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서울과 오사카: 두 개의 도시, 두 개의 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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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교외에 있는 노동 계급의 주거지는 하나씩 중산층의 침략을 받아왔다. 위층에 방 두 개, 아래층에 방 두 개의 허름하고 좁은 집들은 계약 만기가 도래할 때면 하나씩 공략되어 우아하면서도 값비싼 주택으로 변화하였다. ... 이런 방식의 ‘젠트리피케이션’(젠트리, 즉 신사로 변화하는 과정)은 급속도로 진행되어 원주민 격인 노동 계급의 대다수가 쫓겨나서 지역의 사회적 성격이 변화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영국의 루스 글래스라는 사회학자는 1964년 중산층의 사람들이 노동 계급의 거주 지역을 어떻게 잠식해나가는가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루스 글래스(Ruth Class)가 사용한 젠트리피케이션은 세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 원래 노동 계급이 살던 지역의 임대계약이 끝나면서 좀 더 비싼 주택이 건설되기 시작한다. 즉 재개발이 시작되는 것이다. 둘째, 이렇게 되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땅값이 뛰는 것이다. 이는 곧 자산 가치의 상승을 의미한다. 셋째,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은 결국 저소득계층을 구축하게 되어 지역의 성격이 중산층의 거주 지역을 바뀌게 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땅의 가격이 변화하면서 땅의 변화된 가격을 소화할 수 있는 거주민의 사회적 계급 역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2일 일본 오사카의 가마가사키에 있는 예수회 기관에서 일본 오타니 대학의 사회학자 와타나베 타쿠야 선생이 “오사카의 도시 하층 사회와 재개발-가마가사키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나눔을 했다. 타쿠야 선생은 꽤 흥미로운 인물로, 인류학자도 아닌 사회학자 주제에 홈리스와 함께 공원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심지어 노동자들의 은밀한 사회적 공간인 ‘함바’에서 생활을 하면서까지 집요하게 오사카 가마가사키의 빈민 노동자의 삶에 천착한 연구자였다. 그리고 동시에 빈민운동에 투신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타쿠야 선생의 나눔의 흐름은 매우 묘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나눔이 움직여갔다. 나중에야 가마가사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흐름과 동시에 이들이 살고 있는 가마가사키라는 ‘지역’의 흐름을 씨줄과 날줄 삼아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좀 많이 놀라기도 했다. 즉 타쿠야 선생은 마치 인류학자처럼 땅의 기억과 사람들의 삶을 발굴하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제목에 나와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개념은 좀 사족 같은 느낌이었다.
타쿠야 선생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이렇다. 일단 가마가사키는 ‘은폐된 외부’-타쿠야 선생의 표현이다.-이다. 즉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소이다.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가마가사키 사람들 역시 은폐된 사람들이며 사회에서 ‘없는 사람’ 취급받는 이들이다. 먼저 사람들부터 이야기하면, 가마가사키의 작은 공원들에 노숙하는 이들은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의 노숙인들과는 많이 다르다. 이들은 철저하게 가마가사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가마가사키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일자리가 있으면 아주 허름한 여인숙에서 잠을 자고 일자리가 없으면 노숙하는 이들이다. 일자리의 유무가 노숙의 가능성을 판가름하는 셈이다. 이 부분은 한국의 노숙인과는 매우 다른 부분이다. 최소한 가마가사키에서 일용직 노동자와 노숙인의 경계는 매우 흐릿하다.
가마가사키는 1990년대 말, 즉 버블 붕괴 이후 노숙인들이 급증하면서 첫 번째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단다. 기초생활수급 제도가 시행되며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마가사키에도 공공주택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가마가사키의 사람들이 고령화되면서 고령화된 이들에 걸맞은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도 들어서게 된다. 예컨대 공공과 민영이 뒤섞인 요양병원 같은 것들. 이렇게 고령화 사회에 따라서 가마가사키의 풍경은 변화하게 된다.
두 번째 변곡점은 좀 치명적이었다. PFI 개념이 일본에 도입된 것이다. 타쿠야 선생이 하도 심드렁하게 PFI라는 말을 설명 없이 사용하기에 나만 빼고 모두가 아는 그런 개념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최소한 한국 측 참여자들은 모두 모르는 단어여서 무척 마음이 개운해졌다. PFI, 즉 민간자본계획(Private Finance Initiative)은 공공정책이나 부동산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1992년 영국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정책과 기간산업 국영화로 인하여 만성적인 경쟁력 저하와 적자재정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놈의 대처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영화라는 지옥문을 열어놓은 것은 유명하다. PFI는 민영화의 부작용-즉 과도한 상업화로 인한 공공성 상실-과 재정적자,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붕괴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민간과 공공의 대표자로 구성된 독립 에이전트를 통해서 공공산업을 유지하려는 시도였다. 마찬가지로 이유로, 아니 고령화로 인하여 더 큰 위협을 느꼈던 일본 정부는 영국의 실험을 예의주시하고 곧바로 PFI를 도입하였다.
그 결과는 공공지역의 상업화라는 불구덩이였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은 공간의 고급화, 그리고 땅값의 상승으로 인하여 빈곤계층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빈곤계층의 구축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마가사키라는 공간과 가마가사키 사람들은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그 유대가 파괴될 소지가 적었고, 타쿠야 선생에 따르면, 최소한 일본에서는 계발을 이유로 빈민을 쫓아내는 것이 불법이란다. 그 결과 오사카 지방정부는 가마가사키가 아닌, 공공공간을 PFI를 통해서 개발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공공공간의 상업화였다.
예컨대 PFI가 활발하게 적용된 오사카성의 경우 원래 이백 개 정도의 노숙인 텐트들이 존재하였다. 오사카성에는 크게 세 개의 지역에 텐트촌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PFI 적용에 따라 개발이 진행되며 2006년과 2009년 오사카성 지역의 두 개 텐트촌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텐트를 치기 어렵게 말뚝과 같이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야기하는 꼼수들이 동원되고 동시에 기초생활수급이라는 당근을 동원하여 노숙인들의 숫자를 끊임없이 줄여나갔다. 그리하여 2003년 25,000명에 이르던 노숙인의 숫자는 3,00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공공공간의 PFI 기반 개발의 결과이다. 노숙인들을 구축(驅逐)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땅과 그 땅에 뿌리내렸던 사람들의 관계는 파탄나고 흉측하기 짝이 없는 '쿨 재팬' 건물이나 들어서게 된 것이다. 타쿠야 선생은 돈만 따지면 성공이겠지만 소비자들만 득실거리는 지금 모습이 뭐가 성공이냐고 비아냥거렸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날 오후 오사카성을 직접 걸었을 때에도 그냥 상업화된 관광지 정도의 느낌이었으니. 땅의 기억은 사라지고 스타벅스가 눈길을 끄는 그런 관광지.
타쿠야 선생의 설명과 함께 오사카 성 일대와 '신세계'라는 무서운 이름의 다운타운을 돌아보면서 상당히 흥미로운 관찰을 할 수 있었다. 루스 글래스가 처음에 사용했던 의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각각의 맥락에서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생각. 가마가사키를 둘러보면서 한국인의 DNA가 나에게 속삭였던 것은 일본인들이 들었으면 기함들만 한 것이었다. ‘와. 여기 깨끗이 밀어버리면 아파트 단지들이 몇 개나 들어설 수 있겠다.’
최소한 나에게 집은 화폐와도 같다. 주거의 공간이 아니라 교환가치이며 계속해서 가치를 불려나가나는 투자의 대상이다. 물론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에는 가난해서, 입회한 이후에도 가난해서 그러지는 못하지만. 하지만 가마가사키 사람들에게 가마가사키는 ‘깨끗이 밀어버리는’ 땅이 아니다. 그건 가마가사키의 저열한 숙소에 살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고 맨션이라고 불리는 그 숙소의 건물주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즉 이들은 우리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깨끗이 밀어버리는’ 자본가 정신이 결여된 셈이다. 그 안타까움을 한편에 남기며 우리는 자본주의의 수도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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