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사회]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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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님 기도 많이 부탁드립니다.”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 자살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자세한 사연은 묻지 않고 경기도 소도시의 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최근 3년 사이에 내 주변에서만, 네 명의 자립준비 청년이 자살했다. 빈소에서 만난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세상을 떠난 청년은 우울증으로 몸무게가 30kg까지 감소했다고 한다. 병으로 직장을 관두고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렸는데, 나중에는 1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가 그마저도 거절당했다고 했다.
30kg과 1만 원이라는 숫자가 머리에 남는다.
스물네 살이 넘는 자립준비 청년을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 번째는 법적 지원이 필요하다. 스물다섯 살 이상의 자립준비 청년들에게도 사회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현행 법률에서는 아동 양육시설을 퇴소한 후 만 18세에서 24세까지 5년간 자립 수당을 50만 원씩 정부가 지급한다. 토지주택공사에서 자립준비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지원해 준다. 그리고 아동 양육시설의 자립 전담 요원 사회복지사가 퇴소 후 5년 이하의 청년들에게 전화하고 소식을 묻는 등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그런데 스물다섯 살이 되면 이 모든 지원이 끊어지거나 더 이상 의무 사항이 아니다. 물적 지원이 중단되는 것과 더불어 자립준비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인적 지원마저 더는 의무가 아니게 되어 25세 이상의 자립준비 청년들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스물네 살이 지난 자립준비 청년이라고 해서 모든 어려움을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스물네 살이 지난 청년들에게도 위기 시에는 긴급하게 물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물적 지원뿐만 아니라 자립 전담 요원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복지사 1인당 동반해야 할 청년의 숫자가 증가하여 업무가 과중하다면, 자립 전담 요원을 충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두 번째는 주위에 있는 자립준비 청년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 스물다섯 살 자립준비 청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만 물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 주위에서 자립준비 청년을 쉽게 만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지간하면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친한 학교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교우관계를 지속하려고 한다. 자신들이 정말 친하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어떤 자립준비 청년을 알게 됐다면, 여러분은 그 청년의 커다란 신뢰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니 그 신뢰를 소중하게 여기면 좋겠다.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그들의 곤란한 처지를 무심코 넘어가지 않으면 좋겠다. ‘나 아니어도 누군가 도와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도움 주기를 미룬다면, 도움이 필요한 때를 놓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립준비 청년은 주위에 자신을 도와줄 사회적 지지체계가 아주 취약하기 때문이다.
자립준비 청년의 외로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러분이 알고 있는 자립준비 청년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줄이 필요하다. 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다.
김건태 수사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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