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내일을 위해 투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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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지낸다. 지난 10년 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세 차례 ‘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세월호 침몰 원인을 밝히려고 했으나 아직도 명확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현재, 침몰 원인은 ‘좌초설’(암초 등에 부딪혀 침몰), ‘외력설’(잠수함 충돌 등 외력으로 침몰), ‘내인설’(복원력 부족과 기관 고장으로 침몰)이라는 세 가지 가설로 남았다. 하지만 배가 왜 그리 빠르게 기울어져 침몰했는지는 분명해졌다.
첫째, 증·개축. 전시실을 짓고 선실을 늘리느라 세월호의 무게는 원래보다 239t 늘었고 선박 복원력은 줄었다. 이윤 때문이다. 둘째, 화물 과적과 ‘고박’ 불량. 세월호의 화물 적재량은 987t인데 당시 2214t의 화물을 실었고 상당수의 화물은 제대로 묶지 않았다. 선원들의 부주의 탓도 게으름 탓도 아니다. 고박장치를 하면 갑판 바닥을 많이 차지해 화물 적재량이 줄기 때문이다. 배가 기울자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며 침몰을 재촉했다. 수사 과정에서 관행이라는 진술이 나왔는데, 결국 이윤 때문이다. 이윤에 눈먼 운항으로 304명이 한순간에 깊은 바닷속으로 쓸려 들어갔다.
세월호는 안전과 생명은 뒷전이고 효율과 이윤만 앞세우는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통렬하게 고발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고 서둘러 일상으로 돌아왔다. 진정한 반성이 없으면 과거는 반복될 뿐이다. 무엇보다 일상의 참사가 당연하다는 듯 계속됐다. 2022년 우리나라에서 12,906명이 자살했다. 하루에 35명, 한 달에 1,075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 없는 비명이 곳곳에서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이런 현실에서 아무리 수백조 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온갖 정책을 세워도 출생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2022년 산업재해로 2,223명이 사망했다. 874명은 사고로, 1,349명은 질병으로 죽었다(‘2022년 산업재해 현황’). 매일 2명 이상이 일하러 나갔다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2022년 10월, 한순간에 159명이 압사한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며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안전과 생명을 무시하는 사회에서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인재였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책 마련이 아니라 진상 축소와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세월호 참사처럼 이번에도 정부는 없었다.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의 반복이다.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는 10년째 침몰 중이다.
일상의 참사와 순간의 참사,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기후와 생태 위기의 악화를 겪으며 안전한 생명 존중의 사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바라는 요구가 커졌다. 그러나 이 요구를 들어야 할 정치, 공동선을 증진해야 할 정치는 그 기능을 오래전에 상실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우리나라 정치를 장악한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은 언제부턴가 경쟁이 아닌 ‘전쟁’을 해왔다. 상대는 경쟁자가 아닌 ‘적’이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
증오로 똘똘 뭉친 극단적 진영 싸움으로 중대하고 긴급한 사회적 의제는 실종됐다.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 세력의 입지는 극도로 좁아졌다. 총선이 다가오자 대통령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대통령은 여야의 주요 경합 지역에서 무려 24번의 민생토론회를 열어 나라를 말아먹을 기세로 ‘묻지마 정책’을 남발했다. 규제를 해제해서 그린벨트도 농지도 개발한다고, 부동산 규제도 모두 푼다고 했다. 시종일관 돈타령이었다. ‘수백조 원의 경제효과’ 운운하는 근거 없는 추임새도 빠지지 않았다.
세월호는 선거 때마다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투표합니까?” 세월호는 배를 멋대로 늘리고 고쳐서, 화물을 너무 많이 싣고 제대로 묶지 않은 탓에 급속하게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 왔고 만들려 하는가? 우리는 묶어야 할 것을 제대로 묶고 있나? 우리 정치는 이런 물음에 고민도 대답도 하지 않는다. 세월호 이후 계속되는 갖은 참사는 우리가 정치를 바라만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지난달 21일 ‘기억과 안전의 길’로 불리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 유정씨가 대자보를 써 내려갔다. 그는 대통령이 참사의 진상 규명 요구를 “가장 잔인하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거부했고 지난 2년간 현 정부가 “우리 사회를 더 짙은 어둠 속으로, 더 고립된 개인주의”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하며 호소했다. “지겨운 절망을 넘어, 내일을 위해 투표합시다.” 절망을 넘으려면 무기력과 무관심을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안전과 생명을 중시하는 내일, 불평등과 차별 철폐, 기후와 생태 위기 대응에 진력하는 내일을 향해 걸어야 한다.
이 내일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의 수많은 “작은 날갯짓”이 “큰 나비효과”를 일으켜 정치를 움직일 때 온다. 그러나 일상의 참사와 순간의 참사가 끊이질 않는 우리 현실은 거대 양당의 독식 정치로는 그런 내일이 올 수 없음을 깨우쳐준다. 사회적 약자와 자연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따스한 정치를 일으켜 세우려는 사람이 많아질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바라는 내일이 올 것이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지만, 한순간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렇게 올 것이다. 그런 “내일을 위해 투표했습니다.” 나의 작은 날갯짓이다.
조현철(예수회 신부,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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