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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후쿠시마 오염수 바다 투기, 야만과 무지의 시대

조현철SJ 121.♡.235.108
2023.03.14 17:15 2,4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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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은 살충제의 위험을 고발한 <침묵의 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은 평생 바다를 연구하고 사랑한 해양생물학자이자 생태사상가였다. 카슨은 수려한 문체로 해박한 바다의 지식을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에 담아냈다. 1963년 한 심포지엄의 개막 연설에서 카슨은 바다가 온갖 유독 폐기물을 던져버리는 쓰레기장으로 전락한 현실을 개탄하며 방사성폐기물을 바다에 투척하는 행위를 가장 심각한 환경 오염 문제로 꼽았다. 이후 1972년 해양오염 방지에 관한 협약(런던협약)과 이 협약에 대한 ‘1996년 의정서로 방사성 물질의 해양 투기도 전면 금지되었다. 그러나 올봄이나 여름, 우리는 핵발전소 오염수의 바다 투기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카슨의 우려가 재현되려는가.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거르면 62개 핵종을 기준치 이하로 처리할 수 있고 거르지 못하는 삼중수소는 기준치의 40분의 1로 희석하므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의 주장은 편향되고 일방적이며 투명하지도 검증되지도 않았다. 얼마 전 일본 도쿄전력은 최근 오염수 측정·평가 핵종을 30개로 축소했고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이를 인가했다. 카슨이라면 이런 일본의 태도를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면서 슬그머니 깔개 밑으로 먼지를 쓸어 넣는행위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지난 2월 초,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면 4~5년 후 한국 근해에 유입하는데 삼중수소량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모의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 실험은 일본 정부의 주장을 전제로 했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여기에 더해 카슨이라면 오염수의 바다 투기에 생태학적 고려가 빠진 것을 근본 문제로 지적했을 것이다.

 

카슨은 바다가 광막하고 끝없어보이지만 고요한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활동이 훨씬 더 활발한 곳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층위와 방향에서 바닷물은 엄청난 규모로 뒤섞이며바다에 투기한 오염 물질은 우리의 예측보다 훨씬 빠르고 넓게 확산할 수 있다. 최첨단 기법을 동원해도 예측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바다의 생물은 수직으로든 수평으로든 방사능 오염 물질을광범위하게 퍼뜨린다. 플랑크톤은 밤과 낮을 주기로 바다 표층과 바닥을 오르내리고 물고기나 고래는 먼 거리까지 방사능 오염 물질을 실어 나른다. 바다 유기체에 흡수된 오염 물질은 체내에서 생물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수가 많다. 이때 유기체는 생물학적 증폭기로 작용하여 오염 물질의 농도 증가는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오염 물질의 위험성 평가에 생물학적 물질 순환은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이를 고려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오염 물질이 유기체에 들어가면 먹이사슬을 통하여 결국 사슬의 최상위인 인간에 이른다. 그래서 카슨은 오염 물질의 희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술적 주문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삼중수소를 희석한다고 우리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핵발전소 오염수를 바다에 버린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할 뿐이다.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버려서 없어지는 쓰레기는 없다. 바다로 들어간 오염수는 수많은 경로를 거쳐 누군가에게 돌아온다. 이것은 생태학적 문제이며, 생태학적 문제는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한다. 생태계의 복잡다단한 관계망 속에서 바다에 버린 오염수가 언제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위험은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 있고 시기는 예상보다 훨씬 이를 수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의 대안으로 장기 저장고체화가 거론된다. 삼중수소 반감기 12년을 고려하면 100년 정도 저장해야 한다. 고체화하면 부피가 많이 늘어난다. 두 가지 대안 모두 엄청난 비용이 추가된다. 일본 정부가 국내외의 비판과 우려를 무릅쓰고 바다 투기를 밀어붙이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핵발전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기술임을 다시 확인한다. 오직 시간만이 핵발전으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을 통제할 수 있다. 우리는 방사성 물질의 특성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든가 재난을 감수해야 한다. 핵기술은 우리의 자율성을 앗아가고 타율성을 부과한다. 우리가 기술을 부리는 것 같지만, 실은 기술이 우리를 지배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이자 언론인 앙드레 고르스는 기술을 자율성을 늘려주는 열린 기술과 타율성을 강제하는 닫힌 기술로 구분한다. 핵발전을 비롯한 거대기술은 닫힌 기술의 전형이다. 핵발전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기술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오염수 투기를 진정으로 반대하려면 먼저 핵발전을 포기해야 한다. 핵발전을 확대하겠다는 우리 정부가 오염수 투기를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12년 동안 거슬러 올라가 만나게 되는 것은 결국 핵발전소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것은 바다를 광활한 쓰레기장 정도로 여기는 마음이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바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거기에 몸 붙여 사는 사람인들 무사할 수 있을까. 과학 기술의 놀라운 발달로 도래한 시대가 야만과 무지의 시대라는 것이 당혹스러울 뿐이다.

 

 

조현철(예수회 신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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