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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악마 묵주, 가짜 기적의 메달에 대한 단상

조현범 121.♡.235.108
2022.03.02 17:51 5,0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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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되고 왜곡된 성물 주의보 발령
 
“혹 ‘악마 묵주’로 기도하고 있지 않나요?” 1월 16일자 평화신문의 1면 기사 제목이다. 이날 평화신문, 가톨릭신문은 악마 묵주, 가짜 기적의 메달 등 변형되고 왜곡된 성물이 팔리고 있어 신자들은 조심해야 한다는 기사를 일제히 실었다. 주교회의 사무처에서 작년 12월 28일 전국 교구에 공문을 보냈는데, 주로 외국에서 발견되던 이상한 문양이 들어간 묵주나 기적의 메달 그리고 스카풀라 등이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가톨릭 성화상이나 거룩한 표지를 왜곡하여 유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주교회의 사무처는 이런 물건들이 온라인 귀금속 쇼핑몰이나 성물 판매소를 표방하는 쇼핑몰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진짜 성물로 오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하였다.
 
악마 묵주라는 말에 드디어 적그리스도가 교회 내에 침투했다고 생각한 독자도 있었으리라. 게다가 가짜 기적의 메달이라니? 필경 진짜 기적의 메달과 가짜 기적의 메달을 구별하는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에 비추어 볼 때 가짜가 버젓이 팔린다는 것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여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악마 묵주라고?
 
주교회의와 교구 그리고 교계 언론이 지목한 악마 묵주의 모양은 이렇다. 먼저 묵주의 시작 부분에 달린 십자고상에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INRI(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글귀가 새겨진 팻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고 유혹하는 자의 표상인 뱀의 머리 모양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 나무의 네 끝이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오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오각형 가운데에 태양이 있고, 사방을 광선이 뻗어나가는 모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작처가 불분명하고 국내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플라스틱 묵주’ 또는 ‘묵주 목걸이’라는 품명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보도된 자료 화면도 보고,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이른바 악마 묵주라는 것도 찾아보았다. 문제가 된 묵주의 십자가 상단에 뱀의 머리 모양이 있다는데 글쎄 뱀 머리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십자가 끝이 오각형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 태양과 광선이 있는 것은 맞지만, 과연 그것이 우상숭배를 상징하는지도 의문스럽다. 그냥 이런저런 문양들을 마구잡이로 가져다가 장식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싶었다. 말하자면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영세한 제작업체가 적은 돈으로 대량으로 찍어낸 플라스틱 제품이라서 다소 조잡하게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받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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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기적의 메달
 
기적의 메달은 1830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과 관련된 것이다. 뱅상 드 폴 성인이 세운 사랑의 딸 수녀회에 입회하여 수련 생활을 하던 카트린 라부레 수련 수녀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셨는데, 지구 위에 꿈틀대는 뱀을 밟고 서 계시며 양손에서 빛이 발산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성모님 주위에 둥그스름한 메달이 보였는데, 가장자리에 희미하게 새겨진 기도문이 있었다. 당연히 프랑스말이었다. 번역하자면 이렇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이어서 성모님의 말씀도 들렸다. “이 모형을 바탕으로 메달을 찍어라. 메달을 갖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을 것이다.”

라부레 수련 수녀의 고해를 듣고 고해 사제 알라델 신부가 뱅상 드 폴 성인이 설립한 선교수도회의 에티엔느 신부와 함께 파리 대교구장 드 켈랑 대주교를 찾아가서 성모 메달을 만들도록 허락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대주교가 허락하자 메달의 주조는 파리의 금은 세공업자 아드리앵 바세트에게 맡겨졌다. 그런데 메달을 주조하려면 뒷면에 대한 설명과 정확한 도형도 필요했다. 1년이 지나 성모 발현의 세부 사항들이 잘 기억나지 않았던 라부레 수녀는 기도를 바친 후에 고해실에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메달 뒷면에는 기도문이 없습니다. M자와 두 개의 심장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하여 성모 메달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832년 2월 파리에 콜레라가 창궐하였다. 당시 약 2만 명의 파리 시민이 콜레라로 사망하였다. 사랑의 딸 수녀들이 환자들을 간호하면서 메달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 메달을 받은 환자들은 하나둘 건강을 회복했다. 그렇게 하여 기적의 메달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교계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전통 ‘기적의 메달’은 앞면 중심에 성모님이 팔을 벌린 채 서 있고, 둘레에 프랑스어로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뒷면 중앙에는 성모님을 상징하는 알파벳 M이 십자가의 받침을 꿰고 있다. 뒷면 하단에는 가시관을 쓴 심장(예수 성심)과 칼에 찔린 심장(성모 성심), 그리고 둘레에 12개의 별이 새겨져 있다.

가짜 메달로 의심되는 것에는 앞면의 성모님 윤곽이 흐릿하고, 기도문의 일부가 임의로 삭제되어 있다고 한다. 뒷면도 십자가가 흐릿하다거나, 십자가와 알파벳 그리고 별의 배열이 변형되었다거나, 성심의 형상에 가시관과 칼이 빠진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적의 메달은 어느 나라에서 제작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나라말로 기도문이 되어 있다. 영어나 라틴어로 된 메달도 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는 에스파냐어 기도문이 새겨진 기적의 메달도 있다. 이번에 가짜 기적의 메달이라고 지목된 메달의 기도문은 라틴어로 되어 있고, 일부가 삭제된 것이 아니라 약자(OPN=Ora pro nobis,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윤곽이 흐릿하다거나 세부 묘사가 생략되었다는 점과 기도문이 프랑스어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만으로 가짜 기적의 메달이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오히려 이탈리아 등 외국의 영세한 성물 세공업자들이 조잡하게 주조한 불량 메달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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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물 주의보 발령에 대한 반응
 
그런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난리가 났다. 다양한 글들이 올라왔다. 성당 성물방에서 샀던 기적의 메달을 살펴보니 가짜였다. 당장 폐기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묵주의 1/3 이상이 가짜 묵주였다. 외할머니 유품으로 가지고 다니던 형광 플라스틱 묵주를 확인했더니 역시나 사탄 묵주였다. 성지순례 다녀온 레지오 단원 자매님이 묵주를 한 묶음 들고 와서 나누었는데 다 가짜 묵주였다. 진품을 구할 수 없다. 주변 성물 판매소에는 죄다 변형된 것만 진열되어 있다. 등등.

과연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없는 살림에 난생 처음 외국 나들이로 메주고리예 성모님 순례지를 다녀오면서 사 왔다고 검정 플라스틱 묵주를 내게 건네주셨던 할머니 한 분이 기억난다. 싸구려 묵주라서 그분이 성모님께 바쳤던 정성과 기도가 손상될까? 물론 외국, 특히 이탈리아 등지에서 만든 조잡한 금은 세공 성물을 수입하여 비싸게 파는 한국 교회의 성물 문화에 경종을 울리려 한다면 의미 있는 일이겠다. 그런데 악마 묵주 논란은 오히려 본당 성물방에 납품하는 성물 제작업체의 군기를 잡으려는 의도처럼 읽힌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문제는 패션화, 상업화, 주술화
 
이번 기회에 관심이 생겨서 온라인 가톨릭 쇼핑몰들을 한 번 구경하였다. 그곳은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었다. 현대 한국 가톨릭 물질문화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논문을 한 편 쓸 수 있을 정도였다.

온갖 종류의 화려한 묵주 반지, 묵주 팔찌, 분도패 열쇠고리, 성 요셉 열쇠고리 등이 상품으로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십자고상에도 켈트 십자가 등 온갖 문양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차량 부착용 십자가, 이콘, 성모자상, 성모상 등도 넘쳐났다. 침수대추목 육각알 1단 묵주라는 것도 있었다. 귀신 쫓아준다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것인데, 요즘은 전기벼락이라는 특수 가공으로 만든 대추나무 묵주라고 한다. 이것을 선물용으로 주문하면 십자가 뒷면에 세례명을 각인하는 서비스도 해준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쇼핑몰에서는 기적의 메달을 귀걸이로 만든 것도 팔고 있었다.
 

과연 성물과 액세서리의 경계는 어디일까? 금이나 은으로 만든 묵주 팔찌는 묵주 기도를 하는 데 쓰이는 성물인가 아니면, 그냥 예쁘고 멋있는 장신구인가? 기적의 메달 귀걸이는 가톨릭 성물인가, 패션 상품인가? 왜 하필 민간신앙에서 귀신 쫓는 효험이 있다고 믿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묵주를 만들어 팔고 살까? 그야말로 성물의 키치화, 패션화, 주술화 아닌가?
 
한국 교회는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 노력이 빚어낸 문화적 효과인지 오늘날 가톨릭 문화는 박해받고 천대받던 소수 집단의 문화가 아니라 주류 문화로 인식된다. 그러자 세속 대중문화와 경합을 벌여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패션화, 상품화를 앞세운 문화산업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한국 교회가 정작 걱정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성물의 팬시 상품화, 패션화로 나타나고 있는 가톨릭 물질문화의 상업화가 아닐까?
 
 
조현범 토마스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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