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2020년 ‘찬미 받으소서’ 재고(再考)-용기 있는 지도자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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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공동의 집 돌보기’가 선포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현재의 맥락에 따라 이 회칙을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와 우리의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고 미래를 분명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지금 지구는 어떠한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언급했던 환경문제에 대해서 오늘 짧게 평가한다면, 불행히도 우리의 전반적인 상황은 호전되었다기보다는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회칙은 다양한 종류의 공해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정량화된 데이터를 인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전 세계의 공해 일반이 감소했다기보다는 증가했다고 할 수 있다.
산업화된 농업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학물질은 여전히 증가세며, 플라스틱의 생산량은 2015년 3억 2천만 톤에서 2020년에는 총 4억 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산업 쓰레기들로 말미암아 수은과 납의 체내 축적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이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을 검출할 수 있지만, 이 문제가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와 관련해 이산화탄소 배출 역시 여전히 증가세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2015년 354.6억 톤에서 2019년에는 368.1억 톤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밀도는 2015년 5월 403.96 PPM에서 2020년 5월 초에는 416.41 PPM으로 증가하였다. 이 수치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 밀도는 5.3백만 년에서 2.6백만 년 전 신생대 플라이오세의 대기보다도 더 높은 수치이기 때문이다. 플라이오세기 동안 해수면은 지금보다 20m 더 높았고 전체 평균기온 역시 3~4도 높았고, 너도밤나무가 숲을 이루고 남극에 침엽수가 번성하였다. 상황이 너무나 심각한 나머지 153개국 11,000명의 과학자들은 2019년 11월 말 경고문을 공동 발표하였다. '전 세계 과학자들의 기후 위기 경고'라는 제목의 문서는 다시금 우리에게 “기후 위기로 인하여 형용 못할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질과 종의 다양성과 같은 주제들도 언급하였는데 이 역시 그리 사정이 좋지 않다. 우리는 전 세계 많은 곳에서 새들과 벌레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종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우리가 이제 6번째 대량멸종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고 선언하였다.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가장 최근의 대량멸종은 6천6백만 년 전에 있었는데 이 멸종으로 공룡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모든 종의 75%가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은 무엇으로 인한 것인가?
공해와 기후변화, 수질, 종의 다양성과 같은 주제 각각은 복합적이면서 매우 심각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다른 요인이 하나 있다.
1972년 데니스 미도우즈 박사 (Dr. Dennis Meadows)와 그의 연구원들은 '성장의 한계'라는 책을 냈다. 그들의 프로젝트의 목표는 인구증가와 산업발달, 재생 불가능한 자연 자원의 소비, 공해의 수준 등 범세계적 역사적 흐름을 1900년부터 추적해나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모든 영역을 하나의 역동적인 세계모델로 통합시켜 2100년까지 가능한 전 세계적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다. 몇 가지 성과 중에서 내가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불편하게 보았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무한한 성장,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성장은 물리법칙상 결국 어느 순간에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자원이 한정된 지구에서의 산업발달은 다른 문제들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공해와 기후변화, 종의 다양성 손실 등은 실제로 지구가 우리에게 우리가 한 짓을 되돌려주고 있다. 이 문제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근본 원인이기 보다는 증상이다. 즉 우리가 마법을 써서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문제들이 표면 위로 떠올라 이전 문제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세계모델에 새로운 석유매장의 발견, 새로운 기술적 해결책, 인구조절 등의 새로운 긍정적인 데이터를 입력해보아도 결과는 항상 2100년 이전에 붕괴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데이터 입력은 고작해야 수년 정도 파국을 지연할 뿐 최종적인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왜 그리 힘들까?
위에서 언급한 세계 모델이 신뢰할만하고 가능한 것이라면 현재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은 과도한 것이고 붕괴할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 종의 생존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지도자들은 왜 보다 공격적인 행동을 취해서 이 예고된 미래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 것일까? 왜 임박한 사태에 대해서 우리는 모호하고 애매하게 인식하는 것일까?
이제 나는 다양한 환경 위기와 임박한 미래에 대해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어렵게 하는 세 가지 요인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이 문제들은 공간과 시간의 맥락에서 우리와 매우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주로 우리와 직접 닿아 있는 환경과 목전의 미래일 뿐이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우리나 우리와 가까운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 내일의 일, 다음 주의 일, 내년의 일 정도다. 정치인들과 대부분의 지도자는 4-6년 동안 유권자들을 위해 계획을 세울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년 앞의 범지구적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둘째, 범지구적 에코 시스템은 시간이나 날, 몇 해와 같은 인간적인 시간 기준 속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 지연이 존재한다. 수십 년이나 수백 년에 걸친 지연으로 인하여 우리는 지금 중요한 결정이나 희생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서 보지도 못할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예컨대 지금 우리가 전 세계 인구를 안정화한다면 그 효과는 60~90년 후에나 체감될 것이다.
셋째, 우리는 자연에서 소외되어 왔다. 자연은 이제껏 극복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소외가 일어난 이유 중 하나는 작금의 우리의 경제 철학이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이나 후대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우리가 자연을 대상화하고 경제적 가치의 측면에서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찬미받으소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경고했던 인간중심주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창조 질서가 갖는 본질적인 가치를 간과하고 우리에게 쓸모있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가 인류의 미래가 붕괴로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자로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에너지와 자원을 보존하는 윤리적 책임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가난한 이들과 다음 세대들은 보다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국가 지도자와 세계의 지도자들은 인류와 창조 질서 모두를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자신만을 위한 단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아젠다 중 하나는 강한 공동체와 회복력 있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될 때 하느님 백성을 위한 우리의 사랑은 실제적이며 지속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대와 생태적 회심으로의 초대는 이전보다 지금 더욱 유효하다. 이제 우리는 우리 지도자들이 세계의 미래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의 공동의 집을 위한 우리의 돌봄을 다시 새롭게 할 수 있도록 참여하고 지지해야 할 것이다.
가브리엘 라무그-나나와 신부 (Gabriel Lamug-Nañawa SJ)
예수회 필리핀 관구, 캄보디아 선교사
예수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구 생태환경 네트워크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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