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난민] 로힝야, 슬픔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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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로힝야’라는 단어를 들은 건 지난 학기, 학교 교수님을 통해서였다. 교수님은 6~7년간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캠프를 오가며 일하셨다고 했다. 그곳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인터뷰를 분석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했다. 처음 들어본 로힝야 이야기는 낯설어서, 나는 그저 “그렇군요”라고 답했을 뿐이었다.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수업에서 미얀마의 정치 상황을 다루면서, 로힝야 문제가 미얀마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를 중심으로 살아온 무슬림 소수민족이다. 1982년 시민권법 제정 이후 권리를 인정받기 더욱 어려워졌으며, 이동과 교육을 비롯한 일상의 여러 영역에서 심각한 제약을 받아왔다. 차별과 폭력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2017년 미얀마 군부의 대규모 군사작전 이후 70만 명이 넘는 로힝야 사람들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방글라데시의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근간에는 군부독재와 식민 지배의 역사, 민족주의와 종교적 갈등, 소수민족을 배제해 온 정치와 사회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동시에 ‘민주주의’를 꿈꾸던 미얀마의 모습과 그 안에서 로힝야족을 향한 박해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이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모든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누군가는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마저 부정당했다. 가장 소외된 사람이 잊혀가는 현실에서 ‘모든 사람’을 외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와 사단법인 아디가 함께 마련한 영화 상영회에 참여해 「로스트랜드」를 보게 되었다. 「로스트랜드」는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 살아가는 로힝야 남매 샤피와 소미라가 흩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여정을 두 아이의 시선을 따라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더 이상 ‘70만 명이 넘는 난민’이라는 숫자가 아니었다. 가족을 만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었고, 배를 타고 국경을 넘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내 옆의 친구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뒤덮은 채 울고 있었다. 나 역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충격적이었다. 내가 모르고 있던 지구 한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다 내가 그동안 그것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전에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난민과 이주민을 상징하는 조각상을 본 적이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난민들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해 설치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것이 특별히 내 삶과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그 조각상 속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 살기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 가족을 잃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비로소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난민’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한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갖게 된 순간이었다.
얼마 뒤에는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에서 마련한 책 모임에 참여해 로힝야 활동가들이 펴낸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를 읽었다. 이 책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캠프 안에 마련된 여성 커뮤니티 공간 ‘샨티카나’를 중심으로 로힝야 여성들의 삶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회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샨티카나’는 벵골어로 ‘평화의 집’을 뜻하는데, 좁은 난민캠프 안에서 여성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춤추고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며 서로를 돌보는 공간이라고 한다.
활동가들의 시선으로 그려낸 샨티카나의 이야기를 통해 기쁨과 슬픔이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다가왔다. 책에서 표현한 “기쁨과 슬픔을 순환시키는 폐허의 공동체가 만드는 생동감”이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과 상실이 분명 그곳에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샨티카나에서는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여성들이 만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대화하지 않았고 오해도 많았던 무슬림 여성들과 불교도 여성들은 계속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상처와 오해가 남아 있는 자리에서도 서로를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쁨처럼 다가왔다. 그곳에서 이루어진 ‘환대의 박수’도 기억에 남았다.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던 로힝야 여성들은 손바닥을 크게 부딪히지 않고 서로 스쳐 지나가게 하는 몸짓으로 박수를 대신했다고 한다. 소리를 크게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조용한 박수였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기억하고 환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샨티카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는 그곳에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향을 잃은 상실과 아픔 속에서도 사람들은 만나고, 웃고, 춤추며 서로를 환대하고 있었다. 폐허와 같은 공간에서도 기쁨과 슬픔은 함께 흘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다시 살아갈 힘과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 제1항이 떠올랐다. “현대의 모든 사람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기도 하다.” 그 의미가 다가온 순간이었다.
로힝야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책에는 미얀마 양곤에서 만난 한 그리스도인 택시기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무슬림으로 오인될 경우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책은 미얀마의 종교적 소수자들조차 자신의 안전을 염려해야 하는 현실이 다른 소수자들을 향한 연대를 어렵게 하고, 결국 그들의 죽음 앞에서 침묵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묻는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게 되는 사회에서 종교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평화를 말하면서도 가장 약한 이들의 곁에 서지 못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누군가의 존재와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 신앙은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다시 묻게 되었다.
2017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를 차례로 방문했다. 교황은 순방 전부터 성 베드로 광장 삼종기도 등을 통해 박해받는 “로힝야 형제자매들”의 현실에 깊은 슬픔을 표하며, 그들의 권리와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촉구해 왔다. 그러나 당시 미얀마 정부와 군부는 ‘로힝야’라는 명칭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얀마 가톨릭교회 또한 교황이 현지에서 이 이름을 공개적으로 사용할 경우 가톨릭교회와 다른 소수자들에게 미칠 파장을 우려해 명칭 사용에 신중해 달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교황은 미얀마 방문 중 ‘로힝야’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모든 민족집단의 정체성과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얀마 일정을 마치고 방글라데시로 이동한 교황은 12월 1일 다카대교구장 관저에서 열린 종교 간 평화 모임에서 로힝야 난민 16명을 직접 만났다. 한 사람씩 손을 맞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교황은, 박해한 이들과 상처 입힌 이들, 그리고 무관심한 세상을 대신해 용서를 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그들의 이름으로 불렀다. “오늘날 하느님의 현존은 또한 ‘로힝야’라고 불립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성경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신다. “너는 내 것이다.”(이사 43,1) 하느님에게 사람은 수많은 군중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지워버리지 않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나에게 ‘로힝야’라는 이름도 그랬다. 처음에는 낯선 단어였고, 뉴스에서 잠깐 지나가는 이름이었으며, 수업에서 한 번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제 그 이름을 들으면 라카인주의 마을을 떠나 국경을 넘는 사람들, 콕스바자르의 빽빽한 난민캠프, 샨티카나에서 서로를 환대하던 여성들, 가족을 만나기 위해 위험한 바다를 건너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어느 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밤중이었고 창밖에는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보였다. 순간 지금도 이 바다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생각했다. 살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있을까 생각했다. 물론 그저 바다 위를 지나가는 배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동안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조용히 기도했다. 이제 그 기도 안에는 이름이 하나 있다.
로힝야.
장소현 데보라 (가톨릭 평화 활동가·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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