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람 냄새 나는 사도직 이야기 (남해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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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날 무학동 ‘한몸 공동체’에서 남해윤 신부를 만났다. 남 신부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한누리 공부방, 무악동 선교 본당, 독립문 평화의 집 등에서 활동하며 무악동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살아왔다. 도시 재개발과 사회 정책의 변화 속에서도 가난한 이웃들과 꾸준히 연대해온 그의 이야기 속에서, 예수회 사회사도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성소, 봉사에서 피어나다
젊은 시절, 성당에서의 봉사 경험이 남 신부에게 사제 성소의 길을 열어주었다. “대학 4년 내내 본당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각종 활동에 참여했는데, 보수가 없어도 봉사 자체가 큰 기쁨이었어요.” 사람들과 함께하고 돕는 삶이 좋았던 그는, 예수회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초기 3년은 부수련장으로 일했지만, 이후로는 줄곧 사회사목에 힘써왔다. 공부방 교사, 선교 본당 주임신부 등 다양한 자리에서 그는 늘 가난한 이웃과 함께 있었다.
무악동에서 함께한 20년
2005년부터 시작한 한누리 공부방은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학습 지도뿐 아니라 정서적·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도벽이 있는 아이,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어요. 그래도 미술치료, 심리상담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해 아이들이 채워지지 못한 부분을 보듬고자 했죠.” 2009년부터는 무악동 선교 본당 주임 신부로서 지역 주민들과 더 밀접하게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당시 무악동은 재개발이 한창이었고, 공동체 주변은 빠르게 아파트촌으로 변해갔다. “예전엔 느티나무 아래서 주민들과 부침개를 나눠 먹고, 막걸리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어울렸어요. 지금은 그런 풍경을 보기 어려워졌죠.”
폐지를 통해 공동체를 잇다
재개발이 진행되며, 공동체의 관심도 주택 문제에서 노인 복지로 옮겨갔다. 특히 폐자원을 수집하는 어르신들의 안전과 자립을 돕기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을 만든 것은 큰 전환점이었다. 가파른 경사로가 많은 무악동에서 어르신들이 무거운 폐지를 끌고 다니다 사고를 당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남 신부와 활동가들은 수거 차량을 지원하고, 폐지를 시장가보다 20~30% 높은 가격에 매입해 수익 전액을 조합원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이 활동은 단순히 어르신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아니라, ‘고독감’으로 고통받는 어르신들에게 공동체의 온기를 느끼게 해드리는 것이기도 해요. 폐지를 줍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 질서를 보전하는 활동가’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변화하는 사회사도직의 길
예수회 사회사도직의 방향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제가 입회했을 때는 도시 재개발로 밀려나는 세입자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핵심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개발 대상지는 대부분 정비됐고, 활동의 초점도 달라졌습니다.” 사회사도직은 지자체의 정책 변화에 따라 영향을 크게 받는다. 서울시의 지원이 활발하던 시절에는 소규모 공동체와 자활센터들이 활발히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관련 사업이 대폭 축소되어 협동조합 운영에도 어려움이 많아졌다. 또한 조합의 자립을 위해 지역 주민, 특히 어르신들의 리더십을 키우는 일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앞으로의 사회사도직
남 신부는 향후 사회사도직이 노인 문제에 더욱 깊이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령화 속도가 워낙 빨라요. 사회 중심에서 밀려난 어르신들이 점점 늘어나고, 우리나라의 노년 복지는 여전히 미흡하죠.” 한편 그는 예수회 사회사도직의 핵심 키워드가 여전히 ‘정의’임을 강조한다. “정의가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 정의롭지 못한 구조에 맞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야 해요.”
다시 사람들과 함께
인터뷰를 마치며, 남 신부는 앞으로의 꿈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무악동에서의 활동이 마무리되면, 더 외지고 가난한 마을로 가고 싶어요. 사랑방처럼 작은 공간 하나 열어두고, 주민들과 라면 끓여 먹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어울리는 그런 삶이요. 마음 같아선 작은 어촌 공소에 가고 싶기도 해요. (웃음)”
그는 사회사도직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 자체로 인간미 넘치는 사도직이에요. 사람들과 만나고 부대끼며, 함께 기쁨을 살아가는 길이죠.” 요즘도 매일 새벽, 한옥 성당에서 주민들과 미사를 드리고, 주중에는 폐지를 모으며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사회사도직의 진정한 뿌리를 되새길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회사도직은 시작된다.
인터뷰 및 정리: 정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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