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새 교황 레오 14세와 새로운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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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로버트 프리보스트 추기경이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어 자신의 교황 즉위명을 ‘레오 14세’로 정했다. 그는 5월 10일 추기경단을 대상으로 한 첫 공식 연설에서 자신이 즉위명을 ‘레오 14세’로 정한 이유를 제1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반포한 교황 레오 13세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레오 13세 교황은 1878년부터 1903년까지 256대 교황으로 가톨릭교회를 이끌었다. 그는 사회문제에 개입하고 사회정의에 헌신했다. 그는 1891년 ‘노동헌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회칙‘새로운 사태’를 반포했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사회문제에 응답한 첫 번째 교황 회칙이다. ‘새로운 사태’는 그 당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유럽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 피고용인과 고용인 사이의 변화가 생겼다고 인식하고, 노동자들은 초기 자본주의의 폐해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그리고 인권유린으로 고통당하고 있음을 문제로 본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의 역할로 분배정의와 공권력의 올바른 사용을, 고용주의 의무에 대해서는 정당한 임금제공과 노동시간 규제를 제시하며 노동자들의 삶의 개선과 인권을 옹호한다.
새 교황 레오 14세와 147년 전 교회를 이끌었던 레오 13세 교황의 연결점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오늘날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사태를 “인공지능(AI)의 발전과 노동과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도전들”로 보고, 이런 도전들 앞에서 사회 교리를 통해 세상에 응답하는 것이 교회의 소명이라고 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 영향이 긍정적일 거라고 예측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일 거라고 예측한다. 가톨릭교회의 사제로서 노동사목을 하고 있는 나는 인공지능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사태가 인간의 삶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오래전부터 자본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서 노동을 지워버리고 있다. 기업은 비용 절감과 효율을 강조하며 핵심 공정이 아니거나 위험한 공정은 하청기업에 외주화했다. 또 정리해고로 노동자를 해고했고, 고용을 할 경우 정규직 고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고용을 늘렸다. 자본은 이렇게 노동을 최소화하여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이로써 기업은 인건비를 비롯해서 관리 비용, 해고 비용, 직업훈련 비용, 사회보험 비용을 줄였다. 그래서 하청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부상을 당해도, 심지어 죽음을 당해도 기업주가 책임질 것은 없다. 죽음의 외주화다.
노동의 파편화는 지능정보기술의 발전으로 더 심해지고 있다. 오늘날 자동화의 흐름은 빅데이터, 플랫폼,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 지능정보기술 인프라를 통해 사회 전체로 확장되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현실 자원과 서비스에 쉽게 접속하는 온라인 플랫폼은 유,무형 자원의 중계지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수와 같은 소득을 얻는 디지털 노동이 부상하고 있다. 그래서 온라인 플랫폼은 고용하지 않고도 노동력을 확보하는 인력 공장의 역할도 한다. 어떤 소비자는 이런 일감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늘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비스를 저렴하게 그리고 ‘총알 배송’처럼 빠르게 제공받는 편리함 때문에 매일 열심히 스마트폰 쇼핑을 즐긴다. 그러나 그 편리함은 디지털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가능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일감을 얻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자영업자) 자격으로 노동을 한다. 이런 디지털 노동은 직업 또는 일자리라는 노동 개념이 아니라, 세분화된 프로젝트, 일감 단위로 일을 하여 수입을 확보한다. 그래서 디지털 노동은 노동을 프로젝트, 일감으로 쪼갤 뿐만 아니라 고용관계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전통적인 노사 고용관계를 해체시켜 노동은 파편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권은 취약해지고, 노동안전과 보건은 쉽게 무시되고, 산업재해 처리 비용은 개인사업자(자영업자)가 부담해야 한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플랫폼 노동의 예로, 택배 노동자와 배달 라이더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자영업자)이다. 그래서 일을 하다 사고로 상해를 입히거나 피해를 당할 경우 처리 비용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또 다른 예로 청소, 돌봄, 가사도우미, 감정 노동 등, 과거 무상의 그림자 노동으로 분류되었던 일감이 플랫폼을 통해 거래된다. 문제는 이런 그림자 노동이 분 혹은 시간 단위로 파편화되어 저가로 거래되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노동착취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담긴 노동을 허드렛일로 전락시켜 노동의 가치와 인간 존엄성마저 깎아내린다. 이런 사회 환경에서 노동자의 자존감은 낮아지고, 노동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들에게 자기실현은 먼 나라 이야기이다. 노동자의 삶은 행복하지 않고, 이들의 강요된 희생으로 누리는 편리함도 비인간적이다. 이렇듯 인공지능의 발전과 우리 인간의 참 인간화 사이에는 매우 큰 간극이 있다.
전임 교황은 자신의 즉위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한 예수님을 본받고 따른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성인으로 여긴다. 즉위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교황도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성인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도 예수님을 따랐던 성인처럼 가난한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소박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인간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나도 그의 우리와 함께 살아 준 시간이 고맙다. 교황 레오 13세의 영향으로 ‘레오 14세’로 즉위명을 정한 새 교황의 상상도 나에게 큰 위로를 준다. 나는 새 교황 레오 14세가 인공지능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사태 앞에서 고통당하는 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시대의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잘 듣고 그들과 함께 걷는 가운데 시대의 징표를 읽고 이 시대의 도전에 올바른 응답을 할 것으로 믿는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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