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용서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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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용서의 공동체다.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길을 열어 주고, 죄인을 단죄하기보다 회개로 이끄는 것이 복음의 정신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누군가의 잘못으로 다른 이가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용서는 같은 자리에서 시작될 수 있을까. 가해자의 참회가 확인되면 공동체의 상처 역시 치유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프리 로빈슨의 『성 권력 교회』는 이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그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가 교회 밖에서 교회를 비판한 관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드니 대교구 보좌주교를 지낸 로빈슨은 1990년대 오스트레일리아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성추행 사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대응을 담당했다. 교회의 제도와 언어를 잘 알고, 실제로 이 문제를 다루는 책임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오랜 숙고 끝에 내놓은 진단인 셈이다.
로빈슨은 교회가 성추행을 주로 ‘하느님을 거스른 성적인 죄’로 이해해 온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잘못을 이렇게 바라보면 그에 대한 응답도 자연스럽게 참회와 고해, 사죄와 용서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가해자가 죄를 인정하고 회개의 시간을 거쳤다면, 문제 역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성추행은 가해자와 하느님 사이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 책은 교회가 성추행을 “피해자에게 입힌 상처보다 하느님을 거스르는 성적인 죄”로 여기는 한, 교회는 이 문제에 제대로 응답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용서의 언어를 버리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용서를 더 온전하게 이해하자는 요청에 가깝다. 가해자가 하느님 앞에서 참회했는지를 묻는 것과 함께,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피해자는 지금 안전한지, 공동체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달라졌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빈슨은 교회에 더 큰 손상을 입힌 것이 사건의 공개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대응이었다고 진단한다. 은폐와 부인, 피해자보다 사제와 수도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문제를 드러내지 않은 채 가해자를 다른 자리로 옮기는 방식의 오랜 대응이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가해자를 비난하고 공동체에서 영원히 지워 버리자는 주장이 아니기에 그렇다. 오히려 이는 사건을 바라보는 첫 질문을 “가해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은 지금 안전한가”에서 시작하자는 원칙이다. 피해자의 경험을 충분히 듣고, 그 존엄과 안전을 우선하며, 폭력이 가능했던 구조도 함께 성찰하자는 요청이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결코 교회의 전통과 동떨어진 낯선 시각이 아니다. 피해자의 자리에서 사건을 다시 바라보는 것은 자비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자비가 가장 먼저 향해야 할 자리를 회복하는 일이다.
물론 가해자에게도 회개와 회복의 가능성은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그가 남용한 권력을 다시 돌려주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로빈슨은 주교나 수도회 장상에게 다음과 같은 검증 방법을 제안한다. 사건과 관련된 사실을 공동체 앞에 숨김없이 밝히고도, 그 사람에게 다시 직무를 맡기는 결정을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런 준비가 없다면 그에게 직무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목 직무는 개인의 명예나 보상이 아니라, 공동체로부터 위임받은 신뢰와 권한이기 때문이다. 회개한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 회복이 반드시 이전의 자리와 권한을 되돌려 받는 방식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많은 교회 공동체들을 위해 로빈슨의 성찰은 하나의 실마리를 건넨다. 가해자의 참회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상처에서 시작할 것, 용서와 권력의 회복을 구분할 것, 감추어진 판단이 아니라 공동체 앞에 설명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것.
무엇보다 이는 교회를 공격하기 위한 요구가 아니라, 교회가 자신이 선포해 온 자비와 용서의 복음을 스스로 살아 내기를 바라는 요청이다.
정다빈 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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