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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다시, 핵 없는 세상으로 가자

조현철SJ 121.♡.235.108
2022.03.14 17:19 2,29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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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탈핵을 내세웠던 정부가 퇴장하고 있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과 결정적으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20175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 건설을 약속하며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그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1호기 영구 정지를 선포하며 야심 차게 탈핵을 선언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기대에 터무니없이 미달하는 성적표를 들고 임기를 마치는 중이다.

 

 양대 정당 대선 후보의 발언 내용을 보면 차기 정부에서 탈핵 정책은 한층 더 후퇴할 전망이다. 현 정부가 백지화했던 신한울 3·4호기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국민 의견 수렴으로 한발 물러섰고, ‘감원전이라는 신조어로 현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강행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이재명 후보는 소형모듈원전(SMR)의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윤석열 후보는 적극적으로 개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변했을까? 무엇보다 현 정부와 여당의 어정쩡한 태도와 이율배반적 행보 탓이 크다. 정부와 여당은 핵산업계와 보수 야당의 끈질긴 공세에 애초의 탈핵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했다. 탈핵을 선언하고도 핵발전소 수출과 파이로프로세싱 연구개발 정책을 지속했고 신한울 3·4호기 완전백지화를 마무리하지 못해 핵발전의 불씨를 살려 놓았다.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은 지역 주민을 배제하는 등 민주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추진하여 파행을 빚었다.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와 신규핵발전소 건설 금지를 탈핵 정책 기조로 내세웠으나 법제화하지 않아 정권만 바뀌면 정책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후쿠시마를 계기로 큰 동력을 얻은 우리나라 탈핵 운동은 현 정부의 탈핵선언에 기여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탈핵 선언은 성과이면서 운동 진영에 일종의 이완제로 작용했다. 게다가 기후위기라는 중차대한 현안 대응에 시민단체의 역량이 집중되면서 이전에 비해 운동의 동력이 많이 떨어졌다. 현 정부의 탈핵 정책을 끈질기게 물어뜯던 핵산업계와 보수 야당은 기후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핵발전을 전방위에서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핵발전이 기후위기의 대응 수단이 될 수 없다는 합리적인 분석과 반론은 선동에 가까운 정치적 주장에 덮여버린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해외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도 핵발전 세력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다. 탈핵은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는데 탈핵 운동은 다시 힘든 처지에 놓였다.

 

 불과 5년 만에 탈핵 기조를 뒤흔든 정치 상황은 탈핵 운동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 성장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핵발전 세력이 얼마나 강고한지, 일반 시민들에게 핵발전의 실상이 얼마나 가려졌고 좋은 것으로 포장돼 있는지 알려준다. 지금은 탈핵 진영이 호흡을 가다듬고 그동안의 운동 방향과 기조를 반성하며 심기일전해야 할 때다. 지난해 12월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의 핵무기 자체 개발 지지에 관한 질문에 응답자의 71%가 찬성했다. 질문의 성격과 맥락은 핵발전과 다르지만, ‘에 대한 우리나라의 의식 실태를 얼마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탈핵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탈핵 진영은 일반 시민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 더 효과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운동 방식을 찾아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과 탈핵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운동이 핵발전을 배제하면서 이루어져야 하듯이, 탈핵 운동도 기후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 배출 없는 핵발전은 일반 시민에게 매력적인 말이다. 핵발전을 늘리면 다른 노력 없이도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착시현상 속에서 탈핵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핵발전은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핵발전이 약속하는 풍요는 결국 죽음을 잉태한 풍요다. 핵발전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준위핵폐기물을 지속적으로 양산하고 지역 주민에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고 하청에 하청으로 노동자를 착취한다. 핵발전은 극도로 위험한 기술로 철저한 통제와 복종을 요구하는,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 에너지다. 핵발전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자율성은 축소된다. 핵은 전체주의적 광휘, 즉 비밀, 거짓말, 폭력을 온 사회에 퍼뜨린다.”(앙드레 고르스, <에콜로지카>) 핵발전으로는 결코 좋은 삶을 누릴 수 없다. 탈핵은 우리가 좋은 삶으로 가는 길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에너지 전환은 탈핵 진영이 깊은 관심으로 지켜봐야 할 지점이다. 핵발전과 석탄발전을 대체할 재생 가능 에너지는 생태적으로 또 지역에너지로 개발해야 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를 이윤의 최대화라는 자본의 논리로 접근하면 이미 우리가 경험했듯이 산과 논밭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훼손하여 지역 주민의 삶을 재생 불능으로 만들 것이다. 중앙의 수요를 위해 조성하는 대규모 재생 가능 에너지 단지는 해당 지역과 송전선로 지역 주민의 삶을 망가뜨릴 것이다. 모두 핵발전이 지역에 가하는 폭력의 재현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탈핵의 발걸음을 지속할 수 있는 희망을 우리 안에서 길어 올려야 한다. 진실은 드러나는 법이다. 거짓이 힘을 잃고 스러지는 때는 반드시 온다. 진실을 향한 우리의 한걸음, 한걸음은 언제나 승리의 발걸음이다. 가다가 넘어져도, 진실은 그만큼 세상에 드러난다. 돌이켜보면 변화는 승리뿐 아니라 패배를 통해서도 일어난다. 핵발전 세력이 산업계, 학계, 정치권 등 사회 곳곳에 깊이 자리하고 있지만, 핵의 역사는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핵 없는 세상은 분명히 있었다. 우리가 탈핵의 발걸음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 세상은 반드시 다시 온다.

 

 

조현철 신부 (예수회 사회사도직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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