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레바논에서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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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의 성요셉 성당 ⓒ조창모SJ
저는 2025년 9월, 제삼수련(Tertianship)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레바논에 입국했습니다. 제삼수련은 최종서원을 앞둔 예수회원이 지금까지 살아온 수도생활을 성찰하고, 앞으로의 여정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더 깊은 사랑과 열정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제삼수련이 진행되는데,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는 레바논에서 영어로 프로그램이 이루어집니다.
저는 현재 튀르키예에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기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레바논에서 제삼수련에 참여하는 것이 중동 정세를 더 깊이 이해하고 앞으로의 사도직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작년까지만 해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었음에도, 이 지역의 상황이 이처럼 급격히 악화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레바논은 중동 국가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과거에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리스도인이었으나, 현재는 약 35%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마론파 가톨릭이 가장 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레바논의 그리스도인들은 수니파, 시아파 무슬림들과 함께 살아가며, 대통령은 마론파,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에서 선출되는 독특한 정치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때 레바논은 금융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중동의 파리’라 불릴 만큼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내전으로 국가 기반이 붕괴되고 10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내전 이후에도 시리아의 개입과 헤즈볼라의 영향력 확대, 그리고 친서방·친시리아·친이란 세력 간의 갈등으로 정치적 불안정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반복되는 군사적 충돌은 이 나라에 오랜 긴장과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잠시 소강 상태였던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충돌이 다시 격화되었습니다. 이미 레바논에서만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그 대부분이 주거지역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입니다. 대피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고향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9일에는 남부 국경 지역의 한 그리스도인 마을에서 마론파 사제 피에르 알라이(Pierre el-Rai) 신부님이 이스라엘군의 탱크 포격으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포격으로 무너진 민가에서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달려갔다가 이어진 공격으로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현재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베이루트와 북부 지역으로 이동했으며,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 활동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많은 성당과 수도원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음에도, 여전히 수많은 교회가 피난민들을 받아들이고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활동을 지속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회가 사목하는 베이루트의 성요셉 성당 역시 전쟁 직후부터 피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회 난민봉사기구(JRS) 소속 사제와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 신자들이 함께 피난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방문했을 때 약 200명의 피난민이 머물고 있었고, 성당 강당과 교실에는 비좁게 놓인 매트리스들이 가득했습니다.
성당 밖에는 급히 마련된 이동식 샤워실과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고, 이곳에는 에티오피아나 스리랑카 출신의 이주민들도 많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공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성당의 공간이 피난민들의 숙소로 바뀌면서 기존의 교육과 공동체 활동은 중단되었지만, 신자들은 불평 없이 식사 준비와 구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이웃을 향한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3월 23일은 레바논에서 깊이 공경받는 라프카 성녀의 축일이었습니다. 2001년에 시성된 이 성녀는 삶 속에서 보여준 희생과 사랑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1860년, 부족 간의 폭력 속에서 한 아이가 민병대를 피해 성녀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성녀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그 아이를 치마 밑에 숨겨 보호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에도 이처럼 고통받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주저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사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며칠 전, 라프카 성녀 축일 미사가 끝난 뒤 한 교우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두렵지 않으신가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레바논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감사 인사를 전하며 계속 기도를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저는 예정대로라면 5월 중순 레바논을 떠나겠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분들은 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 어떤 희망과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깊이 궁금해졌습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소돔의 멸망을 막기 위해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하느님은 열 명의 의인이 있다면 도시를 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지만, 결국 소돔은 멸망하고 맙니다. 오늘날 중동과 세계 곳곳에서 번지는 폭력과 전쟁을 바라보며, 우리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죽음과 파괴로 이끄는 힘에 우리가 굴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순 시기 동안 우리의 기도와 나눔을 통해, 우리 마음과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가 더욱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
조창모 신부 (예수회)
한국 출신 예수회원으로, 기쁨나눔재단 등에서 사도직을 수행했으며 이후 튀르키예로 파견되어 활동해 왔다. 현재는 레바논에서 제삼수련 중이다.
레바논의 난민들과 이주민들을 위한 예수회 난민기구(JRS)의 활동에 함께하고자 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기쁨나눔재단 레바논긴급구호 캠페인: https://www.gpnanum.or.kr/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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