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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일상의 평범한 노동과 영적 진화

김정대SJ 121.♡.116.95
2021.04.29 16:56 3,99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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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인간 안에 하느님의 모습이 있다고 믿는다. 전쟁 같은 일상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 단적으로 말한다면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천주교인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쉬며 기도하는 시간을 피정이라고 하는데, 수도자들은 주로 침묵 피정을 갖곤 한다. 얼마 전 나는 어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피정집에서 10일간의 일정으로 수녀님들에게 침묵 피정 안내를 했다. 그 피정에 유일하게 70세 정도의 평신도 남자가 참석했다. 그는 17년째 피정에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어 그가 피정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바쁜 일상에서 일부러 피정의 시간을 냄으로써 그는 더 큰 여유를 즐겼을 것이다. 인상적이게도 그는 식사시간에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식사를 즐기는 것 같았다. 사실 그 피정집 음식은 주방 수녀님들의 손맛으로 정말 맛깔스러웠다. 또 그는 미사 시간에 두 손을 모아 공손히 합장하여 정성스럽게 수녀님들께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 모습 속에서 그분의 수녀님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수도자들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수녀님들이 내놓은 음식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의 수도원은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정성스럽게 식사대접을 하며 환대하는 곳이다. “쓰러져가는 수도원은 밥맛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수도원 음식이 맛깔스럽지 않으면 찾아오는 사람도 적고 심지어 수도자로 살려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식사대접이라는 환대는 수도원의 중요한 일의 하나였다. 나도 오래전 호주 멜번 외곽 타라와라(Tarrawarra)에 위치한 수도승들이 모여 사는 씨스털션 수도원(Cistercian Abbey)에서 10일간 머물며 피정을 했는데 이 수도원 원장의 소임 중에 하나는 매 주일 미사 후에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다과를 대접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처럼 며칠 머무는 손님들에게는 손님 담당 수사가 있어서 매 식사 시간에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특별히 한국 사람인 나를 위해서 일부러 쌀밥을 해 주었는데, 이는 대단한 환대의 표시였다. 나는 나를 배려해 준 주방 수사님의 마음에 감동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사실 감사는 서로를 이어주는 감정이다. 반대로 서운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서로에게 거리와 경계를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나눔으로써 생긴 감사의 감정으로 인간 존재는 영적인 차원으로까지 진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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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관계된 이야기를 또 하나 해야겠다. 나는 올해 3월부터 고양시의 한 시민단체와 함께 고양시로부터 성평등 보조금 사업으로 “‘지지고 볶는남자들이 만들어가는 행복한 가정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지고 볶고라는 제목에서 연상하듯 요리를 매개로 몇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요리교실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하였다. 먼저 요리교실 프로그램을 통해서 참가자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고, 그리고 그들에게 가정에서 가족들에게 그 요리를 제공하는 실습을 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관계 개선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그 뒷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뒷이야기란 참가자들이 요리를 하고 가족들에게 식탁 봉사를 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마음의 느낌에 대한 이야기이다. 참가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을 위해서 기꺼이 음식을 만드는 노동과 타인의 반응과 자신의 마음에 올라오는 느낌을 알아채기 위한 예민함이다. 즉 감정을 아는 능력인 감성을 키우는 것이다.

 

가족들 사이에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친밀한 관계는 긴 시간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상처와 용서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음식만 지지고 볶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관계도 서운함, 슬픔, 기쁨, 사랑 그리고 용서라는 감정 역시 지지고 볶아야 친밀한 관계가 된다. 이렇게 지지고 볶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친밀한 관계는 쉽게 말해 친한관계이고,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상대편이 받아준다는 신뢰가 있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친밀한 관계에는 위계나 조건이 없고 격식이 없다. 기쁨과 용서, 사랑 그리고 신뢰의 감정 역시 서로를 이어주는 감정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로 인간존재는 영적 차원으로 진화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남자들이 요리를 하는데 눈을 뜨기 시작했다. 참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이런 요리를 비롯하여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자들의 일로 간주했다. 문제는 남자들이 집 밖에서 하는 일이 더 우월하고 여성들의 가사노동은 하찮은 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가사노동을 하찮은 일로 보는 사람일수록 남녀관계를 위계적인 관계로 보고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다고 믿기 쉽다.

 

사실 주방 일과 그밖에 다른 가사노동은 하찮은 일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노동이다. 그리고 이 일들은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노동을 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런 감사함을 통해서 우리의 관계는 더 깊어진다. 일상의 평범한 노동은 감사의 마음과 깊어지는 관계를 통해 우리를 영적 차원으로 데려간다. 일상 속,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모든 노동은 하느님을 만나는 거룩한 일이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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