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사회] 변화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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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일러스트(ChatGPT·DALL·E 생성)
새 교황 레오 14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의 가톨릭이 경험하고 있는 한 가지 깊은 불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교세의 약화나 세속화에 대한 불안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교회가 무엇을 바꾸어야 하고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최근 미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주목받아 온 흐름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가톨릭 통합주의(Catholic integralism)’ 혹은 ‘후기 자유주의 우파(post-liberal right)’라 불리는 사조다. 이 흐름은 신학적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 실천과도 강하게 연결된다. 2022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프란치스코 대학교 스튜벤빌에서 열린 회의에는 애드리언 버뮬, 스콧 한 같은 학자들뿐 아니라 당시 젊은 정치인이었던 J. D. 밴스도 참여했다. 이들의 등장은 미국 가톨릭 보수주의가 더 이상 전례나 도덕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질서 전체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정치신학적 기획과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 흐름에는 우려할 지점이 적지 않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배타적 문화전쟁의 언어, 이주민과 소수자 문제를 둘러싼 경직된 태도는 복음의 보편성과 충돌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현상은 단지 ‘극우적 일탈’로만 치부해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 밑바탕에는 현대 세계 앞에서 가톨릭이 오래도록 품어 온 불안, 곧 교회가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불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아우구스티노 성인이다. 『고백록』의 유명한 고백, “주님, 당신을 향하도록 저희를 지으셨으니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불안합니다”라는 문장은 한 인간의 실존적 방황을 표현한다. 인간은 욕망과 지성, 자유와 한계 사이에서 흔들리며, 마침내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찾는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노의 불안은 개인 내면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로마 제국의 몰락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시간과 공간에 속해 살아가는지를 물었다. 『신국론』은 바로 이 시대적 불안에 대한 신학적 응답이었다.
오늘의 가톨릭도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급진적 개인주의, 디지털 기술, 미디어 권력, 전쟁과 이주, 기후 위기, 인공지능의 확산은 인간과 공동체의 의미를 새롭게 묻고 있다. 교회는 이 변화 앞에서 단순히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대의 흐름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길 수도 없다. 이 긴장 속에서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의 등장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우구스티노회 출신인 레오 14세는 현대 문화의 에토스, 특히 매스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욕망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방식에 대해 오래전부터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2012년 세계주교시노드에 당시 아우구스티노회를 대표해 참석했던 로버트 프리보스트 총장은 현대 미디어가 그리스도교적 가치와 충돌하는 문화적 감수성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소 신중하고 과묵한 인물로 알려진 그에게서 나온 이 발언은, 그가 현대 미디어 문화의 흐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인물은 아님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레오 14세를 ‘보수 교황’으로 규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가 말하는 전통은 과거의 형태를 박제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가 오랜 시간 보존해 온 영적 지혜, 전례의 아름다움, 공동체적 기억, 인간 존엄에 대한 깊은 감각을 오늘의 세계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그는 동방교회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들이 간직한 전례와 영성의 전통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그에게 전통은 단순한 장식이나 취향이 아니라, 파편화된 시대를 견디게 하는 신앙의 기억임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어지면서도 구별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대를 관통한 핵심 언어가 ‘인간성의 회복’이었다면, 레오 14세의 초기 메시지에서는 ‘전통의 회복’이라는 강조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쓰고 버리는 문화”를 비판하며, 인간마저 효율과 이윤의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세계를 질책했다. 레오 14세 역시 인간 존엄과 공동선의 문제를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 인간 존엄을 지켜 내기 위해 교회가 간직해 온 영적·전례적·공동체적 자산을 더 적극적으로 소환하는 듯하다.
최근 공식 발표된 레오 14세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도 이러한 방향을 잘 보여준다. 이 회칙은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엄을 중심 주제로 삼으며,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관, 권력관계, 사회적 상상력을 재구성하는 힘으로 바라본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가능성을 지니지만, 동시에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 노동의 존엄, 공동선, 평화의 문제를 새롭게 위협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술은 언제나 윤리적 식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레오 13세가 산업혁명의 격변 속에서 「새로운 사태」를 통해 노동과 자본의 문제에 응답했던 것처럼, 레오 14세가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새롭게 적용하려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고귀한 인류」는 기술 발전을 거부하자는 문헌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의 방향을 인간 존엄과 공동선에 비추어 묻고, 인간이 스스로 만든 체계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공동의 책임을 요청하는 문헌에 가깝다.
결국 레오 14세를 둘러싼 핵심 질문은 “그가 보수적인가, 진보적인가”가 아닐지 모른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가 변화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사이의 경계선을 어디에 긋고 있는가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복음의 핵심 가치, 곧 자비와 인간 존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었다. 레오 14세에게 그 영역은 조금 더 넓어 보인다. 그에게는 복음의 메시지뿐 아니라, 그 메시지를 담아 온 교회의 영성 전통과 전례, 신심, 공동체적 기억 역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보인다.
물론 이 전통의 언어가 언제나 해방적인 것은 아니다. 전통은 때로 권위주의와 배제의 이름으로 오용될 수 있다. 그러나 전통 없는 변화 역시 쉽게 공허해진다. 오늘의 교회가 직면한 과제는 전통을 무기로 삼아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샘물처럼 길어 올려 상처 입은 세계를 섬기는 일이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교회가 끝내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과거의 형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을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인간답게 살게 하는 복음의 깊이다.
레오 14세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는 프란치스코의 유산을 단순히 반복하지도, 그것과 단절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새로운 질문 앞에서 오래된 교회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려 한다. 그 시도가 두려움의 정치로 흐를지, 아니면 인간 존엄과 공동선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으로 열릴지는 앞으로의 사목과 가르침 속에서 드러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교회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가.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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