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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의 민주주의는 왜 취약한가?

김민SJ 118.♡.21.101
2024.04.04 11:28 1,3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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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 경우한국의 민주주의

 

지난 3월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 Institute)가2024년 민주주의 리포트를 발표하자 국내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 보고서는 한국을 꼭 집어서 전년의 민주주의 보고서의 점수에서 후퇴한 드문 경우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그저 그런 연구소가 아니다.

 

한 국가의 민주주의의 정도를 측정할 때 정치학자들이 참조하는 유력한 지표들이 있다. 예컨대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가 세계인권선언에 기초한 척도로 측정한 세계의 자유 보고서는 민주주의 측정을 위한 일종의 기준 역할을 한다. 2014년 설립된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원 데이터 값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스웨덴에 기반한 기관이라는 점에서(프리덤 하우스는 미 국무부 펀드를 받고 있기에 공정성 시비가 유독 심하다), 최근 가장 신뢰받는 정보 소스로 인정받고 있다. ‘민주주의 다양성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자유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비판처럼 아예 비판은 없는 것은 아니나 이 리포트는 꽤 신뢰할 만한 셈이다.

 

이런 리포트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던 까닭에 언론을 통해 이런 리포트의 존재를 알게 되고 곧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보고서를 보았다. 일단 보고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범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을 민주주의가 높아졌다가 곤두박질친 드문사례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

 

 

한국의 민주주의의 취약성

 

착한 사람이 지도자로 선출될 때는 민주적으로 돌아가는데, 악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때는 그렇지 않은 사회가 있다고 해보자. 그런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착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모두 선거로 뽑힌다고 전제할 때 말이다.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 보고서를 보면서 들었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 보장은 선출된 사람의 자질에 달린 것인가? 그렇다면 수많은 제도적 장치들은 장식품에 불과한 것인가?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 보고서의 연도별 보고서를 일람하면 자유민주주의 지수, 참여민주주의 지수, 선거민주주의 지수, 숙의민주주의 지수, 평등민주주의 지수 모두가 중도정당 대통령 시기에는 일제히 올랐다가, 보수정당 대통령 시기에는 일제히 하락하는 모습을 선명히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제도적이고 절차적인 면에서는 하자가 없을지라도, 매우 정파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2018년 하버드 대학교의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짧지만 매우 강렬한 책 한 권을 냈다. 제목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였다. 처참하기 짝이 없는 정치학적 소양을 갖고 있어서 작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나로서는 이 책은 어둡고 캄캄한 바다에서 찾은 등대와도 같았다.

 

나에게 이 책은 두 가지 중요한 통찰을 주었다. 그리고 이 통찰은 우리의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설명하는데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통찰은 무엇일까?

 

첫째는 우리가 경성 독재와 연성 독재(저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다)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했던 5.16(사실 거짓말이다. 나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다)이나 12.12(절반만 사실이다. 나는 당시 대전에서 숨바꼭질이나 하고 있었다)처럼 군인들이 민간 각료들을 체포하고,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전차와 장갑차가 도심을 지키는 그런 방식의 민주주의 해체는 유행이 지난 것이다. 베네수엘라와 헝가리, 아르헨티나, 한국, 심지어 미국에서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서 용해되기 시작했다. 즉 겉보기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것 같지만, 경제인들이 야당에 대한 지원을 멈추고, 정부기관은 대통령의 사람들로 채워지며, 심지어 사법부조차도 애완견이 되는 것(저자들은 이를 '심판을 자기편으로 삼기라고 부른다), 그럼으로써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이 허물어지는 것, 이런 식의 연성 독재가 요즘의 트렌드이다.

 

둘째는 민주주의는 단지 통치체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버드의 두 교수는 민주주의가 미국에서 훼손되어 가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글로 쓰이지 않은 규범이 민주주의의 제도와 법, 기구들을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해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미국 건국 직후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를 상종 못할 종자들로 생각했다. 하지만 후속세대들이 등장하면서 적대감이 희석되고, 정파들이 상대방을 이 아닌 반대자로 인식하면서 미국 특유의 두 가지 규범이 나왔다. 상대방이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애국심을 존중하는 상호 존중이라는 규범. 그리고 여기에 기반하여 비록 법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이라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의미에서 자제하는 제도적 자제라는 규범. 물론 때로는 규범이 깨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럴 때도 요동치던 배가 제자리를 찾듯이, 이 두 가지 규범은 다시 강하게 작동하며 제자리를 찾았다.

 

셋째는 두 번째와 연관된다. 민주주의가 일종의 비규범적 규범에 의지하는 이상, 이 비규범적 규범이 깨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용해되기 시작한다. 비규범적 규범이 깨지는 징후는 무엇인가? 바로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인 언어들이 공식적인 정치의 공간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버드의 두 교수는 트럼프의 집권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참사는 이미 오바마 행정부 때 예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상호 존중과 제도적 자제라는 규범이 오바마 행정부 시기 깨졌고, 그 결과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극단화되었으며, 이제까지 포퓰리스트들을 걸러내던 문지기 역할을 하던 정당의 중진들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안 우파와 같은 급진적인 포퓰리스트들이 공식적 정치 공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연쇄작용의 방아쇠가 당겨진 것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매우 좋은 책이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사례를 다루며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게다가 번뜩이는 통찰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은 헌법적 가치에 대한 공감과 유대감이 강한 사회를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상반되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나름의 맥락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상호 존중과 제도적 자제라는 규범은 보편적 가치를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컨대 내전 상황이었던 1861년 미국 정치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

 

즉 가치와 가치의 대결, 세계관과 세계관의 충돌과 같은 상황에서 레비츠키와 지블랫의 통찰은 상대적으로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예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경우 방금 말한 가치와 세계관의 충돌이 복잡하게 꼬여있다. 예컨대 북한과 중국이라는 안보 위협, 한일 관계의 복잡성, 그리고 뿌리 깊은 반공주의, 종교 권력과 결탁한 포퓰리즘, 경제적 양극화 등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취약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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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는 오는 621일부터 719일까지 한국의 민주주의는 왜 취약한가?”라는 주제로 금요강좌를 연다. 이 강좌를 통해 이대훈, 서명삼, 이관후, 최경호 선생과 같이 각각 안보, 종교, 정치, 경제 영역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는 연구자들을 모시고, 마치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그랬던 것처럼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방향을 잡는 등대와도 같은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이 시간 속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민주주의의 취약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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