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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난민] 왜 유럽에서 극우정당이 대중정당이 되었을까?

김민SJ 121.♡.226.2
2025.03.31 14:14 1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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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의 러시아 전문가 스테판 헤드룬드(Stefan Hedlund) 교수는 지난 202429일 유럽의 저명한 지정학 연구센터 GIS의 온라인 저널에 바닥을 바라보는 스웨덴이라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기고문을 게재하였다. 기고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때 스웨덴은 스칸디나비아 방식의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미국의 진보인사들의 칭송을 받았다.” 헤드룬드 교수의 이 말은 한국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스웨덴은 미국에 경도된 우리들에게도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빛나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헤드룬드 교수에 따르면 스웨덴은 나락에 떨어졌다. 스웨덴이 지금 어느 지경이길래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지난 20231130일 영국의 가디언에 실린 기사 조폭은 어떻게 스웨덴을 장악했는가-다섯 가지 도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은 굉장히 충격적인데, 우선 스웨덴의 총기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알바니아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다. 심지어 치안이 극도로 불안정한 발칸 반도의 나라들보다 총기로 인한 사망자 숫자가 높은 것이다. 또한 소득 양극화 뿐 아니라 교육, 의료와 같은 공공 영역에서도 빈부 차이는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다. 제일 심각한 것은 청소년 범죄의 발생 빈도와 그 심각도가 점차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총기를 사용한 살인범들 가운데 청소년에 해당하는 15-20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201223.6%였다면, 2022년에는 그 비율이 45.1%까지 치솟았다. 미성년 범죄의 성격도 조직범죄의 똘마니 수준에서 히트맨, 심지어는 유럽에서는 드문 폭탄 공격(유럽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를 제외하고는 폭탄을 사용하는 공격은 극히 드물다)에 이르기까지 심각해지고 있다. 문제는 청소년과 청년층 범죄자 대부분은 이민자의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헤드룬드 교수는 가디언의 이러한 기사에 기반하여 이렇게 말한다. “스웨덴은 영감을 주는 모델에서 경고를 발하는 실례로 전락하였다. 조폭이 지배하는 폭력이 만연하면서 덴마크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의 이웃나라들은 스웨덴 방식으로 전락할 것에 대하여 점점 두려움에 질리고 있다.” 그렇다면, 스웨덴 방식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대규모 이민이 참된 통합에 이르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사례가 스웨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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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도표를 보면 스웨덴이 2010년부터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다. 이민이 정점에 달했던 2016년에는 16만 명의 이민자가 스웨덴으로 이주하였다. 참고로 스웨덴의 총인구수는 천만 명을 약간 상회한다. 현재 스웨덴의 총인구 중에서 외국인 출신과 그 가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26%에 달한다. 상당히 높은 비율인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헤드룬드 교수는 이에 관해 답하지는 않는다.

 

스웨덴 정부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그들이 스웨덴이라는 국가 자체를 일종의 이민국가로 정의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1850년부터 지금까지 스웨덴은 스웨덴으로의 이주와 스웨덴으로부터의 이주가 인구학적 역동을 형성해 왔다는 사실이다. 1800년대의 스웨덴은 기근으로 인하여 주로 미국으로 이민을 보내는 국가였다. 이 추세는 1940년대 역전되어 오히려 스웨덴으로 이주하는 인구가 훨씬 증가하기 시작한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스웨덴은 피난민들의 안식처가 되는데, 칠레의 피노체트 군사정권 이후 스웨덴에는 아르헨티나와 미국 다음으로 거대한 칠레인 망명객 공동체가 형성되었다또한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침공 시기 수많은 이란 사람들과 이라크인들이 스웨덴으로 이주하였다. 한편 1990년대 발칸이 불바다로 변하면서 또 수십만 명의 보스니아인과 코소보인들이 스웨덴으로 이주하였다즉 애초부터 스웨덴은 이주 친화적인 국가인 셈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전기가 2001년 솅겐 협정이다. 유럽연합의 역내 이동을 자유롭게 보장하기 위해 체결된 솅겐 협정은 유럽 국가들이 명실상부한 이주 국가로 변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스웨덴 역시 이에 해당하었다. 이 경우는 일자리와 같은 경제적 이유의 이주가 주를 이룬다

 

스웨덴 정부 홈페이지에서는 2015년을 언급하며 전례 없는 숫자의 피난민들이 스웨덴으로 이주하였다고 짧게 언급한다. 하지만 그렇게 짧게 언급할 사항은 아니었다. 다시 헤드룬드 교수의 글로 돌아가 보자. 헤드룬드 교수 역시 스웨덴 정부 홈페이지에서 주장한 것처럼 스웨덴의 역사 자체가 이주의 역사였고 이 역사가 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문제는 모든 이주민이 다 같은 이주민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스웨덴 정부에서 위탁한, 이주에 따른 비용과 효과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스웨덴어의 구사 여부에 따라 통합비용이 어마 무시하게 차이 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즉 예전의 이주는 비슷한 문화권, 언어권에서의 이주였지만, 2천 년대 이후의 이주는 이슬람 난민이 주를 이루면서 사회적 비용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헤드룬드 교수는 자신은 사회민주당의 지지자라고 소개하면서도, 사회민주당이 추진했던 온건적 이주정책이 빚은 참사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쏟아져들어온 통제불능의 이주민, 게다가 문화적으로 너무나 다른 배경의 이주민의 존재, 범죄에 대한 스웨덴 특유의 온정주의적 정책, 이 모든 것이 스웨덴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 헤드룬드 교수의 비판의 요지다. 그러나 사실 헤드룬드 교수가 이 글을 쓴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이주가 단기간에 그리고 대규모로 이루어질 때, 그리고 정부가 이를 통합이든 동화이든 일관된 정책을 통해 통제하지 않을 때, 사회는 쪼개진다는 것이다.

 

2025228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는 매우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다. 독일의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223일 독일 총선에서 2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는데, 이는 나치당이 1933년 받은 지지율 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 현상이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던 헤드룬드 교수의 글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현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어떻게 강경 우파나 극우정당이 대중정당이 될 수 있는가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60년대 이후 유럽에서 극우정당은 금기시되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언론에서 흔히 방화벽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럽에 일종의 정치적 문화로 형성된 것이다. 방화벽은 극우정당이 정치적인 주도권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아무리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높아도 이들과의 연정 시도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 유럽에서 극우정당이나 강경 우파는 소수의 광인들의 미친 짓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이 방화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미 헝가리와 이탈리아에서는 아예 극우정당이 정권을 잡았고 스웨덴과 핀란드, 심지어 프랑스 역시 강경 우파 혹은 극우정당이 제2당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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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룬드 교수와 이코노미스트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영미나 유럽에서는 그냥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라고 부르는 이 경제공황이 미국과 유럽에 끼친 영향을 상상을 초월한다. 1929년 대공황이 나치즘과 파시즘을 위한 환경을 조성한 것과 마찬가지로 2008년 대침체가 강경 우파 혹은 극우정당의 약진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한 셈이다

 

두 번째가 의미심장한데, 2015년 유럽 난민 사태이다. 대침체와 유럽 내 역내 이민이 아닌, 무슬림 이민자들의 급증이 결합하면서 유럽 국가들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었다는 것을 헤드룬드 교수와 이코노미스트는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수치상으로 국가는 분명 더욱 부유해지는데, 나는 왜 더 살기가 어려운 것일까? 그리고 내 주변에 왜 이토록 많은 무슬림 이주민들과 난민들이 살고 있는 것일까? 이 나라가 나의 조국이 맞는가? 이런 물음들이 제기되면서 진보적인 정당들은 지나치게 난민 친화적이고 이주 친화적인 것으로 낙인찍히거나 정치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평을 들으며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이주에 관한 거대한 백래시인 셈이다.

 

헤드룬드 교수가 한탄하는 것은, 스웨덴의 역사에서 이주가 그토록 중요한 요인인데도 불구하고, 왜 최근의 이주정책은 새로이 이주한 이들의 사회 통합에 도움을 주지 못했는가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대로 저출산에 대한 해결책은 현실적으로 이민국가로의 전환밖에 없다는 요지의 주장이 있고,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민국가로의 전환을 위한 빌드업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필리핀 가사도우미, 실패로 끝났지만 캄보디아 마을버스 기사 도입 등의 정책들은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서비스 영역에서의 노동시장 개방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방과 이민의 문턱을 낮추는 작업은 사회의 구성을 변화시키는 작업이라는 사실이다헤드룬드 교수는,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작업이 섬세한 통합의 과정을 동반하지 않으면 국가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 나락의 끝에는 대중정당이 된 극우정당이라는 정치적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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