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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넘어 우리 각자의 성가정

정다빈 121.♡.235.108
2023.05.09 16:40 1,86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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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결혼을 했다. 늘 다들 하는 대로 하는 건 왠지 싫었던 나는 결혼도 다르게 하고 싶다기보다는 남들처럼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결혼하기로 한 상대 역시 사진 찍고 행사를 준비하는 흔히 하는 결혼 준비의 모든 절차를 내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목표는 가능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간소하게, 담백하게를 목표했음에도 이래저래 할 일은 많았다. 상견례 겸 가족 결혼식, 관면혼배, 신혼여행, 부모님을 위한 동네잔치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아무리 그래도 챙기긴 챙겨야 할 의례들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가톨릭 세례를 받지 않은 배우자와 결혼하는 나의 경우에는 관면혼배를 위한 절차가 가장 부대끼는 과정이었다. 교구 사목국에서 주관하는 온라인 혼인교리를 함께 수강하기 위해서 내가 속한 교회의 전통과 법을 설명하고, 나의 상황과 의지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했다. 파트너는 기꺼이 함께 교리 과정을 이수했지만,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이 혼인 장애사유가 된다는 데 의아해했다. 그리고 나는 비신자와 결혼하는 이상 나의 가족은 신자인 남녀가 서로 만나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아 이루는 가족을 뜻하는 의미로 성가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꼭 결혼하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 아닌 만큼 반드시 성가정을 이루겠다는 꿈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루려는 새로운 가족은 성가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기껍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건, ‘성가정은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너무 많이 보고 들어 온 가족의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내가 자란 고향 집에는 고전적인 양식으로 거대하게 제작된 성가정상이 있다. 현관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포인트 벽지로 정성껏 장식된 벽면에 놓인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어린 예수님의 모습은 가톨릭 가정으로서 우리 가족이 닮아야 할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요즘 들어 부쩍 집을 찾은 손님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놓인 이 성가정상이 엄마, 아빠, 딸 둘로 구성된 정상가족이자, 세례자 요한과 아녜스가 결혼해 멜라니아와 헬레나를 차례로 낳아 완성된 우리 가족이 바로 성가정이라는 일종의 자기 과시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닌가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너무 많은 맥락 안에서 성가정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며 소위 정상성을 벗어나는 가족을 배제하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음을 느끼면서부터 나는 성가정 이루세요라는 결혼 축하 인사도 마냥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성가정상을 통해 접해 온 성가족의 이미지는 언제나 아빠, 엄마, 아들로 구성된 핵가족의 모습이었기에 성가정을 이루라는 축복의 말이 얼른 자녀를 낳아 가족을 완성하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자녀가 없는 가정은 영원히 성가정이 될 수 없는 것인지, 한 부모 가족이나 조손 가정은 성가정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지, 나처럼 다른 교회 전통에 속한 그리스도인과 이룬 가족은 배우자가 개종하지 않는 한 어떻게 해도 성가정이 될 수 없는 것인지 질문은 늘어갔다. 나는 새로운 가족을 이루면서 비로소 성가정상이 상징해 온 것들과 마주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성가정이 뜻하는 바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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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사전에 따르면 성가정은 아기 예수, 성모 마리아, 성 요셉의 가정을 가리키며 17세기부터 대중적인 신심 대상으로 발전되었고, 이 시기 성가정이라는 명칭을 지닌 여러 수도회가 창립되었다. 1921년 가톨릭교회는 성가정 축일을 지정하여 성탄 후 첫 주일 또는 주일이 없는 경우 1230일을 성가정 축일로 지낸다. 두산백과는 성가정을 유소년 시절의 예수와 그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을 나타낸 기독교 미술의 한 주제로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미술에서 활발히 창작된 소재라고 설명한다.

 

두 사전의 설명을 종합할 때 성가정은 르네상스 이후 회화나 조각의 주제로 활발히 등장하며 이 시기 대중 신심을 고양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복음서에 예수님의 유년 시절과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로 성가족이 본격적으로 조명된 것은 근세에 이르러서다. 흥미로운 것은 가톨릭교회가 성가정 축일을 공식적으로 지정한 것이 1921년이라는 점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은 산업화로 인한 생산성의 증대와 급격한 도시화로 서구 사회에서 핵가족이 보편적 형태의 가족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했던 시기다. 오늘날에도 성가정상의 요셉과 마리아, 예수는 성서 시대의 튜닉을 입고 있지만, 성상이 표상하는 아빠, 엄마, 어린 아들이라는 핵가족의 모습은 어쩌면 예수님의 시대보다는 20세기 초 가톨릭 가정의 이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헤아리게 되는 지점이다.

 

성가정 축일 무렵이면 교계 매체에 실리곤 하는 성가정에 관한 칼럼들을 참고하자면, 대체로 성가정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서 계신 가정이라고 정의된다. ‘내가 아닌 하느님과 네가 중심이 되는 가정’, ‘서로를 예수님처럼 섬기는 가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을 받아들여야 했던 마리아와 요셉이 서로를 철저히 신뢰했으며,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랑과 존중이 있는 관계를 맺어갔음을 상기하며 성가정은 신뢰와 그에 따른 상호 순종이 있는 가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성가정 축일 삼종기도 훈화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면 내가 아니라 너를 먼저 보아야 하며, 고독한 독불장군이 되기보다 함께 걷는 가정을 위해 나의 독재와 싸워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처럼 성가정의 이상이 재해석되고 신심의 대상이 되어 교회의 공식적인 전통으로 편입되어 온 흐름과,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가정에 관한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성가정이 2023년에도 반드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이른바 정상가족으로 표상되어야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넘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긍정하고, 각자의 가정 안에서 성가정이 지녔던 신뢰와 존중을 풍요롭게 나누도록 격려할 때 우리는 정상가족보다는 오히려 대안가족에 가까웠던 마리아와 요셉, 예수의 공동체를 조금이라도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정다빈 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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