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가난의 가난함에 대하여, 한일 사회사도직 모임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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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아루페 신부님은 가난과 부의 극단적인 병존 현상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어떤 사람들은 굶주려서 죽어갑니다. 또 어떤 이들은 콜레스테롤로 죽어갑니다. 굶주림은 불의의 아이입니다. 이 불의는 부유한 나라들이 일소할 수 있는 불의입니다. ... 하지만 그들은 그걸 원치 않습니다.” 이 문장에 가난에 대한 페드로 아루페의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난은 구조적인 불의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가난과 부유함은 우리 사회의 분리될 수 없는 그림자와 빛과도 같다는 것. 가난은 부의 과잉 앞에서 그 어두움이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와 같은 수도자들이다. 우리는 분명 가난의 서원을 했다. 하지만 이때 서원의 언어가 다르다. 청빈이다. 영어로는 똑같은 poverty이지만, 한국에서는 깨끗한 가난 clean poverty이다. 우리가 살기로 약속한 가난은 특별한 가난인가? 이젠 가난도 차별이 된다. 일상생활의 가난과 수도 생활의 가난. 그래서 페드로 아루페 신부님은 “예수회원은 콜레스테롤로 죽지 영양실조로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내가 만나보았던 수많은 수녀님들과 수사님들은 정말 춥고 가난하게 살았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가난에 관한 특별한 단어, ‘청빈’은 우리가 서원한 가난을 특권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피할 길이 없다.
지난 11월 2일에서 5일까지, 4일에 걸쳐 서울에서 예수회 일본관구와 한국관구의 사회사도직에 종사하는 이들의 모임이 있었다. 주제는 바로 가난이었다. 도시 빈민들을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과 연구자를 초대하여 가난에 대하여 깊이 있게 배우고 현장을 방문하며 나눔을 했던 귀한 시간이었다.
가난은 고대부터 부유한 자를 다른 이들과 분리했다. 예컨대 로마시대에 시민권을 가질 만큼 재산이 있던 이들과 그렇지 못한 가난한 이들의 주거지는 분명하게 분리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의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흔히 달동네라고 부르는 곳들이 가난한 지역으로 분류되었고 달동네 아이들과 아파트 아이들은 구분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따로 놀지는 않았다. 구분하되 분리되지 않는? 하지만 오늘날 가난한 이들의 주거지역은 유례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한 활동가는 이를 비주택 주거형태라고 불렀다. 주택은 한국에서 화폐, 아니 화폐보다도 더 부를 증식시키는 수단이다. 이제 집은 매매의 대상이지 삶과 거주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럴듯한 집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눈앞의 떡처럼 볼 수는 있으나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고시원이나 쪽방 같은 곳-집이 될 수 없는 방에서 사는 것을 선택한다. 혹은 빛을 포기하고 반지하로 내려간다. 굉장히 비인간적이다. 주거의 형태는 한국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 분명하게 가난의 비참함을 상징한다.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고도로 산업화되고 분명 개인소득은 예전보다 더 높아졌지만 가난한 이들은 더욱 비참해지고 희망을 잃고 있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사회 경제적 사다리를 기어 올라가기 위해 몸부림쳤다면 이제는 많은 이들이 사다리를 오르기를 포기했다.
용산에 갔었다. 일종의 다크 투어리즘이었다. 재미있었다. 옛날 80년대의 풍경이 아직 살아있었다.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곳들을 방문했다. 그중 하나가 남일당 건물이었다. 2009년 당시 늘 그랬듯이 한국에서의 재개발 프로젝트는 엄청난 이익을 보장해 주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함으로써 자산의 가치를 증식시키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그 건물에 입주해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손해를 보상해 주기를 요구했고 건물을 점거한 채 농성했다. 1월 9일 이들을 진압하려는 경찰들과 이를 막으려는 입주민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6명이 죽었다. 이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곳에 처음으로 가봤다. 정말 근사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 어느 곳에도 그날의 기억을 위한 공간이 없었다. 비참한 기억은 묻어버리고 근사한 외양으로 눈을 호리는 수작. 뻔하디 뻔한 수작. 가난은 이제 이렇게 화려한 외양 속에서 숨겨지게 되었다.
그 밖에도 수많은 만남이 있었고 이야기들이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고 있는 가난함이 얼마나 앙상하고 가난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뭔가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 예전 예수회 신부들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고 가난한 이들이 느꼈던 것을 느꼈으며 그들과 함께 싸웠다. 많은 예수회원이 가난해지는 것의 의미가 잊히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한다. 왜 이런 가난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예수회가 운영하는 기관들과 센터들의 기관화이다.
기관화는 나름 옳은 방향이다. 우리로서는 예수회의 기관과 센터가 자의적으로 운영되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그리고 투명하게 운영되기를 바라니까. 하지만 그 올바른 거버넌스-사실 이도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지만-에는 큰 대가가 따랐다. 멋진 건물과 시설, 노동조건의 향상... 조금씩 우리의 활동은 근사해졌지만 우리를 변방과 주변으로 이끌었던 동력은 어느덧 잊히고 있었다. 종종 개인적으로 우리 센터들을 생각해 보면서 이 멋진 것들을 위해 희생한 것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서울에서 이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가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김민 신부 (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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