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올바름이 현실과 만나지 못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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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3월 9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스위스 RSI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언급하며 던진 한 마디가 큰 파문을 일으켰다. "가장 강한 자는 백기를 들 용기를 가진 자"라는 표현으로 우크라이나의 항복 협상을 암시한 것이다. 이 발언 이후 유럽과 미국의 여론은 발칵 뒤집혔고, 뉴욕타임스는 시차를 감안해도 예외적으로 빠르게 "교황은 우크라이나가 '백기를 들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뉴욕타임스는 바티칸,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 당국을 당혹스럽게 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더불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과는 달리 의아할 정도로 러시아의 입장을 배려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꼬집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도 러시아와 푸틴을 전쟁의 가해자로 지목하는 데 인색했으며, 끊임없이 양측의 평화 협상을 강조해왔다.
이러한 교황의 태도에 대해 아메리카 매거진은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과의 유대관계 때문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이는 결코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었다. 지난 8월 24일 우크라이나 의회가 자국 내 러시아 정교회의 활동을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을 때, 교황은 곧바로 다음날 "교회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우크라이나를 비판했다. 이는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이 푸틴과 강하게 밀착하여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했음에도 인내심을 발휘해온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발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3월 13일 영국의 진보 언론 가디언은 이탈리아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국제관계 전문가인 나탈리 토치의 날카로운 비판을 실었다. 토치는 교황의 '백기를 들 용기' 발언이 유효하면서도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로, 이런 태도는 트럼프주의자나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 같은 서방의 친러 극우 포퓰리스트들에게 교황의 지지라는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비유럽 출신 교황의 이러한 태도는 비서구 사회에 널리 퍼진 서방에 대한 불신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특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서 보이는 서구의 친이스라엘 행보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상반된 태도는 서구의 이중잣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에게 항복을 권고하는 행위 자체가 냉엄한 현실 정치에 굴복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토치의 이러한 날카로운 비판은 1938년의 역사적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 이어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 지역 할양을 요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부 유럽은 민족자결주의라는 다소 인위적인 국제적 압력으로 사분오열된 상태였다. 승전국들은 독일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독일계가 살고 있는 지역을 인위적으로 신생 독립국이나 승전국에 넘겼고, 이들 약소국을 군사동맹으로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히틀러의 계속된 공갈 속에서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도미노처럼 독일 영토로 편입되었다. 1938년 뮌헨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권을 보장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와 협정을 맺어 주데텐 지역을 독일에 넘기기로 했고, 히틀러는 협정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을 점령해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사례를 분석한 군사와 외교 전문가들은 중요한 교훈을 도출했다. 지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강국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분명한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을 때 강력히 대응하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외교적 제스처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자신의 유약함을 드러내 보일 뿐이라는 것이 이른바 도미노 이론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러시아와 제3제국 사이에 존재하는 기이한 유사성이다. 푸틴의 러시아와 히틀러의 제3제국은 모두 지정학적 고려에 기반한 외교정책을 펼쳤다. 제3제국이 프리드리히 라첼과 카를 하우스포퍼가 주창한 '레벤스라움' 이론에 따라 동방 확장을 추구했다면, 푸틴은 알렉산드르 두긴의 '루스키 미르' 개념에 영향을 받아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고유 문화권이자 영토로 간주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공통점은 두 지도자의 팽창 욕구가 모두 서방의 유화정책으로 인해 증폭되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현대사학자들은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라인란트에 진군했을 때 서방이 개입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푸틴이 체첸과 조지아를 침공하고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때 서방이 개입했다면, 현재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토치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에 분개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교황의 러시아에 대한 유화적 제스처는 푸틴에게 제동이 아닌 승인의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러시아의 승리가 예상되었을 때 다음 목표는 몰도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했다. 친러 성향의 헝가리를 고려하면, 푸틴의 지정학적 지도에서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연결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은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현실 정치의 영역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딜레마를 제시한다. 만약 우리가 클라우제비츠의 정의처럼 전쟁을 국익 실현을 위한 외교정치의 하위 범주로 본다면, 우리는 현실 정치의 논리에 압살당할 것이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미얀마, 시리아처럼 말이다. 반면 현실 외교와 정치를 무시한 채 이상적인 담론만을 펼친다면,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종교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간극은 더욱 벌어질 것이며, 우리의 신앙과 종교적 가치는 하나의 관용적 표현에 그치고 말 것이다.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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