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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온실가스 감축과 노동시간 단축

조현철SJ 121.♡.235.108
2023.04.11 16:47 1,49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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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덥다고 한다. 수도권 대학에서 꽃말이 중간고사인 벚꽃이 올해는 중간고사를 한참 앞두고 활짝 폈다. 지난달 20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58차 총회는 6차 종합보고서, 그다음 날 우리나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을 발표했다. 저쪽은 엄중하고 긴급했고, 이쪽은 안이하고 느긋했다. IPCC는 보고서에서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 온도가 1.09도 높아졌고 현재 각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모두 실행해도 2040년 이전에 1.5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2018년 제48차 총회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는 당시의 추세를 계속 가정하면 늦어도 2052년에 1.5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으니 12년이나 당겨진 셈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인류를 위한 생존 지침이라고 한 이 보고서는 인류의 미래가 향후 10년간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렸다고 경고한다.

 

탄녹위 기본계획은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기존의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수치상으로 유지했을 뿐 부실하기 짝이 없다. 향후 20년 동안의 기본계획이지만, 2030년 이후의 계획은 아예 없고 2030년까지 계획은 부실하다. 탄녹위는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부문의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축소했고, 줄어든 감축량은 국제 감축과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기술 등으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산업계가 요구한 대로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준 셈인데, 기후 위기 속에서 국제 감축량을 과다 책정해 국내 감축으로 이전하는 숫자 놀음은 너무 한가하고, 상용화가 불확실한 CCUS로 감축량을 늘린다는 발상은 너무 무모하다.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 의하면 2023~2027년에 4890만 톤(연평균 1.99%), 2028~2030년에 14840만 톤(연평균 9.29%)을 줄인다. 2030NDC75%를 다음 정부로 떠넘긴다는 발상은 너무 무책임하다. 28년 이후 대폭 늘어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그뿐 아니라, 이산화탄소는 한번 배출되면 최장 200년까지 대기에 머물며 온실효과를 내기 때문에 온실가스는 빠르게 많이줄여야 한다. 누적 효과로 인해 온실가스 감축을 뒤로 미루면 목표를 달성해도 효과는 줄어든다.

 

경제 성장에 매달리는 한, 기술만으로 온실가스를 적기에 필요한 만큼 줄일 수 없다. 생산과 소비 증대를 뜻하는 성장은 더 많은 물질과 에너지를 요구하므로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어나고 온도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기후위기가 심해져도 성장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 생산성을 향상하는데, 그러면 더 적은 인원으로 같은 양을 생산할 수 있지만 대신 고용 수요가 준다. 그래서 경제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 곧 성장하지 않으면 생산성 향상과 함께 실업자가 늘어나는 생산성의 함정에 빠져 사회적 불안정과 고통이 커진다. 성장을 요구하는 구조적 압력이 언제나 작용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성장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성장이 생산성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노동시간을 줄여도 고용 수요 감소를 막는다. 그러니 노동시간 단축은 성장의 덫에서 벗어나 탈성장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탈성장은 마이너스 성장이 아니라 지금과 다른 경제, 다른 생활방식, 다른 문명, 다른 사회적 관계에 기초한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앙드레 고르스, <에콜로지카> 34). 최근 정부가 내놓은 69시간노동시간 개편안은 여론이 좋지 않아 주춤한 상태지만,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정부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도 여전히 과로 사회. 2021년 기준 한국 노동자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99시간 길고, 독일에 비하면 566시간이나 더 길다. 한국 노동자는 현재의 주 52시간도 길다고 느낀다.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자가 희망하는 주당 노동시간은 36.7시간으로 주 52시간제의 기본 근무시간(40시간)보다 짧았다. 젊을수록 희망 노동시간도 줄어서 19~29세는 34.97시간에 그쳤다.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생산성 향상으로 100년 후인 2030년 주당 노동시간은 15시간이면 충분하리라고 예상했다. 2030년을 불과 7년 앞둔 오늘날 생산성은 예측대로 놀랍게 향상했지만, 노동시간에 대한 희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본은 생산성이 향상하면 노동시간이 아니라 노동자 수를 줄이고 성장을 지속하여 이윤을 늘려 왔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 이르 요론트부족은 이전에 없던 쇠도끼가 들어와 생산성이 높아지자 생산 대신 수면 시간을 더 늘렸다고 한다. 어느 쪽이 사람이 살기에 더 나은 세상일까?

 

노동시간 감축은 이제 희망을 넘어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달 21, 칠레 상원은 주당 법정 노동시간을 현재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칠레는 이미 2005년에 주당 노동시간을 48시간에서 45시간으로 줄인 바 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노동시간 감축이 더 나은 칠레를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과 로봇 등 첨단 기술로 고용 없는 성장노동 없는 생산이 현실이 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이제 성장과 과로 노동에 매달릴 게 아니라 성장으로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반성할 때다. 성장하려고 생산을 늘리는 대신 노동시간을 줄이면 삶은 여유로워지고 가정이 살아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무엇보다 자원과 에너지 사용의 감소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자연스럽게 줄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성장과 다른 길을 과감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조현철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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