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와 그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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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부터 탈리타쿰이라는 국제 네트워크와 연대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탈리타쿰은 잘 아시다시피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죽어있는 회당장의 딸을 다시 살리시면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우리 말 성경에서는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로 풀이하는 탈리타쿰이 2009년 세계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가 설립한 인신매매 방지 네트워크의 명칭이 된 것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탈리타쿰 네트워크와 연대하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탈리타쿰 인터내셔널의 로마 본부에서 나온 문서들은 매우 훌륭하며 영감이 넘쳐납니다. 예컨대 금년 상반기 코로나로 인한 위기가 심각해질 때 나왔던 “코로나 19가 인신매매에 끼친 영향: 불의를 증폭하는 확대경” (https://advocacy.jesuit.kr/bbs/?t=4w)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과 인신매매라는 좀 동떨어져 보이는 주제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전염병으로 인한 락다운(이동금지조처)이 어떻게 생활고를 더욱 악화시켜서 성착취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청소년들이 얼마나 손쉽게 온라인 성착취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예견한 매우 좋은 문서입니다. 이 문서들을 특히 번역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워나간다는 것은 연대가 갖는 예기치 않은 특권인 셈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코로나 시대 신자유주의와 인신매매”(https://advocacy.jesuit.kr/bbs/?t=5H) 역시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문서입니다. 사실 이 문서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코로나 시대’라는 키워드보다는 ‘신자유주의’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찰해야할 주제는 신자유주의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유주의는 인신매매라는 주제의 근원원인이 갖는 얼굴과 이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것이니 말입니다. 몇 가지 키워드로 한번 인신매매라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신매매라는 단어의 두께
교황청에 인신매매나 이주, 난민 등의 주제를 다루는 부서가 있습니다.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라는 좀 알쏭달쏭한 이름의 부서인데 이 알쏭달쏭한 이름이나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advocacy.jesuit.kr/bbs/?t=4N) 이 부서에서는 대륙별로 담당자를 지정하는데 아시아 담당이 마루야마 나오코라는 분입니다. 이 분이 작년 한국에 왔을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만난 이들에게 한국의 인신매매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는 인신매매가 거의 없다는 놀라운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인신매매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왜 나오코 씨에게는 놀랍게 들렸을까요?
그 이유는 인신매매라는 단어의 느낌이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조차도 인신매매라는 말을 들으면 1980년대 한국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봉고차로 부녀자를 납치해서 성매매업소에 팔아넘기는 그런 종류의 하드코어 인신매매를 연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인신매매를 이야기할 때에는 이러한 경성 인신매매 뿐만 아니라 연성 인신매매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예컨대 예술흥행비자로 입국했지만 성매매를 강요받는 경우 인신매매에 해당합니다. 또한 브로커를 통해서 돈을 받고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에도 인신매매적인 요소가 다분합니다. 값을 매길 수 없고 팔 수 없는 것을 팔려고 하는 것이 인신매매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신매매의 그림자가 짙게 그려진 사회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혹은 무수한 이름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찬미받으소서’와 ‘모든 형제들’을 포함한 많은 회칙과 연설, 강론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비판적 시선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구절은 ‘모든 형제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사회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파급효과’나 ‘낙수효과’와 같은 ... 마술적인 이론에만 의지하고 반복한 뿐입니다.” (모든 형제들, 168번) 마찬가지 시각에서 이번에 발표된 “코로나 시대 신자유주의와 인신매매”에서 탈리타쿰은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에 가장 큰 걸림돌이 신자유주의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왜 신자유주의가 문제가 될까요?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노력에서 왜 굳이 신자유주의와 같은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 것일까요?
그 대답을 한가지 사례로 갈음하겠습니다. 1550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신학자들의 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의 주제는 아메리카 인디오들을 노예로 삼는 것이 정당한가였습니다. 맥락은 이렇습니다. 스페인이 남미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광산이나 거대한 플랜테이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원주민들을 노예로 사용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로톨로매오 라스 카사스 주교와 같은 양심적인 성직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당시 스페인 왕 카를로스 1세에게 상신을 하였습니다. 이 회의는 이 상신에 대한 카를로스 1세의 응답이었던 셈입니다.
이 회의에서 벌어진 논쟁은 인디오들에게 영혼이 있는가, 그리하여 이들이 세례를 받는 것이 유효한가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라스 카사스 주교가 이겼고 최소한 스페인령 남미에서는 노예제가 억제됩니다. 문제는 대신 아프리카인들이 대신 수입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논쟁에서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해서 의외로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며 따라서 지성과 의지와 욕구에 있어서 하느님을 닮는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인간론의 출발점이기에 노예제와 같은 최악의 인신매매 형태에 대해서 비판적인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당시 노예제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오늘날은 신자유주의가 그 죄많은 노예제의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예제가 단지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제도를 넘어서 그리스도교 인간론의 금기를 위배하는 것처럼 보여지듯이 신자유주의 역시 정치경제적 담론 이상의 문제많은 사유체계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코로나 시대 신자유주의와 인신매매”에서 신자유주의를 인신매매 근절의 주된 장애물로 지목되는 것은 비정규직화 casualization와 같이 인간을 ‘쓰고 버리는 throwaway’ 경제관행이 신자유주의의 맥락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값을 매겨서 쓰고 버리는 존재가 아니니 말입니다.
‘여성화’라는 주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단어가 ‘빈곤의 여성화 feminization of poverty’입니다. 비록 제가 번역할 때에는 여성의 빈곤화로 옮겼지만, ‘여성화’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주/난민 파트에서도 ‘이주의 여성화’가 중요한 주제입니다. 사실 여성 이주노동자의 숫자의 급증은 우리나라에서도 현저히 확인됩니다. 1990년대에 비해서 오늘날 이주노동자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습니다. 특히 한국이 싱가폴이나 홍콩, 대만과 달리 가사노동자를 이주노동자로 고용하는 관행이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사실 이주의 여성화는 노동의 여성화로 대치하여 이해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여성화가 이루어진 것일까요? 여성들의 권리가 향상되어서 노동분야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들이 빈곤문제나 성착취 문제에 있어서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성착취의 역사가 대부분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는 역사임에는 틀림없으나 오늘날의 빈곤, 노동의 여성화는 굉장히 중요한 시대의 징표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아무튼 “코로나 시대 신자유주의와 인신매매”라는 문서를 번역하면서 굉장히 많이 배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인신매매가 갖는 다양한 문화적인 특성들, 사회학적 특성들을 우리가 이해해야만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서 좀 더 심도있게 응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코로나19 시대, 신자유주의와 인신매매;' (탈리타쿰 토론 자료집) 다운로드 받기: https://advocacy.jesuit.kr/bbs/?t=5H (인권연대 자료실)
김민 사도요한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부소장
예수회 아시아태평양지역구 이주난민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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