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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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이름은〉은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폭력의 계보를 그려내려는 야심을 지닌 작품이다. 제주 4·3, 광주 5·18, 그리고 1990년대의 학교폭력까지, 세 세대를 가로지르는 사건들은 한 가족의 서사 안에 정교하게 배치된다. 영화는 역사의 폭력이 어느 한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상처, 관계의 왜곡을 통해 다음 세대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는 사실을 여러 시대의 장면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은 그저 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을 넘어, 한 존재가 세상 안에서 불리고 기억되고 증언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은 그 사람이 겪어온 고통과 삶의 시간이 공적 언어 안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영화 〈내 이름은〉이 “이름을 잊은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찾는 이야기”를 제주 4·3의 기억과 연결한 것은 상징적인 선택이다. 오랫동안 ‘사건’이라는 건조한 명칭 속에 갇혀 있던 제주 4·3의 역사는 아직 충분히 불리지 못한 수많은 이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4·3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비극 가운데 하나이지만, 오랫동안 제대로 말해지지 못했다. 영화 〈내 이름은〉은 이 침묵의 역사를 한 인물의 기억 상실과 해리, 그리고 뒤늦은 회복의 과정으로 형상화한다. 4·3 희생자와 유가족은 폭력과 죽음 자체뿐 아니라 이후의 침묵, 낙인, 연좌제, 국가폭력의 후유증까지 견뎌야 했다. 말할 수 없었던 시간을 증언하기 위해 영화가 택한 방식은 비교적 직선적이다.
1948년의 제주, 1980년 광주, 1998년의 학교폭력, 그리고 오늘의 시간은 한 가족의 이야기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러한 구성은 폭력의 구조와 역사적 상처가 어떻게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세대를 계승해 개인들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국가폭력의 상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의 구조는 선명하고 효과적이다. 다만 그 선명함은 때로 인물들의 삶을 지나치게 분명한 의미의 자리로 배치함으로써, 관객이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기보다 영화가 마련한 메시지를 먼저 읽게 만들기도 한다.
그 한계는 특히 주인공 정순의 서사에서 두드러진다. 이름의 상실과 존재의 대체, 생존자의 죄책감, 억압된 기억, 말하지 못한 세월은 모두 정순의 삶을 이루는 깊은 상처의 결들이다. 그러나 그 결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가지런히 수렴하면서, 정순은 점차 살아 있는 한 사람이라기보다 ‘4·3의 상처’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정순이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에 관해서 점차 알게 된다. 그러나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았고 때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침묵했으며, 그래도 끝내 견뎌내 왔는지는 충분히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가 그려낸 이야기의 미완성은 서사적 실패라기보다 구조적 필연에 가깝다. 영화는 이미 존재했지만 충분히 말해지지 못한 역사적 고통을 연결하고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이름은〉은 4·3을 기억하고 말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3 안에는 국가폭력과 민간인 학살, 냉전과 분단, 이념의 낙인, 생존자의 침묵, 여성과 아이들의 상처, 마을 공동체의 붕괴, 그리고 오랜 세월 이어진 회복의 노력이 함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지니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역설적으로 그 한계 안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는 “이름을 되찾는 일”을 말하지만, 정작 정순이라는 인물을 완전히 자기 이름으로 귀환시키지는 못한다. 어쩌면 이 한계야말로 4·3을 기억하는 우리의 현재 위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 모든 이름을 되찾지 못했다. 아직 모든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고, 모든 침묵을 듣지 못했으며, 모든 책임을 다 묻지 못했다. 그 기억은 여전히 계속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내 이름은〉은 완결된 서사라기보다 하나의 발화로 남는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을 아직 부르지 못하고 있는가. 어떤 고통을 너무 쉽게 역사라는 말 속에 묶어두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과거의 폭력은 오늘의 관계와 공동체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되풀이되고 있는가.
정다빈 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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