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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고리 1호기 해체, 사회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조현철SJ 121.♡.226.2
2025.07.08 12:52 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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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핵발전소 고리 1호기 해체가 결정됐다. 고리 1호기는 19784월 상업운전을 시작했고 30년 설계수명을 10년 연장하여 2017618일까지 총 40년을 가동하고 영구 정지에 들어갔다. 그 후 8년이 흐른 지난달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고리 1호기 해체 안건을 승인했다. 이번 해체 결정을 두고 핵산업계에서는 500조 원 이상으로 예상하는 전 세계 핵발전소 해체 시장을 선점할 기회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번 해체 사업이 앞으로 세계 해체 시장 진출의 시험 무대라고 각오를 다지며 우리나라 기술 수준이 해체 경험을 유일하게 보유한 미국의 70% 이상이라며 경쟁력을 자부한다.

 

국내 최초의 핵발전소 해체를 앞두고 해체 시장이 가져올 경제 효과에 관한 얘기가 무성하다. 하지만 해체의 경제성보다 중요한 것은 해체의 안전성이다. 고리 1호기는 폐쇄 8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고··저준위 핵폐기물 복합체, 거대한 위험물 덩어리다. 안전을 우선하면 고리 1호기 해체는 지금 얘기하는 즉시 해체가 아니라 지연 해체를 고려해야 한다. 지연 해체는 핵발전소 가동을 중지하고 20년 이상 지난 후 해체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핵발전소 보유국은 대체로 이 방식을 택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반감기가 있는 방사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이 줄고 그만큼 필요한 기술력도 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리 1호기 해체는 다시 한번 핵발전의 본질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첫째, 핵발전은 안전하지 않다. 가동할 때뿐 아니라 폐쇄해도 안전하지 않다. 해체 승인이 영구 정지 8년 만에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웅변한다. 아무리 거대한 시설도 이미 철거하고도 남았을 8년 동안 고리 1호기는 기껏 해체 결정을 한 게 거의 전부다. 해체계획서는 한수원이 5년 안에 원안위에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3년이나 지연됐다. 핵발전소 해체는 계획서 작성도 어려울 만큼 위험하다.

 

둘째, 핵발전은 깨끗하지 않다. 고리 1호기 해체로 방사성폐기물 17만 1708t 발생이 예상되고 여기에 사용후 핵연료 167t(485다발)이 추가된다. 이 폐기물 처리에 200드럼통 8만 개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핵발전소를 해체하면 중저준위 폐기물이 많이 나오는데, 경주 중저준위 폐기물처리장은 점점 포화상태가 되어간다.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은 아예 없다. 지난 3월 제정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특별법은 2050년까지 중간저장시설, 2060년까지 영구 처분장을 마련한다고 정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기준도 없다. 안면도, 굴업도, 위도로 이어진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에 비추어보면 특별법을 제정했다고 그냥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해체 과정에서 나올 핵폐기물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셋째, 핵발전은 경제적이지 않다. 고리 1호기 해체는 12년 이상의 기간과 총 1조 713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사용후 핵연료 처리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걸 두고 핵발전소는 해체할 때도 경기 부양을 한다며 경제 효과운운하는 건 돈만 되면 뭐든 괜찮다는 자본의 논리, 괴물의 논리다.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핵발전소 해체는 결국 방사성 오염을 제거하고 환경을 복원하는 과정인데,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하는 거라고는 고작 핵발전소를 가동하기 전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지역을 복구하는 것과 비슷한데, 전쟁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 훨씬 낫다. 핵발전은 애초에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파괴적 창조에 불과하다. 해체 작업을 완료한들 방사성 오염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까? 해체가 완료된 핵발전소 터에 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을까? 짓는다고 하면 거기에 입주할 사람이 있을까? 핵발전론자들은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근대 이후 우리는 과학기술로 한계를 극복해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계의 극복을 진보로 찬양하며 적절함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충분함의 감각이 없어지면서 한없는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유한한 지구에서 살고 있고, 지구는 유한하다. 다른 존재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한계를 피할 수 없다. 이 진실을 무시하는 것이 교만이고 우리가 오늘 직면한 기후위기를 비롯한 각종 문제의 근원이다. 핵발전도 마찬가지. 아무리 기후위기라 해도, 지금 누리는 대량 생산과 소비에 기반한 삶은 포기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전력은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우리는 핵발전이 경제적이고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환상을 놓지 않으려 한다. 고리 1호기 해체는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는 경고다.

 

우리는 8년 전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로 핵발전에서 벗어났어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우유부단한 탈핵 정책과 윤석열 정권의 핵발전 부흥 정책으로 공염불이 되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고리 1호기 해체는 무엇보다 탈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탈핵과 함께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맞추려면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을 하려면 공공 부문이 재생에너지를 맡아야 한다. 유한한 지구가 부가하는 한계를 인정한다면 지금 생산과 소비양식을 전환해야 한다. 사익이 아니라 공동선을 도모하는 공화국의 정부라면, 주권자인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정부라면, 무릇 고리 1호기 해체를 글로벌 핵발전소 해체 시장의 거점이 아니라 사회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조현철 신부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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