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미얀마의 잊힌 전쟁
- - 짧은주소 : https://advocacy.jesuit.kr/bbs/?t=fc
본문
미얀마의 끝없는 갈등
미얀마에서 '전쟁'이라는 단어는 이제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벌써 60년째, 전쟁은 이 나라 사람들의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미얀마에는 버마족을 비롯한 8개의 주요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데, 놀랍게도 각 민족은 자신들만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각 민족이 살아가는 지역은 옥, 루비, 티크 목재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유한 언어와 문화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연방민주주의라는 꿈을 안고 지난 60년간 중앙의 군사정권과 힘겨운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각 민족이 자치권을 가지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연방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었습니다.
201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National League Democracy Party)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미얀마에도 드디어 민주화의 봄이 찾아온 듯했습니다. 5-6년간 이어진 민주주의로의 전환기는 미얀마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짧은 봄날의 꿈이었습니다. 2021년 2월의 군부 쿠데타로 모든 희망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입니다. 일부 소수민족 군대는 군부와 전국적 휴전협정(NCA, Nationwide Ceasefire Agreement)을 맺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평화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양측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미얀마 북부의 카친(Kachin)족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섬 없이 평화와 정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이처럼 미얀마에서 전쟁은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세계의 이목은 다른 곳으로 향했지만, 미얀마에서 이 '잊혀진 전쟁'의 상처는 깊어만 갑니다.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은 다름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매일의 생존이 걸린 절박한 현실입니다.
젊은이들의 처절한 저항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상황은 더욱 암울한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다른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시민방위군(PDF, People Defense Force)의 등장입니다. Z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PDF는 군사 독재 체제로의 회귀를 단호히 거부하며, 과감히 무장투쟁에 나섰습니다. SNS를 통해 빠르게 조직된 PDF는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소수민족 군대들과 연대하며, 여러 군부 기지를 점령하는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이들의 치열한 저항은 미얀마의 민주화를 향한 강력한 디딤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소수민족 거주지역이나 오지에 국한되었던 전투는 이제 양곤, 만달레이와 같은 대도시까지 번졌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전국 각지로 피난을 가야 했지만, 군부의 무차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폭격은 국내 실향민(IDP, Internally Displaced People) 수용소마저 안전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가슴 아픈 것은 젊은이들의 현실입니다. 이들은 군부의 강제 징집을 피해야 하는 한편, 자신들의 부족 군대에 입대하는 것도 원치 않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결국 많은 젊은이들이 PDF에 합류하거나 태국, 말레이시아 등 이웃 국가로의 이주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 역시 배움의 기회는 물론 친구들과 뛰어놀 자유마저 빼앗겼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IDP 수용소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전쟁이 격화될수록 미얀마의 경제는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난라잉 마을에 쏟아진 미사일
2024년 3월 7일, 제가 머물고 있는 미얀마 북부 반마우(Banmaw) 지역의 성 미카엘 성당이 있는 난라잉(Nanhlaing) 마을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전쟁의 포화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모든 이동이 제한되었고,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성당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성당은 즉시 긴급 대응에 나서 식수를 공급하고 임시 대피소를 마련했습니다.
반마우에서 쏟아지는 미사일은 마을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의 굉음과 함께 이웃들의 집이 하나둘 파괴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신자들은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몇십 년간 일구어온 삶의 터전을 뒤로 하고, 간신히 필수품만을 챙겨 안전한 인근 마을들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성 미카엘 성당의 신자들은 7-8개 마을로 뿔뿔이 흩어졌고, 오직 소수의 주민만 평생 함께한 가축들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농기구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을에 남았습니다.
전쟁의 포화는 날이 갈수록 더욱 거세졌습니다. 하루에만 무려 29차례의 미사일이 마을을 강타했고, 이는 주민들의 귀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농부들이 일 년 내내 정성껏 가꾸어 수확한 쌀마저 급히 팔아야 했다는 점입니다. 피난 생활에 드는 운송비와 생활비는 평소의 몇 배에 달했고, 이는 이미 궁핍했던 주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전쟁이 이토록 오래 지속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한 주민의 말에는 깊은 한숨이 배어있었습니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전쟁의 광풍이 휩쓸고 갔지만 마을을 떠나지 못한 이들도 있습니다. 많은 지인들과 가족들이 대피를 간곡히 권유했지만, 저희 두 명의 예수회 사제 윌버트 미레(Wilbert Mireh)와 폴 투 자(Paul Tu Ja)는 끝내 마을에 남았습니다. 미사일 폭격으로 이웃들의 집이 파괴되고, 무고한 주민들이 부상을 입고, 평생을 일구어온 삶의 터전을 등지고 떠나는 이웃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사명을 저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머무는 모든 건물(성전, 강당, 회의실, 기숙사, 사제관까지)이 폭격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주교님은 안전을 걱정하며 사제들이 본당을 떠날 수 있도록 했지만, 저희는 신자들과 함께하기로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신부님들이 본당에 계셔서 정말 든든합니다. 신부님들이 계시는 한 저희도 마을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는 신자들의 말에는 깊은 신뢰와 감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저희는 성당이 전쟁터가 아닌 하느님의 집으로 남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하루빨리 신자들이 돌아올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사제관 뒤편 조용한 시냇가에서는 5-6명의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작은 미사가 봉헌됩니다. 폭격의 위험 속에서도 이어지는 이 거룩한 미사는 마치 초기 교회의 미사를 연상케 합니다. 주일이면 우리는 이곳저곳에 흩어진 IDP 수용소를 찾아다니며 2-3차례 미사를 봉헌합니다.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깊어지는 신자들의 신앙은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사제로서 우리의 활동은 영적인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카리타스와 긴밀히 협력하여 마을을 순회하며 쌀을 구입하여 IDP 수용소의 신자들에게 배급하는 일도 맡고 있습니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이동 제한으로 수확물을 판매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에게도, IDP 수용소에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피난민들에게도 도움이 되기 위해 고안한 해결책입니다.
5월, 미얀마의 우기가 시작되면서 농부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시작하던 벼농사를 이번에도 할 수 있을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농사가 가능할지 걱정이 컸습니다. 그래서 저와 윌버트 신부님은 직접 본당 농장에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시작하면 농부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작은 시도는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주민들은 하나둘 농사에 동참하기 시작했고, 비록 예년의 절반 수준이지만 논에 다시 모가 심어졌습니다. 11월 초면 작은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의 수확은 비록 판매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의 자급자족을 위한 소중한 양식이 될 것입니다.
학교 건물은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교사들도 피난을 떠났지만 카리타스, 침례교 목사님들, 본당 사제들, 그리고 교리교사들이 힘을 모아 귀 카타웅(Gwe Kahtawng) 마을에 작은 학교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 되지 않던 학생들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비록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이들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은 다시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교실은 "상황이 허락하는 한, 이 작은 학교는 계속될 것"이라는 굳은 결심 위에 세워졌습니다.
세계의 관심에서 멀어진 '잊힌 전쟁' 속에서도, 우리 예수회원들은 이렇게 오늘도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한 이 고난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지만 소중하다고 믿습니다. 언제 이 전쟁이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저희는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곳에 선 우리의 힘이 미약하기에 여러분의 연대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미얀마 예수회 Paul Tu Ja SJ 신부
* 서두의 사진은 폴 신부님이 촬영한 성 미카엘 성당 지붕이 폭격으로 망가진 모습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