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인간 전태일이 가진 하늘 같은 마음
- - 짧은주소 : https://advocacy.jesuit.kr/bbs/?t=fk
본문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전태일 일기, 1970년 8월 9일)
1960년 대 초반, 복개된 청계천을 따라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 북쪽에 평화시장 건물이 들어섰다. 평화시장에 자리를 잡은 수많은 작은 봉제업체들은 의류를 생산했다. 사업주들은 3미터 높이의 방에 재봉틀을 한 대라도 더 배치하여 더 많은 의류를 생산하기 위해 한 공간을 두 개의 층으로 나누어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사람 중심으로 생산을 위해서 더 안락한 시설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생산에 사람을 맞춘 꼴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나이 어린 여성들인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비롯한 극도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었다.
이런 고통의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에 매몰되어 그들은 주변의 타인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서 사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학구열이 높은 것을 자랑하겠지만 아마도 이런 학구열은 이런 사회구조에서 ‘나 중심적인’ 그래서 ‘이기적인’ 문화 또는 생활방식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실 잘못된 사회구조로 인하여 경쟁이 심해지면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애서 외면하고 자신의 성공을 추구한다. 심지어 종교에 의지하여 자신만의 성공을 기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을 위한 신앙에 몰두하고, 개인적인 신심 생활과 개인의 고통을 치유하고 위안을 주는 ‘치유적 영성’에 관심을 갖는다. 이는 건강한 신앙이 아닌 주술에 가까울 수 있다. 왜냐하면 건강한 신앙은 우리를 마술 세계로 데려가지 않고 현실을 올바로 대면하게 한다.
그러나 전태일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었다. 이 일기의 약속처럼 그는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쳤다. 그는 22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은 한국 현대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죽음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아 노동조합 조직 활동을 하였다. 그들에게 그의 삶과 존재는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그가 짧은 삶을 살았고, 내놓을 만한 학벌도 없었음에도 그의 사람 됨됨이는 나이와 학벌과 무관하다. 그는 삶을 깊게 대면했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는 대단히 성숙한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를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게 했을까?
전태일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공감 능력이 탁월했고, 자신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런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정체성을 상실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살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인식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올라오는 갈망을 따르지 못하고 기계적인 사람이 된다. 그래서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타인이 처해있는 상황에 공감하면 할수록 그는 우울함에 젖어있지 않고 그들을 그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려 고민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재단 보조로 일을 하며 어린 시다 여공들이 점심도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점심을 나누어주었으며 아침에 어머니로부터 받아온 차비로 풀빵을 사서 주고 자신은 걸어서 집으로 가곤 했다. 그는 부당하게 당하는 그들의 불행을 보며 가슴이 비수로 찔리듯 아팠고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연민의 감정으로 하느님 다운 영적 감정(spiritual emotion)이다. 믿음, 희망, 사랑, 기쁨, 용서, 신뢰, 감사, 연민과 같은 감정이 영적 감정으로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하는데 이 감정은 서로를 붙여주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연민의 감정은 끊임없이 그를 고통 중에 있는 어린 여공들과 동일시하게 하였다. 또 연민은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그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감정이다. 그래서 그는 행동하였다. 그가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도, 또 그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려 했던 것도 그들을 부당한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연민의 마음이었다.
이렇게 전태일이 목숨을 바친 행위는 단순히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다름 아닌 사회적인 행위이다. 그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이 그를 사회적 역할을 하게 하였다. 단적으로 그는 매우 영성적인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영성을 짧게 정의하라고 한다면 다름 아닌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성은 나에 대해서, 즉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우리에 대한 것, 공동체적이기 때문에 영성은 사회적 역할로 이어지게 한다. 그래서 그는 이타적인 삶을 살았고 마침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바쳤다.
불행하게도 전태일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은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한 예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리고 재해가 발생했음에도 사업주는 피해자들의 고통에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고, 법은 진짜 사업주에게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는다. 그래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긴 고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폭발 참사가 있었던 아리셀이 그렇고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죽어가는 쿠팡이 그렇다. 그래서 전태일이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을 했듯이, 현재 우리의 노동 관련법도 화형식에 처해야 할 상황이다.
우리는 곧 그의 죽음 54주기를 기념한다. 54년이라는 시간이 긴 시간이긴 하지만 그의 삶은 더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그들에게 삶이 무엇인지를 안내하는 빛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빛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이 많아져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게 일하며 자신의 미래를 나름 성취하며 살 수 있는 인간적인 사회를 하루빨리 앞당겨야 한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