈당한 사람들과 더불어 삶을 나누었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했다이 활동에서 과거와 좀 다른 방식은 그들을 위한 제도 개선 활동이었다그래서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동안 세입자와 철거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가이주단지’ 조성을 요구했고재개발 사업에 임대주택 조성이 포함될 것을 요구하였고이 요구는 관철되었다.

 

이런 활동의 근거는 예수회 사회사도직의 특성에 제시되어 있다예수회 사회사도직 활동의 특성은 ‘Foot-Head(-머리)’의 차원을 함께 고려한다. ‘Foot’이란 현장성을 말한다그리고 ‘Head’란 악과 고통을 유발하는 사회구조 연구를 통한 제도 개선 활동을 말한다아마도 선교 본당이란 ‘Foot’라는 차원에서 현장에 뿌리를 내린(insertion) 공동체이고현장에 머무르는 것이 활동의 전부가 아니라 늘 ‘Head’에 해당하는 차원의 구조에 대한 개선 활동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지금도 무악동에 예수회 공동체가 자리하여 서울교구의 독립문 선교 본당을 운영하는 이유가 이 주거권 싸움 당시 연대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 예수회원들의 활동과 비교한다면 지금 내가 와 있는 곳은 좀 생소하다물론 과거의 빈민 사목과 지금의 빈민 사목은 좀 다를 것 같다재개발 방식의 차이도 있고그 당시 활동했던 활동가들의 연령대는 높아졌고젊은 활동가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도 큰 차이다그리고 도시빈민이라고 이름 붙이는 대상화를 가난한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이런 상황 변화 속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가난한 이웃을 섬기며 가난의 영성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장위1동 선교본당'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소수의 신자들과 평일 미사와 주일 미사를 봉헌하면 약 3주의 시간을 보냈다나는 내가 이 공동체에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전례만을 이어가도록 초대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렇다고 내가 이 작은 공동체에서 사회복지 차원의 시혜를 베푸는 사업을 하도록 초대받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그렇다면 나는 왜 이곳에 와있을까이것이 최근 내가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김정대 신부 (장위1동 선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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