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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UPH와 비인간화 된 노동

김정대SJ 121.♡.116.95
2021.02.02 16:26 4,4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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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1일 새벽, 쿠팡 동탄 물류센터에서 물품 선별 작업을 하던 51세의 여성 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추정되는 증상으로 갑자기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전날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 반까지 작업을 하고 화장실에 갔는데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지난해 5, 10월 그리고 이 사건까지 8개월 동안 세 건의 돌연사가 발생했다.

 

노동자들과 유족들은 잇단 죽음의 원인을 악명 높은 관리시스템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쿠팡은 물품 선별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단말기를 하나씩 지급하고, 그 단말기에 작업한 수량이 UPH(시간당 생산량, Unit per Hour)로 기록되도록 했다. 그리고 UPH가 낮은 노동자들을 그때그때 공개적으로 호출했다고 한다. 쿠팡은 20189월 실제로 속도 올려주세요. 다시 한 번 명단에 올라오시는 분들은 관리자들이 조치하겠습니다. 사원님들, 속도 좀 올려 주세요.”라고 안내 방송을 했고, 2021년 들어서는 1분에 2개였던 집품 기준을 3개로 올려 “1분에 3개 이상 집품하세요라며 정해진 UPH 이상의 생산성을 강요했다고 한다.(114일자 MBC 뉴스데스크 참고) 이는 인간을 일하는 기계 정도로 대한 것과 같다.

 

거의 33년 전쯤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직장생활은 반도체 회사 생산 기술과의 프로세스 엔지니어(Process Engineer) 일이었다. 생산과의 관리자들은 그날그날 계획된 생산량을 맞추느라 노동자들과 잔업 문제를 놓고 늘 긴장 관계에 있다. 나는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필요한(?) 긴장을 크게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노동자들과 긴장을 겪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회사는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새로운 기계를 도입했다. 또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몇 공정은 자동화해서 노동자가 제품을 손으로 만지지 않고 작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럴 경우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들에 대해서 각 공정마다 UPH를 새로 결정해야 한다. 사실 이 UPH는 생산성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이런 일도 생산 기술과의 일이다. 나도 내가 맡은 공정의 UPH를 결정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작업시간과 생산량을 확인했고, 또 직접 현장에 들어가 이런 시간을 쟀는데 노동자들이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사람을 인격이 아닌 기계처럼 보는 관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현장 노동자들은 정해진 UPH로 생산할 경우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때의 나는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노동자들의 마음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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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접하고 나의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나치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그린 작품이다. 플라초프 강제 수용소 소장인 아트 괴트 SS 소령은 숲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동물들을 사냥하듯 노동력이 없어 보이는 유대인들을 자기 숙소에서 내려다보며 소총으로 하나씩 사살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경고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금속세공 공장을 방문해 경첩을 만드는 노동자에게 경첩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고 시간을 잰다. 감독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노동자는 더 민첩하게 경첩을 만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노동한 총 시간을 감독 앞에서 경첩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으로 나누어 그가 생산했어야 하는 경첩의 양을 결정한 데 있다. 그는 그 계산에 따른 양만큼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밖으로 끌려가 죽을 운명에 처한다. 괴트 소령은 무릎을 꿇고 있는 그의 뒤통수를 향하여 자신의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데 실탄은 격발되지 않았다. 이렇게 그는 죽음을 면한다. 괴트 소령은 유대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고 단지 일하는 기계 정도로 보았다. 그래서 UPH를 근거로 한 생산량을 그 유대인 노동자에게 기계적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노동의 비인간화이다.

 

우리의 산업화와 노동은 비인간화의 역사이다. 사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지 5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불법, 편법으로 고통받고 있고, 기계처럼 대접받으며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어 혹사당했고, 그들의 삶은 비인간화 되었다. 이렇게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 대한민국은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노동자들이 착취당하여 그들의 삶이 비인간화되는 순간 그들을 고용한 고용주와 경영진 역시 비인간이 된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이라는 평가에 착취당한 노동자들의 비인간화 정도는 계산되지 않는다. 또 그들을 착취한 사람들의 비인간 정도도 계산되지 않았다. 만일 그런 비인간 정도가 평가에 포함되었다면 대한민국은 후진 나라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니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없어져야 하고, 그들의 온전한 인간화를 위해서 노동자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쿠팡의 이런 노동 착취는 그 회사의 비윤리성을 넘어 나에게도 연결이 된다. 왜냐하면 나도 쿠팡을 이용하는 고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쿠팡 노동자의 돌연사가 발생하기 며칠 전 나는 사랑스러운 조카 손녀딸에게 예쁜 선물을 쿠팡을 통해서 주문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받아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그런 편리함과 기쁨이 노동 착취의 결과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사실 남을 인간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내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행위이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오 7,12) 단적으로 노동이 없으면 우리가 지금 편하게 사용하는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자동차도 그리고 깨끗한 거리도, 먹거리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 없이 편리함과 인간의 품위란 있을 수 없다! 달리 표현한다면, 노동 없는 편리함과 인간적 품위는 악마의 사치이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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