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재생에너지에 ‘공공’을 입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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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폭염이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더 힘들다. 올여름은 아예 밖에 나가기가 겁날 정도다. 갈수록 달구어지는 세상을 생각하면 한시바삐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하지만, 우리는 전환 속도가 너무 느리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지난해 처음으로 두 자릿수(10.5%)를 기록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비중은 35.84%로 우리가 2038년 목표로 잡은 29.2%보다 높다. 정부는 2036년까지 석탄발전소 28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그 공백은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으로 메운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LNG는 석탄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을뿐 석탄처럼 화석연료다.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원’의 전환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LNG 발전에 필요한 인력은 석탄발전의 절반가량이라고 하니 LNG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가 없어지고, 그 충격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으로 쏠릴 것이다. 에너지 전환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무릇 정의로워야 한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기존 고용이 보장될 때 최소한의 정의가 실현된다. 한편, 정의로운 전환은 일자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에너지 없이는 누구도 살 수 없기에 에너지는 누구나 누려야 하는 공공재이자 기본권이다. 에너지 전환의 과정과 결과에서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총 고용을 보장하고 에너지 공공성과 기본권을 존중하는 전환을 하려면 전환의 주체가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90% 이상 민영이다. 올해 3월까지 허가받은 해상풍력발전사업도 발전용량 기준으로 94%가 초국적 금융자본과 국내외 대기업이 차지했다. 보조금 지급 등 정부의 각종 지원 덕에 재생에너지 발전산업의 민간 주도가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이윤의 최대화가 목표인 사적 자본에 정의로운 전환을 기대할 순 없다. 더 많은 이윤이 보장된다면 민간 자본도 정의를 지향할지 몰라도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석탄발전소 폐쇄가 세계적 추세인데도 지난해와 올해 삼척에서는 30년 수명의 신규 석탄발전소 2기가 상업 발전을 개시했다. ‘삼척블루파워’는 탄소중립을 약속한 2050년이 되어도 3년이나 더 온실가스를 뿜어낼 것이다. 이런 까닭에 건설 과정에서 비판과 반대가 숱하게 쏟아졌지만, 포스코는 합법이라며 자본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민간 자본이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공익을 고려해서 수익이 나는 합법적 사업을 포기할 리 없다. 마찬가지로 LNG든 재생에너지든 에너지 전환에서 노동자 고용 보장은 민간 자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에너지 공공성은 더더욱 그렇다.
공공은 ‘사회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것’이란 뜻이다. 식량과 물처럼 에너지도 공공에 속한다. 정부가 농업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수자원공사가 물을 관리하듯이 전력을 발전공기업이 주도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LNG와 재생에너지 부문에서 민간 발전이 늘면서 공공재인 전력이 사유재, 곧 상품으로 변하고 있다. 전력이 시장의 상품이 되면, 가난한 사람의 전력 이용은 어려워진다. 여름이면 갈수록 심해지는 폭염에 대책 없이 노출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1999년 볼리비아는 세계은행의 압력으로 대도시 코차밤바에서 수돗물을 벡텔을 비롯한 민간 자본에 넘겼다. 이후 물값이 300%나 뛰었고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코차밤바 물 전쟁’은 공공재 사유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우리나라 제헌헌법은 제85조에서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그 개발 또는 이용을 특허하거나 또는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고 규정했다. 1954년 개정 헌법은 이 조문에서 ‘국유로 한다’와 ‘공공필요’ 부분을 삭제했고 1987년 헌법은 문구는 그대로 두고 조문 위치만 제120조 제1항으로 변경했다. 현재 문구는 다음과 같다.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수산자원·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그 채취·개발 또는 이용을 특허할 수 있다.” 1954년 헌법에서 수정된 부분만 보면 “광물 기타 ...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가 아닌 듯하다. 하지만 당시 이 규정을 포함한 다른 경제 규정을 개정한 것은 외국 민간 자본 투자를 촉진하려는 의도였으며, 당시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는 개정 의도가 국유 원칙의 포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제120조 제2항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는 문구도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우리 헌법 정신에 따르면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인 햇빛과 바람은 사적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속하며 국가는 햇빛과 바람이 균형 있게 이용되도록, 곧 모든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리도록 필요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민간 자본이 주도해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헌법을 떠나 직관적으로도 우리 모두 일상에서 자유롭게 누리는 햇빛과 바람에서 만드는 에너지는 함께 누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은 고용 잠재력이 풍부하지만, 사적 자본은 저렴한 노동력에 관심이 있을 뿐 폐쇄될 석탄발전소 노동자의 고용 보장에는 관심이 없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설비 건설 중에 생기는 지역주민의 피해나 자연생태계 훼손에도 그리 관심이 없다. 재생에너지를 청정에너지라고 하는데 노동자와 지역주민과 빈민의 삶,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며 생산한 재생에너지는 ‘피 묻은’ 에너지다. 깨끗하지 않다. 진짜 ‘재생’에너지는 에너지원뿐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삶도 ‘재생산’한다. 생명은 제쳐두고 수익만 찾는 재생에너지는 가짜다.
모두의 삶을 ‘다시 살리는’ 재생에너지는 ‘공공’을 입을 때만 가능하다. 물론 사적 자본인 양 이윤과 효율만 좇아 하청에 하청을 방치하는 지금 같은 발전공기업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고용 보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에너지 공공성, 자연생태계 보전을 중시하는 공적 기업이 맡아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의 발전공기업은 수익성보다 고용, 인권, 기후 등 공공성을 우선하도록 민주적으로 개혁되고 통제되어 사회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사업을 공기업이 아니라 민간사업자에게 내주는 근거로 공공 부문의 재정 부족을 든다. 하지만 재정이 부족하기는 민간사업자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은행에서 막대한 자금을 빌려 사업에 투입한다. 게다가 지금처럼 정부가 감세 정책을 유지하면서 재정 부족을 내세우는 것은 궁색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기후위기의 책임을 차등 분담하는 이른바 ‘기후정의세’를 도입하면 재생에너지 발전에 필요한 공적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공기업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 심지어 훨씬 저렴하게. 결국, 의지의 문제다.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기본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7월 27일까지 진행된다. ‘우리 모두가 누리는 재생에너지’를 현실로 만들 기회를 놓치지 말자.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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