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매거진

image

  

[노동] ‘이 편한 세상’에서 마주한 노동자의 죽음

김정대SJ 121.♡.235.108
2023.10.10 18:38 1,088 0

본문

 

사본 -단락 텍스트.png



20221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를 비웃듯, 불과 1년 반 남짓한 시간 사이 한 사업체에서 7건의 건설 현장 사고로 8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산재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 사업체는 다름 아닌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추구하며 ‘e편한세상아파트 시공사로 더 많이 알려진 디엘이엔씨(구 대림산업)이다.

 

사망한 노동자들은 떨어지는 전선드럼(작업을 위해 긴 전선을 감아두는 도구)에 맞아 죽고, 기계와 구조물 사이에 끼어 죽고, 무너져 내린 작업대에 깔려 죽고, 작업대에서 미끄러져 떨어져 죽고, 장비를 지지하던 지지대가 무너져 그 충격으로 넘어지며 건축물 철근에 머리가 찔려죽고, 지하 전기실 양수 작업 중 빠져 죽었다. 마지막 희생자는 지난 811일에 신축 아파트 6층에서 창호 유리 교체 작업 중 창호가 추락하면서 창호를 붙잡은 채 떨어져 죽었다. 그는 29세의 청년으로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가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청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던 강보경 님이다.

 

지난 915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고 강보경 님의 어머니, 친누나, 외삼촌 등 유족과 노동시민사회단체 간담회가 있었다. 이 간담회에서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 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했고, 시민대책위는 유족들과 함께 104일 오전에 디엘이엔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투쟁을 선포하고 유족 입장문을 DL그룹과 디엘이엔씨에 전달했다.

 

사건 발생 후, 고 강보경 님의 유족들은 사고 현장을 직접 보려고 하였으나 회사는 보여주지 않았고, 함께 작업을 했다는 동료의 연락처도 주질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유족들과의 첫 만남에서 유족들의 상실감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고 오로지 사건을 신속히 무마하려는 듯이 산재 처리 등에 관련해 필요한 서류를 요구했다. 유족들은 회사가 강보경 님의 죽음을 은폐하고 몇 장의 서류로 무마하려는 행위에 불쾌함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또한 회사의 책임 있는 관련 인사의 조문도 없었으며, 오로지 노무사를 통한 합의 시도만이 있었다.

 

고인의 누나는 기자회견장에서 회사가 보여준 태도에 대한 서운함과 억울함 그리고 분노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유족을 무시하셨습니다. 얼마나 멀기에 장례식장에 오지 못하셨습니까? 얼마나 바쁘시기에 뒤늦은 새벽에 근조화환을 보내셨습니까? ... 어머니께 직접 죄송하다고 말하십시오. 사회적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 고인의 어머니는 회사 측에 유족 입장문을 전달하며 아들을 잃은 상실감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죽은 내 아들을 살려내세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라고 외치며 오열했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슬픔은 인간의 더 큰 완전성에서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더 큰 완전성과 더 작은 완전성 사이의 차이만큼의 상태를 잃어버려 생기는 슬픈 감정이 바로 상실감이다. 고인의 어머니는 그 차이를 다시 회복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식이 어떻게 살아 돌아올 수 있겠는가?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그런 물리적 상실이 회복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상실감을 이해받지 못하는 것, 즉 공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사회 기득권자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목석같은 미성숙함과 잔인함을 본다.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행복한 삶으로부터 배제된 비정규직, 하청, 일용직, 이주노동자들이다. 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 이념 아래 이 불안정 노동자들은 자본에 종속된 존재로 안전한 작업 환경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소모품처럼 대접받는다. 그러나 사회 이념의 중심에 결코 다른 목표에 종속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다운 삶의 가치이다. 이 인간다운 삶의 가치는 누구나 누려야 하는 가치다.

 

배우지 못했기에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 가난하기에 값싼 저질 식품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차별이며, 인간다운 삶에 대한 절대적 존경이라는 본능적 통찰로부터 철저히 벗어난 사고이다. 이런 사고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과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가 집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생명의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이 사회의 미래는 무엇일까? 한 사회가 공동체에서 모든 개인의 인간다운 삶의 풍요로움과 가치를 망각한다면 그 사회는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이런 사회는 각자도생이라는 철저히 이기적인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모든 개인의 가치와 인간적인 삶의 풍요로움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 피해에 대해서 보상하고, 사회를 향해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런 인간의 가치와 인간적인 삶의 풍요로움을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부와 사법 당국은 이런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과 가해자에게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이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준다며 법을 개악하려는 움직임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 편한 세상은 디엘이엔씨가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