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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네팔 대홍수를 애도하는 법

조현철SJ 121.♡.226.2
2026.09.29 15:02 3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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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봤을 때 네팔 대홍수 영상은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지난 8월 26일 오전 8시경 네팔과 티베트 국경지대의 히말라야산맥 해발 5200m 지점에서 거대한 빙하와 암석 더미, 토사가 무너져 내려 규모 5.2의 진동으로 땅을 흔들며 렌데강으로 쏟아졌다. 협곡의 강물은 삽시간에 시속 약 180km(초속 약 50m)의 급류로 변했고 수위는 30분 만에 9m 넘게 치솟으며 하류 쪽 마을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재난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집계된 네팔과 중국 실종자는 6163명, 사망자는 1496명에 이른다. 네팔에서만 7천여 채의 건물이 파손되고 3만 2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도로와 다리가 무너졌다. 네팔 정부는 직접적인 물적 피해액을 18억 달러로 추산했다.

 

국제사회는 ‘돌발 대홍수’라는 재난을 당한 네팔에 애도를 표하고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중요한 게 하나 빠졌다. 바로 ‘책임’이다. 이번 대홍수는 처음에 거론되던 ‘빙하호 붕괴 홍수’가 아니라 ‘얼음-암석 사태(沙汰)’가 원인이라고 추정하는데 어느 쪽이든 근원은 결국 지구 가열에 의한 기후변화다. 재난은 네팔에서 일어났지만, 재난의 근원은 지구적이고 책임은 국가마다 차등적이다. 산업화(1750년) 이후 네팔의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은 전 세계의 0.01%로 110위권이다. 1위는 단연 미국(23.8%)이고 이어서 유럽연합(16.5%), 중국(15%), 러시아(6.7%), 영국(4.4%), 일본(3.8%), 인도(3.6%) 순이다. 한국은 1.11%로 14위 정도다. 기후 책임도 대체로 이 순서일 터다. 하지만 주요 탄소 배출국은 애도와 지원을 말할 뿐 기후는 거론하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애도와 지원이 재난의 근원을 덮고 책임을 가린다.

 

지난 2일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구 기온 상승 1.5도 이하 제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최대한 빨리 1.5도 이하로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전보다 더 빠르게 감축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이번 네팔 재난에 보인 국제사회의 반응을 보면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마른 대홍수’라는 신종 재난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세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간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참혹하고 끔찍한 재난을 당한 네팔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이 해야 할 것은 원조가 아니라 배상이고 이제라도 기후위기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일이다. 트럼프는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임기에서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했다. 기후위기에 가장 책임이 크고 지구 가열을 막는데 가장 비협조적인 미국 정부의 애도와 지원은 악어의 눈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종된 우리 노동자들을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여 수색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후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지금 정부가 보여온 기후 행보에 비추어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미국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지금 정부도 어떻게든 온실가스 감축량을 줄이고 감축 시기를 늦추려고 했다. 우리 국회는 네팔 대홍수가 일어난 날 ‘탄소중립기본법’을 통과시켰는데, 시민 공론화 결과 대다수가 지지한 ‘조기 감축’이 아니라 ‘선형 감축’ 경로를 선택했다. 선형 감축 경로는 더 많은 탄소의 대기 누적으로 지구를 더 많이 가열하고 미래 세대에 더 많은 부담을 주는 감축 방식이다. 날짜가 겹친 건 우연이겠지만, 충분히 상징적이다. 우리나라의 애도와 지원에서도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2021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공개됐던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 사이먼 코페의 연설 영상이 떠오른다. 코페 장관은 정장 차림으로 허벅지까지 차는 바닷물에 들어가서 연설했는데, 그곳은 이전에 땅이었다. 투발루의 평균 육지 고도는 해발 약 2m이고 매년 0.5㎝씩 해수면이 상승한다. 5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해수면이 2.5cm가량 올라갔고 땅은 그만큼 더 줄었겠다. 당시 총회장에 나타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런 섬나라를 ‘광산의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지금 카나리아가 죽게 생겼는데 기후 책임이 큰 국가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 몰라라, 하던 대로 행동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전쟁을 계속하고 우리나라는 ‘3대 메가프로젝트’라는 초대형 인공지능 인프라 사업을 시작했다. 외양은 달라도 모두 온실가스 배출을 대규모로 늘린다.

 

히말라야 빙하와 눈에서 인더스강, 갠지스강, 메콩강, 황하, 양쯔강을 비롯한 수많은 강이 시작한다. 그런 히말라야 지역의 온도가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올해 초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히말라야 지역은 기온이 10년당 0.15~0.6도로 올라 100년당 0.74도인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돈다. 히말라야의 눈과 얼음이 녹아내리는 동안은 빙하 붕괴로 홍수가 잦아질 것이고 다 녹아내리고 나면 아시아는 만성적인 가뭄에 시달릴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기후재난이 일어나야 정신을 차릴까. 과연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까.

 

네팔 정부는 이번 대홍수를 ‘기후불의’로 규정하여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하는 대신 주요 탄소 배출국에 정의와 배상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와 갈등을 우려한 듯 직접 배상은 요구하지 않고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 이사회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기금의 지원 상한선은 단일 사안당 2000만 달러로 네팔 재난 피해 복구와 재건에 필요한 50억 달러에 턱없이 못 미친다.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미국이 이란 전쟁에 쏟아부은 비용만 375억 달러가량 된다. 사람을 살리는 데 보다 죽이는 데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는 게 현실이다. 기후 책임이 큰 국가일수록 역지사지,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과 배상은 주요 탄소 배출국의 실질적 책임 인정과 적극적인 탄소 감축, 유엔 기금의 실효성 있는 확충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재난을 두고 네팔 시인 아비 수베디는 “세계는 지켜보고, 듣지만, 행동하지는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기후위기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신은 항상 용서하고, 인간은 가끔 용서하지만,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스페인 속담을 인용하곤 했다. 네팔 대홍수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 자연’이 ‘행동하지 않는 세계’에 보내는 경고로 여겨야 한다. 자연의 경고는 더 잦아지고 강력해질 것이다. 온몸에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간신히 살아난 97세 노인 구나 마야 보하라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고 한다. “왜 물이 날 덮쳤을까?” 이 물음에 진정으로 응답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네팔 대홍수에 대한 진정한 애도 방식이다.

 

 

조현철 신부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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