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문화 읽기-화 (2편)] 우리는 어떻게 '화' 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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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을 통해, 화와 분노는 우리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길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사실과, 그 화와 분노가 표현될 때 건강한 방식과 건강하지 않은 방식이 있다는 것 등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 내용들을 좀 더 우리 삶에 가깝게 적용시켜 보고자 합니다. 특히,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화를 내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세대가 다른 만큼 화/분노의 표현방식도 다르다.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은 세대 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세대들을 구분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겠지만, 이번에는 사회과학에서 통상적으로 활용하는 개념들인 베이비 부머 세대(Baby-boomer generation) 세대와 X 세대 (X-generation),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등으로 나누어보려 합니다. 물론 이 구분 및 그에 기반한 설명들은 상당히 개념적, 이론적, 그리고 모형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려, 각 세대구분은 특정 세대의 어떤 특징을 포착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일 뿐이기에, 칼로 무를 자르듯이 현실 세계의 현상들을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각 세대는 단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다른 세대들과 서로 중복되거나 유사한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글에서는 논의를 보다 간명하게 전개하기 위해 일종의 개념적 도식을 추출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분노에 대해서 얼마나 다양하게 대처하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요즘 소위 말하는 ‘꼰대’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베이비 부머’ 세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경우 분노를 회피하거나 억제, 혹은 내향화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노를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참고 또 참아 마음 안에서 삭히거나 자신을 원망하는 이 방식은 전통적인 한국의 정서라고 알려져 있는 ‘한(恨)’과 직접적으로 닿아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발산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참아 생기는 ‘화병(火病)’ 또는 ‘울화병(鬱火病, somatization disorder)’은 한국 고유의 현상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분노의 회피와 억제, 내향화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시집살이의 설움을 묵묵히 참아내는 며느리의 모습에서, 상사의 부당한 대우, 폭언, 괴롭힘 등에도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직장인 등의 모습에서 베이비 부머 세대들의 체념하는 태도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당연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 시기를 참고 견디면 결국 자신이 그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가거나, 더 나아가 가정 혹은 조직이 나를 평생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기에 그 고통의 시간을 감내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직장 혹은 가정이란 거대한 권력을 지닌 철옹성이자 삶의 안전 지대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당한 명령, 대우를 받아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능력이 부족해서 그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자책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IMF 구제 금융을 겪으며 영원할 것 같던 거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것을 목격한 ‘X 세대’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제 더 이상 직장이 나를 평생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무리 자신을 희생하고 인내하더라도, 언제든지 해고를 당함으로써 기본적 삶의 조건들이 해결되지 못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상사 혹은 권위의 대상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자신을 억누르는 대신에, 적당한 수준에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여 최소한의 정신적 건강을 지켜내고자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조직, 혹은 가정이 자신의 행복을 지켜주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억누르고 분노를 내향화해 가며 충성을 바치지는 않게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들은 베이비 부머 세대가 지닌 실질적인 권한, 힘 등이 여전히 상당히 강력함을 알고 있기에, 그들에게 직접 도전하기보다는 자신보다 약한 대상들(예를 들어 부하 직원, 비정규직 직원 등)에게 화풀이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치행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대가 분노를 회피, 억제, 그리고 내향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베이비 부머 세대에 비해 그 빈도와 정도가 덜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에게 분노란 참아야 할 감정이 아니라 표현해야 하는 감정으로 여겨졌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상당히 성숙한 시기에 자랐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외동 자식으로 성장했기에, 자신의 권리에 대해 상당히 예민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들은 부당하다고 여기는 권위 혹은 힘에 복종하고 자신을 억누르는 행위를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적절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윗세대들이 보면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오겠지요.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들은 상사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다른 세대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더 능동적인 방식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싸가지가 없는 대신 ‘당당함’이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 당당함의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 세대는 경제 성장이 매우 둔화된 시기에 성장하여 현실적인 이익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 직장 내에서 말단 직급으로서 화풀이할 대상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그 분노를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물품을 낭비하거나 훔치는 “소확횡(작지만 확실한 횡령)” 등을 통해 분노를 ‘간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심리적 균형을 회복하려는 것이지요. 일종의 ‘수동적 공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직장 내부가 아닌 외부의 더 약한 존재들 혹은 집단에게 화풀이를 할 가능성이 있다(대치 행동). 예를 들어 본사 직원이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갑질을 한다든지, 아니면 그 사회의 소수자 혹은 약자라고 규정되는 집단을 향해 과도한 분노를 터뜨리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이른바 젊은 꼰대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굉장히 이론적이고 도식적으로 각 세대들이 화를 내는 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화를 내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화와 분노가 ‘배제’의 문법 혹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분노 표현의 배타성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병직 사도요한 교수 (울산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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