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용산이 입을 열면 남한은 몸서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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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했다. 러시아 하원은 북·러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비준했다. 대북전단과 오물 풍선,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 평양 상공 무인기와 차원이 다른 국면이 전개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도 가파르게 올라간다. 군사적 완충장치를 모두 없앤 터라 전쟁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평화가 절실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하는 ‘힘에 의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지금 전쟁 중인, 주변국 군사력을 압도하는 이스라엘과 러시아를 보라. 평화로운가? 늘 경비가 삼엄한 주한미대사관을 보라. 평화로운가? 힘에 의한 평화는 불안과 파괴의 일상을 가져다줄 뿐이다. 윤 대통령은 평화는 구걸로 지킬 수 없다고 하지만, 힘으로만 지킬 수 없는 게 또한 평화다. 힘은 한쪽이 키우면 다른 쪽도 키운다. 평화가 아니라 불안이 자란다. 평화에 힘이 필요하다면 대화도 필요하다. 대화는 구걸이 아니다.
“통일, 하지 맙시다.” 최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평화적 두 국가론’을 제안했다. 이 제안에 비판적인 반응이 많은데 제안의 맥락은 공감할만하다. “남녘해방”, “무력통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두 개 국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 지난달 7일 김정은국방종합대학에서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한 말이다. “자유의 가치를 북녘으로 확장”하고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을 확대하겠다.” 지난 광복절 윤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한 말이다.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을 계속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남한에 관심도 공격 의사도 없다는 북한에 시비 거는 꼴이다.
이런 양상은 대북 전단과 오물 풍선 살포를 둘러싼 공방에서도 볼 수 있다. “북으로 날아가는 풍선은 안 보이고 남으로 날아오는 풍선만 보였을까.” 지난 5월 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오물 풍선이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맞대응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 하순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오물 풍선을 보내는 게 대북 전단 때문이라고 하지만 북한의 주장일 뿐”이고 “우리 사회를 교란하고 국민의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며, 이에 대응해 “확성기 재개 등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가 먼저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고 추후 북한의 반응을 보면 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대북전단 살포는 규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물 풍선 살포보다 대북 전단 살포가 먼저인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는 2020년 개정한 ’남북관계발전법‘ 대북전단 살포 처벌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서, 곧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지금 정부는 이 판결을 근거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방치하고 있다. 그러나 헌재는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을 해치는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하라고 판결하지 않았다. 헌재는 주민의 안전보장을 정당한 입법목적으로 인정한 후, 다만 “덜 침익적인 수단”으로, 곧 ‘경찰관 직무집행법’(5조 1항)에 의한 경찰 개입이나 사전 신고제 도입으로 전단 살포를 제지할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이를 모른 척하고 정부는 손을 놓았다. 그 결과 오물 풍선이 날아왔고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이 재개됐다. 정부는 남북한의 긴장이 높아지길 바라는 듯이 움직인다. “다 정신병원 가게 생겼다.” “제발 잠이라도 잘 수 있게 해달라.” 남북한 공방의 피해는 접경 지역 주민이 다 뒤집어썼다. 결국 정부 대신 경기도가 연천·파주·김포 지역을 위험구역으로 설정하고 대북 전단 살포 규제에 들어갔다.
임종석 전 실장의 ‘두 국가론’은 최소한 통일을 내세워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막자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최근 엠브레인퍼블릭 등의 여론조사에서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가 54%, “인정해서는 안 된다”가 37%로 나왔다. ‘두 국가’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많다. 사실 두 국가론은 새로운 게 아니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한반도에 실재하는 ‘두 국가’ 현실의 국제적 공인이었다.
북·러 동맹은 윤 대통령이 한·미·일 가치동맹을 내세우며 ‘국익’에서 ‘이념’으로, ‘균형’에서 ‘일방’으로 돌아설 때, 중국과 러시아와 각을 세울 때 예견됐던 일이다. 이번 사태는 지금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러시아도 국제 관계에서 국익을 추구한다. 북·러 조약이 우리나라에 안보 위협이라면, 한·미동맹은 북한에 무엇인가? 힘에 의한 평화의 필연적 모순이자 한계다.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계속 긴장과 갈등을 키운다. 둘째, 지금이라도 관계 개선에 나선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제공을 “유연하게 검토”하겠다고 나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매우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가혹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무기 공급은 “궁극적으로 한국의 결정에 달린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무기 지원은 환영하지만, 그 결과는 한국 혼자 떠안으라는 말이다. 우크라이나를 뺀 다른 나라는 다들 신중한데, 지금 우리 정부만 강경 일변도로 앞서 나간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우크라이나 군사적 지원에 10명 중 8명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은 국민 안위가 걸린 문제에 너무나 ‘신속, 과감’하게 반응한다. 호재를 만난 양 흥분한 느낌마저 든다. 궁지에 몰린 정치적 입지를 만회하려고 안보 위기를 조장하는 게 아닌가. 무릇 국가 지도자라면 말을 아껴야 한다. 난세에는 더 그렇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보다 윤 대통령의 입이 더 불안한 게 나만의 기우일까.
지난 6월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은 것을 높이 평가했다.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경고와 함께 양국이 “훌륭한 교류와 상호 이해와 협력의 경험이 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최근의 사태에도 러시아는 한국과 관계를 단절할 뜻이 없다는 속내가 읽힌다. 우리가 당장 할 일은 살상 무기 제공 검토가 아니라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이다. 2년 만에 지난 30년의 북방 외교 성과를 결딴낸 지금 정부에 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정부가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당장 응답이 없더라도, 북한에도 가능한 한 모든 경로로 평화의 신호를 보내야 한다. ‘방 안의 코끼리’ 미국은 균형 외교로 넘어야 한다.
힘자랑은 원하는 사람끼리 개인적으로 만나서 하길 바란다. 농담 같지만, 진담이다. 무모한 힘자랑하라고 대통령에게 권력을 쥐여준 게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 잡지 마라. 이제는 미국이 아니라 용산이 입을 열면 남한이 몸서리친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을 권력도 있고 뽑아버릴 권력도 있다.
조현철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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