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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그칠 수 없는 청춘의 투쟁들

김정대SJ 121.♡.226.2
2025.08.05 13:48 1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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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성동훈 기자

 

과거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 또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과거의 삶의 궤적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모습에 실망한다. 그러나 청춘의 투쟁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지난 74일 저녁 시간에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북콘서트(‘고등학생운동사’)가 있었다. 무대 위에는 고등학생 운동사의 기획자이자 필자인 조한진희, 그리고 공동 필자인 김소연, 황철우, 그리고 고운출신 유흥희도 함께 앉아 있었다. 김소연, 유흥희, 황철우,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단지 고운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기륭 싸움을 함께 했고, 희망버스를 운행했으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비정규직 이제 그만’, ‘꿀잠으로 이어지는 활동을 이끈 주역들이다. 북콘서트의 부제인 고운으로 시작된 나의 투쟁은 나의 삶이 되었다는 과거에 고운을 경험한 이들이 말하는 오늘날까지 계속된 삶의 궤적에 관한 자기 고백이다.

 

고운출신 김소연은 2000년대 초반부터 기륭전자에서 비정규직으로 노동했다. 그 당시 그들은 파견 노동자들이 길게는 9개월, 짧게는 3개월의 초단기 계약으로 인하여 극심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이런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리고 기륭 노동조합은 나중에 합류한 유흥희와 함께 회사에 외주용역으로 파견된 노동이 불법이므로 불법을 시정하고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 주길 요구했으나 회사로부터 이동전화 문자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20057월부터 회사를 상대로 노숙과 천막 농성, 몇 차례에 걸친 단식, 31, 삭발, 고공농성, 100일에 가까운 단식 등 죽는 것을 제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긴 파업 투쟁을 이어갔다.

 

파업 투쟁을 시작하고 1,865일 만인 2010111일에 회사와 기륭 노동조합은 남은 조합원 10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국회에서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이루어졌기에 사회적 합의이다. 이 승리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2년 미만의 불법파견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직접 고용을 요구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싸움은 단지 기륭 조합원들의 권익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을 위한 싸움이기도 했다. 다만 합의서에 회사는 정규직 고용을 위해 생산라인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유로 고용을 16개월 유예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기륭 투쟁을 지원했던 기륭공대위의 집행위원장 황철우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비없세’)’에서 활동했다. 기륭 조합원들이 복직을 기다리는 동안, ‘비없세2011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35미터 크레인에 홀로 올라 싸우고 있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절규가 사회적 메아리가 되도록 희망버스를 제안했고, 20116111차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향했다. 희망버스는 이렇게 사회적 연대를 보여주었는데, 이 상상과 활동은 우리 사회의 노동운동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목표로 활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례이다.

 

기륭 사측의 실망스러운 행보는 약속된 유예 기간 16개월이 지나서 드러났다. 사측은 노동자들을 복직시킬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고 다시 16개월을 요청했다. 사실 회사는 사회적 합의에 서명할 때부터 기륭 조합원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회사는 유예 기간 동안 중요한 고정자산을 매각해 이름만 남은 회사로 만들었다.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긴 싸움 끝에 쟁취한 사회적 합의는 이렇게 휴지 조각이 되었다. 그렇다고 기륭 조합원들의 삶은 망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단단해져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투쟁으로 확장됐다.

 

기륭 싸움의 사회적 투쟁으로 확장하는 그 첫 번째로, 기륭전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20141222일 추위를 뚫고 비정규직 법안 철폐와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옛 기륭전자 본사 앞에서 청와대를 향해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했다두 번째 계획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안정적인 쉼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쉼터는 숙식 공간, 공동식당 겸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문화, 연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쉼터는 처음에는 집을 임대해서 운영할 계획이었는데, 나중에 공간을 소유하여 운영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래서 계획보다 좀 늦은 20178월에 지금의 영등포 신길동에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이라는 이름으로 개소했다. 쉼터를 운영할 계획을 한 이유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숙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여성 노동자들로서 긴 파업 투쟁을 하면서 생리적인 문제 해결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도 있다.

 

황철우, 유흥희, 김소연은 지금도 비정규직 없는 세상’, ‘비정규직 이제 그만’, ‘꿀잠이라는 다른 조직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사회구조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고운의 역사가 현재에 어떻게 능동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증인들이다. 지금 그들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접어들었고, 그 정신과 마음에는 신선함과 함께 지혜로운 성숙함도 있다. 그들의 유쾌한 상상은 여전히 신선하고, 끈기 있는 지속적인 활동은 성숙함이 주는 지혜로 가능하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자로서, 그리고 사제로서 내가 이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나는 이들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건강한 시각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항상 고맙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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