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존엄, 가난, 그리고 청빈: 여로의 마을에서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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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예수회 한일사회사도직회의 모임 첫날 이번 회의의 거점이 된 ‘여로의 마을(旅路의里, Tabijino sato)’ 지역 근처를 돌아본 후에 나누어 주신 한 페이지짜리 안내서에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이 문구 하나로 “여로의 마을”의 아주 중요한 근본적인 정신을 알 수 있었고 특히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내용이어서 참으로 반가운 내용이었다: “가마가사키(Kamagasaki釜ヶ崎), 기독교 협우회(基督敎 協友會)”에 대한 간단한 설명인데, 일부를 짧게 인용하면: “~기독교의 정신에 근거해, ‘포교가 아니라’ 아이린 지역, 가마가사키에 사는 사람들의 존엄을 지키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의 네트워크.”
이 중에 첫째, “포교가 아니라”와 둘째, “함께 살아가기”라는 두 문구에 내 시선이 머물렀다. 한국의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는 포교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이 강하다. 예수가 초대 교종인 베드로에게 주신 임무(mission)에는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의 멤버십(membership)을 늘리라는 것은 없는데 굳이 임무(mission)를 포교, 선교, 전교, 전도로 번역하여 교회를 알리고 신자들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심지어 교회의 신자 수를 늘리는 것을 ‘의무’라고 가르친다. 십일조 봉헌은 의무라고 가르치니 신자들이 늘어나면 당연히 교회의 수입은 많아진다. 그러나 예수가 베드로에게 준 임무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서 ‘양’은 겁이 많고 약한 사람들의 상징이다. 그러니 예수가 제자들에게 맡긴 진정한 임무는 우리 주변에 약자를 돌보는 것이다.
둘째로 “함께 살아가기”는 주일 미사 때 혼다 신부님이 보여주신 그림과 설명에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 그림은 “예수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 계시는 장면”의 그림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의 눈으로 보며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머물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우리도 가난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이는 청빈 서원 한 수도자이니 내게는 당연할 뿐만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아니 신앙인이 아니라도 자원의 한계가 있는 이 지구에서 사는 이라면 청빈하게 살 의무가 있다. “공동의 집”인 “지구”와 우리 후세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삶의 태도이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지역을 막론하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삶의 실천적 행동 양식이어야 한다.
둘째 날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시모카와 신부의 발표 중 핵심 내용으로 “가치의 서열”에 대한 것이다. 짧게 인용해 설명하자면: “가치”는 문화적 가치, 정치적 가치, 경제적 가치 세 가지가 있는데 “문화적 가치는 사회적 가치관, 분위기, 사상, 공동선, 인간 존엄성에 직결되는 가치이다. 이 문화적 가치가 최상위에 있고 이 문화적 가치가 하위에 있는 정치적 가치에 잘 반영되어야 하고 이어서 경제적 가치가 결정되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이 가치의 서열 방향이 역전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역전이 되면 사회는 매우 반복음적이 된다.”
나는 시모카와 신부의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가치의 역전 현상은 사실 현대 지구촌의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생명,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회적 결정들이 내려져야 함에도 경제적 가치, 즉 물질적 가치 중심으로 사회적 결정이 내려졌기에 이 지구촌의 환경이 파괴되었고 기후 재난으로 세계 곳곳에서 전쟁 중이다. 그리하여 기후 난민과 전쟁 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는 우리 세계가 가치 역전으로 비인간화되어 ‘비복음적’인 상태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앞으로 인류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이다.
시모카와 신부의 발표를 들으면서 젊은 시절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로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이 떠올랐다. 백범은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문화 강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대한민국이 군사적 강국, 경제적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 않고 “문화적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나는 젊었을 때 “문화적 강국”이라는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문화’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인데, 문화는 정치, 경제, 역사, 사회, 관습 등등 삶의 모든 모습을 포함하는 것인데 거기에 무슨 강하고 약한 것이 있는가? 이런 의문이 들면서 정확한 뜻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30여 년 전부터 한류가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문화 강국”이 과연 무엇인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백범 선생이 강조한 문화의 중요성은 시모카와 신부가 발표에서 지적한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3일째 혼다 신부님의 미사에 참석하며 굉장히 신선하면서 흥미롭게 느낀 것은 그분의 “미사 형식”이었다. 전통적인 가톨릭교회의 미사 형식을 뛰어넘어 파격적 자유로움을 느꼈다. 예를 들어, 주일 미사임에도 제1, 2 독서는 생략된 채 복음만 봉독 되었고 미사 중 전례문과 기도문에 신자들의 응답을 더 추가하며, 전체적으로 미사가 짧게 축약된 형식이었다. 처음에는 한글로 번역된 미사 경본 복사본을 보며 우리끼리 가톨릭교회 안의 ‘이단’인가? 라고 농담도 했지만, 가마가사키 지역의 특성상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연로하신 분들과 함께하는 미사는 형식적인 것에 얽매이기보다는 짧게 핵심만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혼다 신부님의 뜻에 공감하였다. 그리고 그 지역 주교가 혼다 신부의 미사를 허락했다고 하니 전례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3일간의 “예수회 한일사회사도직 모임” 안에서 새롭게 배우고 느낀 점에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 모임을 준비해 주시고 친절하게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내년에 한국에서 있을 모임도 큰 기대가 된다.
최영민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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