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새 연재, '한국문화 읽기-화'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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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숙어 중에서 run amok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영어사전을 보면 이 숙어를 ‘미친 듯이 날뛰다.’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숙어에 나오는 아목 amok이라는 단어는 영어와는 무관합니다. 아목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amuk이라는 단어에서 연원한 단어입니다. 어떻게 이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산 단어가 영어사전에 수록되게 되었을까요? “아목에 취해 날뛰는 것 'to run amock'은 아편에 취해서... 집밖으로 뛰쳐나가서는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이들을 죽이는 것이다. ... 이 광적인 공격 상태에서 아목에 취한 이는 무차별적으로 마을주민들과 동물들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힌다.”
이 인용문은 유명한 영국의 선장인 제임스 쿡의 일기에서 뽑은 것입니다. 제임스 쿡 선장은 당시 탐사항해에 나선 탐험가들이 그러하듯이 항해일지를 상세하게 남겼는데 그중에는 이처럼 민족지학의 보고와도 같은 대목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임스 쿡 선장님이 ‘아목에 취해 날뛰다.’라는 표현을 너무 자연스럽게 쓴 것 같지 않나요?
쿡선장님 초상화입니다. 아마 좋은 선장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같이 일하고 싶지는 않은 얼굴입니다.
사실 이 표현은 그 이전부터 이미 유럽에 소개되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두아르테 바르보사의 책: 인도양 주변의 나라들과 그 주민들에 대한 설명’에 나옵니다. 이 책은 포루투갈인에 의해서 쓰여졌는데 자그만치 15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풍스러운 책입니다. 이 책에는 이렇게 아목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자바인들 중) 일부는 길거리로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죽인다. 이들을 아무코 Amuco라고 부른다.”
쿡 선장이 이 책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한참 나폴레옹 전쟁 중인 1812년에나 영어로 번역되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아목’이라는 단어는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바르보사와 제임스 쿡 만큼이나 오늘날의 심리학자들도 이 아목이라는 현상에 꽤 매료된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들로서는 특정 문화권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폭력적 성향이 발현되는 것이 아무래도 관심이 갈테니 말입니다. 말 잘만들어내기로 소문난 이들답게 이들은 이렇게 특정문화권에서 드러나는 증상을 문화권증후군 (culture bound syndrome)라고 부릅니다. 아목이 대표적입니다.
문화권증후군 중에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도 있습니다. 화병이 그것입니다. 마치 아목이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문화에서 사람들을 미쳐 날뛰게 만들어서 다른 이들을 해치게 만드는 고유한 현상을 지칭하는 것처럼 어떤 심리학자나 의료인들은 한국에도 고유한 마음의 병이 있고 이것을 화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화병은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행하는 정신질환 정보 편람임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의
1994년 판에는 수록이 되었지만, 2013년 판에는 빠져있다고 합니다.
화병이 실재하느냐 여부와 무관하게 분명하게 화라는 것은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부터도 화가 드글드글 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상에 대한 화, 동료에 대한 화, 교회에 대한 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화. 그런데 세상을 둘러보면 저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가 코로나 19를 둘러싼 일종의 희생양 찾기입니다. 코로나 19가 심각성을 더해갈 수록 흥미롭게도 코로나 원흉이 새로 발굴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중국인들, 신천지 교인들, 동성애자들, 그리스도교 신자들. 제가 만약 사회학을 공부했다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멋진 통찰을 이끌어낼텐데 아쉽게도 그렇진 못하니 애석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고 김영삼 대통령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화’에 관한 일련의 기획글을 준비하였습니다. 김병직 선생은 조직심리학자입니다. 김병직 선생은 매주 화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한국의 문화를 분석할 것입니다. 모쪼록 이 연재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어떤 흥미로운 에너지를 의식하고 이 에너지가 좀 더 창조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임스 쿡과 다른 서구인들이 아목을 이야기할 때에는 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까, 그런 시각이 깔려 있습니다. 실제로 20세기 초의 어떤 서구의 의사들은 당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아목이 사라지게 된 것을 서구화의 기여로 해석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글쎄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이 설명이 그다지 설득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1916년 7월 1일 하루에만 영국과 독일의 젊은이들이 아목에 사로잡혀서 서로를 죽이는데 열중한 나머지 68,000명의 생명이 사라졌으니 아목을 특정문화에만 국한시키기에는 좀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연구자는 아목은 모든 문화에 존재하며 문화권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아목이 드러나도록 할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연재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화와 아목이 어떻게 이빨을 드러내는지 의식하고 좀 더 아름답고 고상하게 이를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빕니다.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부소장)
다음주부터 매주 목요일, 조직심리학 연구자 울산대학교 경영학과 김병직 교수님의 글이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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