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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자연은 기계가 아니다

조현철SJ 121.♡.226.2
2026.06.11 14:07 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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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AI / AI generated

 

어느새 6, 여름이다. 올여름은 기온이 평년보다 높고 강수량도 많을 것 같다는 지난달 기상청 날씨 전망을 보면서 문득 지난 4월 녹색연합이 문제를 제기한 동해안-신가평 50만 볼트 송전선 동부 구간공사 현장이 떠올랐다. 내년 6월 완공을 목표로 경북 울진에서 경기 가평까지 약 230km 구간에 송전탑 440기를 세우는 공사에서 공사 허가를 받지 않은 울진, 삼척, 봉화 일대 총 37곳의 산림이 훼손됐다. 이 중 다수는 백두대간 보호구역과 산림유전자 보호구역이라 원칙적으로 개발이 금지된 곳이다. 철탑 주변 땅은 쩍쩍 갈라졌고 흙과 암석이 경사면과 계곡을 따라 흘러내렸다. 산림 훼손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폭우 때 산사태 위험을 키우며 대형 재난을 예비한다.

 

앞으로 송전탑 건설로 인한 산림 훼손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같다. 지난해 10월 국무총리 산하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34만 5천 볼트 송전선로 70개 노선과 변전소 29곳의 신설을 결정했다. 이대로 진행되면 전라도와 충청도 등의 산과 들, 논과 밭 곳곳에 거대한 송전탑이 들어서게 생겼다. ‘밀양의 전국화다. 송전선로는 시작점은 달라도 끝점은 수도권, 특히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선다는 용인을 향한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 공사를 밀어붙이면 이번 동해안-신가평 송전선 공사에서 생긴 문제는 일상이 될 터다.

 

산림 훼손이 보도되자 정부와 한국전력 관계자는 공사 구간을 전수조사해서 문제가 확인된 곳은 시정하겠다, 마대 부식과 지반 변화로 일어난 토사 유출은 보수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마대는 오래되면 부식하기 마련인데 어떤 마대로 보수하겠다는 건지, 송전탑으로 생긴 지반 변화를 송전탑을 계속 세우면서 어떻게 막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시정이나 보수가 가능한지 보다 훼손된 산림을 시정하고 보수하겠다는 발상이다

 

시정과 보수라는 말은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보는지 암시한다. 지금 우리의 자연관은 대체로 근대 서양에서 등장한 기계론적 관점이다. 자연을 기계로 보면 훼손된 산림의 시정과 보수는 기계의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발 예정지에 보호할 희귀 식물이 있으면 다른 데로 옮겨 심고, 갯벌과 바다를 메워 수많은 생명체의 서식지가 없어지면 다른 곳에 서식지를 마련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망가뜨린 자연을 우리가 복원할 수 있을까? 그럴 능력은 차치하고 그럴 의지나 있을까? 가리왕산 원시림을 없애고 스키장을 만들면서 나중에 복원하겠다더니 이제는 딴청을 부리는 게 현실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삼림 생태학자 수잔 시마드는 1997년 숲은 나무의 단순 집합이 아니라 땅속 진균으로 나무뿌리들이 서로 거미줄처럼 얽힌 네트워크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네이처는 시마드의 논문을 표제작으로 게재하며 표지에 우드 와이드 웹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숲의 모든 나무는 균근 연결망을 통해서 물질(탄소)을 교환하며 서로 소통하고 반응한다. 숲의 지하 연결망은 번영은 모두 함께누리는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렇듯이, 숲은 사회적이다.

 

실은 숲의 나무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철 카슨의 말대로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현실에 월드 와이드 웹’(WWW)이 있다면 실제 현실에는 생명의 월드 와이드 웹이 펼쳐진다.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자연주의자 존 뮤어는 세상 모든 것은 끊어지지 않는 수천 개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얽혀 있다고 했다. 이 끈으로 에너지 흐름과 물질 순환이 이뤄진다. 산과 숲, 강과 갯벌과 바다의 복잡하고 정교한 생명의 연결망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니 개발부터 하고 문제가 생기면 복원하겠다는 불가능한 발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우리가 그렇듯이, 자연은 살아 있다. 자연은 기계가 아니다.

 

존 뮤어의 끊어지지 않는 끈은 실은 끊어져서는 안 되는 끈이다. 나무는 뿌리와 잎으로 빗물을 흡수, 방출하여 물의 순환을 제어한다. 나무뿌리는 토양 유출을 막아 산사태를 억제한다. 식물과 조류는 빛과 이산화탄소와 물을 흡수하여 에너지를 생산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이 모두가 보이지 않는 끈을 이루는데, 우리는 이 연결고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생명의 그물망을 훼손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러니 자연에 개입할 때 겸손하고 신중해야 한다. 로빈 월 키머러의 말대로 받드는 거둠이 필요하다(<향모를 땋으며>).

 

자연과 사람은 서로 돌보는 관계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을 존중해야 하나,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자연 자체의 가치와 존재 이유는 무시하고 우리에게 돌아올 단기간의 이윤과 효능만 생각한다. 이 땅 곳곳에 선을 긋고 그 선을 따라 개발하고 방해가 되는 건 없애버린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고치겠다며 거침없이 산을 파헤치고 강을 막고 갯벌을 메우는 이 시대의 무심함이 섬뜩하다. 이 무심함의 뒷배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이 보여주는 전망은 애매하고 애매한 만큼 불안하다우리에게는 산과 들, 강과 갯벌과 바다, 온갖 비인간 생명체와 함께 공존하려는 마음, 생태적 숙고와 배려, 비인간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연대가 절실하다.

 

생태와 기후, 불평등, 전쟁 등 복합 위기의 시대다. 위기는 생각과 행동을 바꾸라는 경고다. 안타깝게도 위기의 징후는 갈수록 짙어지는데 전환의 징후는 찾아보기 힘들다. 선거철이 되자 어김없이 구호성, 선심성 개발 공약이 난무한다. 아직도 이런 게 표로 이어지는 현실이 답답하다. 그래도 재작년 겨울에서 이듬해 봄까지 국회 앞과 전국 곳곳에서 평등과 연대와 공존을 염원하던 많은 시민을 떠올리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게 무언지 알아보는 눈 밝고 속 깊은 선택을 기대하며.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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