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제22대 국회,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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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국회는 시작부터 파행이다. ‘헌정 사상 첫 야당 단독 국회 개원’이란 기록도 세웠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당분간 ‘반쪽 국회’가 불가피할 것 같다. 그런데 이렇듯 첨예하게 대립하는 여야가 ‘민심’에서는 완전히 일치한다. 민심을 받들겠다는 건 한결같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민심은 무엇일까? 이들은 민심이 무엇일까 생각은 해봤을까? 민심은 ‘윤심’도 ‘명심’도 아니다. ‘단일대오’는 더더욱 아니다. 민심은 다양해서 서로 경합하고 충돌한다. 이걸 모른 척하고 되뇌는 ‘민심’은 추상명사가 되어 허공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이게 정치인들이 뜻하는 민심인지도 모르겠다.
상충하는 민심이 정치권력에 제대로 반영돼야 민주주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민주주의의 기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은 48.56%의 득표율로 이재명을 0.73% 차이로 이겼다. 기록적인 신승에 절반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대선 투표율이 77.1%이니 전체 유권자로 치면 37.44%, 1/3을 조금 넘는 지지다. 민심은 대통령의 권력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 총선에서 전국의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50.56%, 국민의힘 45.08%로 5.48% 차이인데 의석은 71석 차이다. 양당이 독주하는 호남과 대구·경북을 빼면, 국민의힘은 부산은 득표율 53.86%로 18석에서 17석, 강원은 53.08%로 8석에서 6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서울은 득표율 52.23%로 48석에서 37석, 경기는 54.66%로 60석에서 53석, 인천은 53.53%로 14석에서 12석, 충남은 51.55%로 11석에서 8석, 대전은 54.21%로 7석을 다 가져갔다. 큰 차이도 없는 득표율로 의석을 쓸어 담은 쪽은 짜릿하고 통쾌하지만, 진 쪽은 분하고 억울하다. 절반에 가까운 ‘다른 민심’은 어디로 갔나. 이건 선거라기보다 ‘승자독식’의 도박판에 가깝다. 비례성 훼손은 현행 ‘소선구제 다수대표제’의 고질적인 병폐다. 민심은 의회 권력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국민의 ‘대표’를 뽑는다는 총선인데 대표성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나라 남녀 비율은 대략 반반이지만, 여성 의원은 지역구는 14%, 비례대표를 포함해도 20%로 총 60명이다. 우리나라 농민은 216만 6천 명, 전체 인구의 4.22% 정도다. 비율로 치면 농민 출신 의원이 12명은 되어야 하는데 1명뿐이다. 농정 관료 출신까지 다 합해도 3명이다.
정당 민주주의도 위태롭다. 양대 정당 모두 ‘일극 체제’로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나오기 힘들다. 대통령은 헌법과 선거법상 당무 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윤석열은 지난해 당 대표 선거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주저앉히고 특정인을 자리에 앉혔다. 그 사이 대통령실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날 선 말이 나왔다. 윤심이 당심이자 민심인가. 오만방자하다. 이재명은 지난 총선에서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으로 민주당을 장악했다. 요즘 민주당이 정당 민주화를 한다면 내놓은 당헌·당규 개정 시안에는 ‘당론 위반 시 공천 부적격 심사 반영’이 있다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이건 정당 민주화를 가로막는 민주당판 ‘입틀막’이다. 명심이 당심이요 민심이라 생각하나. 기고만장하다.
국회에 특검법을 필두로 문제는 쌓였고 긴급한 현안은 수시로 터진다. 그래도 새 국회는 선거제도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보장하는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빠를수록 좋다. 한번 미루면 다음 선거철에 잠시 호들갑을 떨다 흐지부지되는 일이 또 반복된다.
지금부터 37년 전 6월, 6·10 민주항쟁이 일어났다. 항쟁 30돌이었던 2017년, 당시 항쟁의 숨은 주역 이부영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말했다. “6월 항쟁 뒤에 정치권에만 맡겨놓은 결과 5년 대통령 단임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라는 이상한 조합이 만들어졌잖아요. 이번엔 그러면 안 됩니다. (중략) 헌법 개정과 선거구제 개편 등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집에 돌아간 ‘광장의 시민’도 책임이 있지만, 당시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이 빚을 많이 졌다. 이제라도 함께 해내야 한다.
인도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위기의 시대일수록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기근을 사례로 든다. “세계적으로 비참한 기근의 역사 가운데, 비교적 자유로운 언론이 존재한 민주 독립국가에서는 본격적인 기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센코노믹스>)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나라일수록 기근의 피해와 고통은 분담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근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퇴보하면 약자는 목소리가 배제되고 결국 희생된다. 기후도 위기, 평화도 위기, 식량도 위기, 불평등도 위기, 삶(출생)과 죽음(자살)도 위기인 시대다. 위기의 대비는 민주주의에서 시작한다. 새 국회가 짊어져야 할 과업이다.
조현철 신부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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