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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난민] 고용허가제와 "괜찮아요."

이근상SJ 121.♡.116.95
2020.05.19 16:22 5,38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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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특이한 방향을 가진다. 경기가 풀리면 소위 자발적 실업이 증가한다. 물론 쉬고 놀려고 공장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공장 이전을 노리는 퇴직인데, 현재 일하고 있는 곳보다 조금 더 받거나, 조금 덜 위험한 곳으로 이직해보려는 움직임이다. 반면, 경기가 안 좋으면 외려 고용 통계상으로는 완전고용의 상태로 변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현재 있는 공장에서 떠나려 하지 않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욕설을 듣고, 최저임금을 못 받아도, 불법적/탈법적 대우를 받아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나가봐야 달리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통계상의 완전 고용상태란 해피한 상태라기보다 견디어 내는 시기를 뜻하니 숫자의 아이러니다. 언제든 조건이 더 좋은 곳을 찾아서 움직일 수 있는, 그러니까 특별할 게 없는 특별한법적 권한이 있는 내국 노동자(굳이 표현하자면 한국국적의 노동자)들과는 다르다. 고용의 일반적 의미가 지금 내 노동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향한 선택이라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에서의 고용이란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견디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조건, 곧 받아들이거나 떠나야하는 하나의 조건을 의미한다.

 

바로 옆 공장에서 조금 덜 위험한 일이 있다 해도, 더군다나 조금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을지라도. 대부분 노동 강도가 심한 곳에서는 인간의 신체적 한계 상 잔업이 제한되니, 추가노동수당이 적고, 결국 몸이 편한 곳이 임금도 더 많이 주는 황당한 현실에서도 이들은 공장을 옮길 수 없다. 사업주가 승인을 해 주지 않기 때문이고, 사업주의 승인이 외국인의 공장 이전에 필수적이라는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 때문이다. 물론 사업주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조항이다. 외국인이 필요한 열악한 사업장에 노동력을 공급하려는 외국인 노동정책에 부합한다는 주장과 함께

 

그러나 이로써 더 위험하고 더 값싼 임금의 사업장을 개선할 필요가 없어진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조건의 사업장으로 옮길 수 있는 권리가 없기에 사업장의 개선 이유 역시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 힘든 일에 더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할 이유도, 위험을 제거해야 할 이유도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쩌다보니 처음 배정된 공장이 힘겨운 곳이면 운명처럼 거기서 지내야 한다. 이 모든 황당한 논리의 배경은 싫으면 가라라는 막가파식 주장. “그래도 너희 나라보다는 좋으니까 온 거 아니냐?”는 비웃음이다. 다들 지들이 원해서 여기 잘 살고 있지 않느냐는 손사래.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우리와 함께 일하고 같이 밥을 먹어야 하며 부양해야 할 사람이 있는 우리와 같은사람이라는 생각에 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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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선 사업하느라 외국인 노동자들을 한국에 부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곧 그들이 필요해서 불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일을, 이런 임금으로 하지 않기에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바깥에서 부른 사람들이다. 그들을 도와주러 부른 게 아니라 우리의 절실함에서 초대한 사람들이다. 이 단순한 사실에 근거해서 정책을 펴는 일은 어찌 이리 힘든가?

 

부끄러움과 연민이 고장 난 사람과의 대화란 결국 힘자랑 말고 남는 게 없다. 법으로 버젓이 규정해 놓은 최저임금제를 어기고, 마치 주인에게 소속된 노예처럼 계약에도 없는 다른 공장으로 사람을 보내 일을 시키는 일을 해 놓고도 경기가 어려울 때 다 같이 돕고 사는 거라 주장을 하는 이와 오전 내내 말다툼했다. 사업주가 이와 같은 불법을 저지르면 그제야 공장 이전의 권리가 생기는 노동자의 편이 되어 주었다. 임금도 못 주고 남의 공장에 일을 시키는 형편이니 공장을 옮기도록 승인해 달라 부탁했다. 주저하는 사업주에게 그럼 법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으름장도 놓았다. 법적 도움이 되어야 할 고용센터 역시 당사자 간에 원만하게해결하기를 원하는 걸 피차 잘 아니, 이런 으름장에 벌벌 떨 것도 없다. 여하튼 그나마 명백한 위반사례를 가지고 있는 경우여서 공장 이전을 승인해 주었다.

 

갑자기 봄비가 억수처럼 내리는 와중에 공장 이전 승인을 받는 알페시오씨를 이웃살이쉼터로 데리고 오는 중, 이번에는 고용센터 직원이 전화를 주었다. 공장에서 이전 승인은 보내주었는데, 노동자 측 사유로 퇴사 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다른 공장에서 일을 찾아도 거기서 장기 재계약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다시 공장에 전화를 걸어 공장 측 경영상의 이유로 퇴직 처리를 해 주어야 함을 역설(?). 혹시 공장에 불리한 조건이 되지 않느냐는 억지 주장과 회사에 아무런 불리가 없다는 호소와 설명이 오감. 그리고 다시 몇 시간 뒤에서야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퇴직 처리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노동자들은 다 아무 말 없이 나갔는데 왜 얘만 이렇게 까다롭냐는 비난의 전화는 덤이었다.

 

경기도 안 좋아 지금 노동자들은 공장을 이전할 형편이 못 된다. 안주면 안 주는 대로, 위험하면 위험한대로 지금은 다들 견디며 산다. 그 와중에 추락해 버린 경제는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렸다. 가만히 앉아 죽느니 나가서 뭐라도 해 보고 죽는 게 나은 상황. 사람들이 밀려나고 있다. ‘새로 공장을 찾기가 아주 힘들 거예요. 괜찮겠어요?’ 온종일 몇 차례 같은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협박처럼 들렸을지도 몰라 미안하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리 말하던 그의 핸드폰에서 아이들의 얼굴이 떠온다. 가족들이 화상전화를 해 온 모양이다. 전화를 받으라 했다.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괜찮아가 반복되고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참으로 괜찮지 못한 그는 정말 괜찮아야 한다. 그건 그를 부른 우리의 몫이다.

 

 

이근상 신부(예수회)

예수회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이웃살이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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