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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서평] 나는 독일인입니다, 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하여

정다빈 121.♡.235.108
2022.04.28 15:56 2,5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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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가보신 적이 있으세요?” 내가 물었다. “. 아주 오래전에요.” 그녀는 내 눈을 피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나는 독일인입니다1977년생 독일 출생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노라 크루크 (Nora Krug)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래픽 서사로 구현한 작품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뉴욕에 정착한 작가는 아마도 이국땅에 살았기에 더 자주 독일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죄의식을 자주 마주한다. 노라 크루크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의 역사를 추적하고, 따뜻하고 진솔한 필치로 자신과 가족의 그리고 독일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직접 수집한 가족의 사진과 기록, 일러스트, 골동품점에서 수집한 나치 시대의 기록은 노라 크루크가 맞닥뜨려야 했던 전쟁과 역사의 슬픔, 상속받은 죄의식과 책임감의 무거움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물려받은 죄와 상속받은 죄의식

 

그 전쟁은 내 어린 시절 내내 존재했지만 아무도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전쟁은 시끄럽고 무시무시한 사건, 우리 부모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중략) 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돌아가셨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물려받은 죄(원죄)’라거나 다른 세대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은 익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예수님에게 그걸 받아들이겠다고 맹세했다.”

 

노라 크루크는 77년생으로 전후 2세대에 속한다. 전쟁의 기억과 죄의식은 전후 독일의 문화와 교육 안에 생생히 살아 어린 노라는 자기 잘못으로 망하는 거라면 자기 연민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교훈 속에 자란다. 학교에서 노라와 친구들은 독일의 언어, 문화, 특성에 대해 극도로 신중하고 절제된 태도를 배운다.

 

우리 언어가 한 때는 시적이었지만 이제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언어라고 배웠다. 실러를 읽긴 했지만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듯이 그를 사랑하도록 배우지는 못했다. 우리가 쓰는 어휘에서 영웅’ ‘승리’ ‘전투’ ‘긍지라는 독일어 단어들을 지웠고 최상급을 피했다.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보다 더 큰 어떤 이념을 믿는 것을 뜻하는 단어인 추자멘게회리히카이츠게퓔zusammengehörigkeitsgefühl은 미국의 문화정체성을 정의할 때는 사용했지만 우리 이야기를 할 때는 사용하지 않았다. ‘너무도 전형적인 독일식이라는 표현은 불친절하거나 편협한 행동을 묘사할 때만 썼다.

 

뉴욕에 정착한 노라는 자신의 독일어 억양을 감추고자 애쓴다. 독일인으로서 노라의 수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요가 수업을 받을 때도 다른 수강생들처럼 오른팔을 비스듬하게 쭉 펴서 들어올릴 수 없다. 그렇게 할 때마다 히틀러 경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노라의 독일인으로서의 수치심은 유대인과 결혼까지 했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을 떠나와 산 세월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공허함을 느낀다. 그녀의 하이마트는 메아리에 그친다.

 

우리는 우리 고향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우리나라 국가의 가사도 배우지 못했다. 오래된 민요들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하이마트Heimat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데,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노라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사를 추적하기로 한다.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는 불편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잃어버린 나의 고향, 하이마트를 찾을 유일한 방법은 뒤를 돌아보는 것, 추상적인 수치심을 뛰어넘어, 너무나 묻기 힘든 질문들, 내 고향, 그리고 아버지의 가족과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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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군인으로 죽은 열여덟의 삼촌

 

노라의 아버지의 큰 형, 노라의 삼촌은 열여덟 어린 나이에 전쟁에서 죽었다. 그러나 삼촌이 어디에서 죽었는지는 가족들은 정확하게 몰랐다. 삼촌이 죽고 얼마 후에 노라의 아빠가 태어났고 할아버지는 죽은 큰 아이의 이름을 따서 아빠의 이름을 프란츠-카를이라고 지었다. 노라의 아버지는 무관심했던 부모와 못되게 굴었던 누나와 연락을 단절한 채 외롭게 자란다. 가족들은 전쟁 후 얻은 새로운 아들의 존재를 지워버릴 만큼 죽은 형을 향한 기억의 그늘 속에 살았다.

 

1946년생이었던 아빠와 달리 1926년생인 삼촌은 히틀러 유겐트로 자랐고 히틀러의 군인으로 죽었다. 삼촌이 청소년기 사용하던 노트를 발견한 노라는 삼촌이 친밀하게 느껴지면서도 오싹한 느낌을 받는다.

  

삼촌을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전쟁과 죽음뿐이었다. 삼촌은 히틀러의 군인이었기 때문에, 나는 삼촌의 때 이른 죽음에 대해 슬픈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찍이 감지하고 있었다.”

 

 

나치의 당원이었던 외할아버지 빌리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가 나치 당원일리 없다고 확신했다. 외할아버지 빌리는 항상 나치를 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젊은 시절 유대인 리넨 세일즈맨의 운전기사로 일했고 두 사람은 아주 사이가 좋았다. 외할아버지는 그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위험에 처했을 때 장모님의 집에 그를 숨겨주고 대가로 큰돈을 받았다고 했다. 외할아버지의 어머니의 머리는 붉은 색이었고 외할아버지는 그 이유로 자신의 가족이 유대계일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죄의식에 시달리던 노라에게 그 이야기들은 큰 위안이 되었다.

 

노라는 가족들의 고향 퀼스하임에서 기록보관소를 찾는다. 그리고 빌리 할아버지의 미국 파일을 확인한다. 그 파일은 19461월 미군이 퀼스하임에 도착하고 그곳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의 결과다. 노라의 엄마와 이모는 틀렸다. 빌리 할아버지는 나치 당원이었다. 그는 자신을 '중대부역자-부역자-경미부역자-동조자-무혐의자' 가운데 동조자로 분류한다. 노라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유약함을 고백하며 직접 쓴 단어를 확인하며 견디기 힘든 느낌을 받는다.

 

빌리 할아버지가 딸들에게 서술한 자신의 삶 가운데 많은 것은 거짓이었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해왔던 것, 자신이 강제로 나치에 입당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쓴 편지의 내용,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연도별 주소와 직업을 추적할 수 있는 전화번호부 모두가 각각 다른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빌리 할아버지가 부역 혐의로 일자리를 잃고, 영양실조로 딸들이 요양소로 끌려가는 상황에 처하자 빌리의 친구들이 그를 보증하는 편지를 썼고 노라는 그 편지들을 발견한다. 그가 부역자가 아니라는 친구들의 보증과 청원 편지 덕분에 빌리는 본인이 주장한대로 동조자로 분류된다.

 

가족들은 복잡한 마음이 된다. 엄마는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 좀 겁쟁이 같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이라고 말한다. 이모는 네가 할아버지 입장이었다고 생각해보라고 한다. 아이들은 어리고, 나치에 입당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엄마와 이모의 입장은 근거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노라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모두에게 아버지는 한 명 뿐이니까.

 

 

직면하는 용기

 

노라의 아빠와 고모 안네마리는 몇십 년 동안 왕래가 없었다. 고모의 이야기를 듣고자 고모의 아들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노라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세대의 편견 없는 만남에 기꺼이 동의하고 시간을 내준다. 처음 사촌들을 만나고, 언제나 아빠에게 냉담했던 고모를 만날 때 노라는 도망가고 싶은 정도로 떨린다. 그러나 아픔을 직면하는 용기 없이는 화해도 없었을 것이다. 노라의 세대에서 가족은 마침내 화해한다.

 

미국으로 돌아온 노라는 빌리 할아버지를 위해 증언해주었던 부부의 아들을 찾는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그의 부모가 빌리 할아버지를 위해 해주었던 것을 그는 노라에게 해준다. 처음 노라를 경계하고 냉담했던 그는 노라에게 죄의식 가지지 말아요라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해준다. 노라는 자신을 오랫동안 사로잡았던 죄의식에서 완전히 해방되지는 못했지만, 친밀함을 느낀다.

 

용서 받지 못할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개인의 속죄가 수백만 명의 고통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따뜻한 목소리와 관대함 덕분에 나는 어느새 그에게 친밀함을 느낀다. 내내 나의 할아버지에게서 느끼고 싶었던 그의 친밀함을. ‘고맙습니다.’ 나는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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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이라는 것

 

김누리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 책은 새로운 세대 독일인의 정체성 문제를 깊이 탐색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정신적 과거를 상실하고 과거의 시간을 부정해야 하는 독일의 젊은 세대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그렇다. 이 책은 치열하고 깊게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가족사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들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진실은 기대와는 다르고 실망스럽기도 두렵기도 하다.

 

책은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나치 당원이었던 빌리 할아버지를 엄마와 이모가 애써 감싸려했듯이 작가 역시 히틀러의 군인이었던 삼촌과 나치 당원이었던 외할아버지를 역사의 비극 속에 쓰러져간 인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결론은 종종 위험할 수 있지만 작품 전체를 걸쳐 그려진 작가와 작가 세대 독일인들이 가진 깊은 죄의식과 치열한 고민으로 인해 불편하지 않게 느껴진다. 작가는 역사를 기억하고, 되돌아보고, 이해하고 바로잡으려는 긴 흐름 안에서 개인이 행할 수 있는 실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다빈 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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