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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녹색과 퀴어가 만날 때

조현철SJ 121.♡.226.2
2026.07.10 13:52 8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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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지난 628일 한국퀴어영화제로 끝났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서울퀴어퍼레이드는 613일 을지로입구역에서 종각역 사이에서 진행됐다.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는 평소에는 좀처럼 공론장에 닿지 못한다. 누군가의 삶이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된 뒤에야 사회는 뒤늦게 귀를 기울이고, 그마저도 잠시일 때가 많다.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적 목소리도 별로 없다. 지난 6·3 지방선거 때도 그랬지만, 비정규직,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생태와 기후 등 소수자 관련 의제나 정책 논의는 늘 미약하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다. 억울하면 목소리라도 크게 낼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우울한 현실에서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성소수자와 연대자가 함께 모여 당당하고 흥겹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유쾌하고 통쾌한 자리다.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도 묵직하다.

 

본디 기이한’, ‘괴상한이란 뜻의 퀴어는 한때 성소수자의 멸칭이었으나 이제는 성소수자의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모두 아우르는 애칭이 된 듯하다. 이번 퀴어퍼레이드 행사장을 둘러보며 무엇보다 퀴어가 일구어 온 연대의 폭을 느꼈다. 모두 70개의 부스가 차려졌는데 성소수자 단체 외에도 인권, 장애, 노동, 농민, 평화, 종교, 여성 등 다양한 시민단체와 꽤 여러 나라의 대사관이 들어왔다. 행사장 밖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도 열렸다. 퀴어퍼레이드는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자가 함께 만드는 축제의 장이었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도 이번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이전에도 활동가들이 개별로 참여하긴 했지만, 조직 차원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단체 중에서도 처음인 듯하다. 올해 퀴어축제의 구호는 교집합: 다름을 연결로였는데 녹색연합은 ‘41번 부스에서 녹색과 퀴어를 연결했다. 퀴어는 녹색과 만나 다름을 비인간 존재로 확장하고, 녹색은 세상의 다채로운 다름과 만나 더 넓은 연대를 다짐했으리라.

 

현실에서 세상을 읽는 방식은 여전히 이원론이 우세하다. 이원론적 관점은 무엇이든 양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간은 남성과 여성, 백인과 유색인 등으로, 세상은 인간과 자연 등으로 나눈다. 둘로 나누고 나면 한쪽은 우월(정상)하고 다른 쪽은 열등(비정상)하다는 딱지를 붙이고 위계를 만든다. 열등한 쪽은 사회적 소수자로 억압받고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생태여성주의가 상징하듯이 자연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에 의한 수탈을 겪어왔다. 자연생태계와 그 옹호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소수자다. 성소수자는 질병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원론적 관점은 을 지배하고 에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완결된다. 하지만 상대의 다름을 틀림으로 판단하고 만을 표준으로 강요하는 위계 이원론은 전체주의이자 폭력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 목소리와 자리가 있다. 빼앗겼을 뿐, 목소리와 자리가 없는 존재는 없다. 자기 목소리와 자리를 가질 권리는 존재 자체에서 오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존재의 권리.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와 자리를 빼앗는 차별과 혐오는 법으로라도 막아야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합의운운하며 차일피일 기약 없이 미루어져 왔다.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비인간 존재들도 자본주의가 추동하는 성장주의와 개발주의에 자기 목소리와 자리를 빼앗기고 효용과 개발의 대상으로만 취급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존재할 권리는 사회적 합의로 보장되는 게 아니라 존재하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원론적 관점과 달리 세상은 칼로 두부 베듯이 양분되지 않는다. 퀴어는 성과 젠더가 정상비정상으로 양분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생물다양성의 자연은 이원론자가 아니라 퀴어의 손을 들어준다. 숲과 산, 강과 갯벌과 바다, 어디를 둘러봐도 자연은 다양성으로 가득하다. “동성 간의 다양한 성적 행동은 생물학자들의 체계적인 관찰과 실험, 또 여러 일화를 통해 1,000여 종이 넘는 동물에서 보고되었다(이수지, <자연스럽다는 말>). 퀴어와 퀴어 아닌 것을 따지는 건 인간일 뿐, 이 둘은 자연에서 조화롭게 공존한다. 퀴어는 다름을 배제하는 단일함과 순수함을 거부하고 다름을 다양함으로 환영한다. 다름을 열등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억압, 혐오, 차별하는 모든 것에 저항한다.

 

자연의 다양성은 일사불란함에 길든 우리의 사고방식을 뒤집어엎으라고 한다. 녹색은 특정한 삶의 태도를 가리킬 뿐 아니라 그렇게 살라는 요청이라는 면에서 명사나 형용사보다 동사에 가깝다. 퀴어도 동사의 느낌이 강하다. 퀴어는 행동을 촉구하는 명령이다(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자연은 퀴어하다>). 퀴어는 이원론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뒤흔들어 균열을 낸다. 이번 퀴어퍼레이드도 경계를 허물려는 활력이 넘쳤다. 퀴어의 궁극적 목표는 퀴어의 극복에 있지 않을까. 모두가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존중하게 될 때 기이하고 괴상한이란 뜻의 퀴어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서로 존재의 권리를 존중할 때 평화가 깃든다. 이동하기 힘들 만큼 사람이 운집한 퀴어퍼레이드가 평화로웠던 까닭도 여기 있지 않았을까. 불행히도 지금 세상에는 자기 목소리와 자리를 빼앗긴 존재가 널렸다. 이번 퀴어축제는 함께 모여 목소리와 자리를 빼앗긴 모든 존재들을 기억하고 연대하자는 다짐으로 남았다. 연대는 희망을, 희망은 용기를, 용기는 저항을, 저항은 변화를 낳는다. 녹색과 퀴어의 만남이 남긴 메시지!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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