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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의 빛을 찾아가는 이야기

정다빈 121.♡.235.108
2021.12.24 15:16 3,68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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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역에서 멀지 않은 오래된 골목 초입, 낡은 연두색 집. 각각 부엌 하나 딸린 작은 방들이 서로 이웃한 작은 가정집에서 인보성체수도회 수녀님들은 이주민과 난민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올해 초, 처음 이곳에 공동체를 꾸린 두 명의 수녀님은 공동체의 이름을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이라고 붙였다. 이주민과 난민과 같이 사는 삶을 생각할 때 그냥 이 복음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총봉사자(관구장) 수녀님은 정말 그 이름을 원하냐고 마지막으로 물어본 후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의 출발을 허락하셨다. 얼마 후 모든 형제들을 읽으면서는 무척 놀랐다. 모든 형제들이 한 장 전체를 할애해 소개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와 그에 관한 성찰이 바로 수녀님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 공동체를 시작한 두 사람 가운데 하나인 김보현 로사 수녀님은 본래 작년 초 페루 선교 소임을 받았고, 열심히 스페인어 공부 중이었다. 아마존 시노드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아마존에 들어가 살 마음에 들뜨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었고, 결국 선교를 떠날 수 없었다. 이미 필리핀에서 선교한 경험이 있던 김보현 수녀님은 이때 평소에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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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은 김보현 로사 수녀님의 오랜 고민에서 출발했다.

 

필리핀에서 선교하면서 고민했던 지점들이 있어요. ‘우리는 현지에 사는 사람들과 정말 공감하고 있는가?’ ‘우리도 필리핀 빈민가에서 그들과 함께 가난하게 살고자 노력했지만, 정말 그분들을 제대로 이해했는가?’ 우리의 삶의 방식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가난한 이들 속에서 살지만, 여전히 우리는 을들 사이에서 갑이 되는 그런 관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해외 선교를 떠나는 계획이 무산되면서 김보현 수녀님은 전에 가지고 있던 열망,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소명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노동자로 살고 싶다는 열망,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노동자로 살면서 수도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확실해졌다. 총봉사자 수녀님과 대화 끝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허락받고 양주와 포천에 들어가 공장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순수하게 노동자로 살아가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을들의 세상에서도 가장 을은 한국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차별받는 이주노동자, 난민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다. 마침 일하던 공장의 형편이 어려워지며 권고사직을 당했다. 우선 교통이 편리해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모이는 의정부로 건너왔다. 그리고 월세가 싼 지역에 방을 얻고 난민들을 위한 쉼터를 시작했다. 수도회의 반응은 반신반의였지만, 공동체를 다녀간 총봉사자 수녀님과 평의원 수녀님들은 계속 해보라고 격려하셨다. 이런 외진 곳에 또 올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이곳에 살겠다고 지원하는 수녀님들이 생겼고, 진은희 엘리사벳 수녀님이 곧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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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김보현 수녀님(왼쪽), 진은희 수녀님(오른쪽)과 실습 중인 윤다정 소피아 수녀님(가운데)

 

그렇게 지난 228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은 축복식을 갖고 공동체를 열었다. 며칠 뒤인 38일에는 첫 손님이 찾아왔다. 의정부교구 파주 엑소더스 소개로 베트남에서 온 로안 자매님이 공동체로 왔다. 로안 자매님은 당시 유방암 3기로 수술을 받고 베트남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민인 로안 자매님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고, 수술과 치료 과정에는 너무 큰돈이 들었다. 어떻게든 치료와 재활 과정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발품을 팔았고, 국립중앙의료원이 제공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의료 지원 사업에 참여해 겨우 치료를 계속할 수 있었다. 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생활성서>에서도 3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모금해 전해주었다. 로안 자매님은 지금도 수녀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로안 자매님을 시작으로 다른 이주민 쉼터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몸이 아픈 사람들이 계속 착한 사마리아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수녀님들은 이들과 마주 보고 있는 집에 함께 살며 식사도 같이 하고, 일도 같이 하며 하루를 함께 보낸다. 병원에 가는 길을 동반하고, 의료비 지원을 알아보고, 생활을 돕는 일은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일부분이다. 매일 같이 이야기하고 밥 먹고 고민을 나누고 하는 일이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수녀님들은 뒤늦게 알았다. 홀로 외로운 한국 생활과 투병 생활을 버텨온 로안 자매님이 알려주신 덕분이다. “그런 점에서 로안 자매님은 우리에게는 너무 귀한 사람이었다고 김보현 수녀님은 얘기한다.

 

수녀님들과 여성들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약간 떨어진 집에는 수단에서 온 자키라는 이름의 남성도 살고 있다. 희귀병에 걸려 갈 곳이 없는 상태라는 이야기를 듣고 오래 고민했다. 여성들만이 살아가는 공동체여서 부담이 되었지만 자키는 희귀병으로 일을 할 수 없는데 치료비는 엄청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있었다. 평생 치료를 받지 않으면 실명이 된다고 했고, 막막하기만 했지만 역시 열심히 알아본 끝에 은평성모병원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자키 역시 지금 재활 중이고, 수녀님들이 시작한 일을 돕기도 하며 함께 지내고 있다.

 

수녀님들은 지난 여름부터 공동체 재정 자립을 위해 초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주변에 학교가 많은 지역이라 떡볶이 집을 해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현존하면서 교회와도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해보라는 어느 신부님의 권유에 초 만들기를 시작했다. 푹푹 찌는 여름, 밥도 먹고 사무일도 하고 밤에는 잠도 자는 작은 방에서 견디기 힘든 더위를 견디며 초를 만들었다. 지금은 골목 한편, 비어있는 집 한 칸을 개조해 작업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초 만드는 것을 제안해준 신부님, 초 만드는 기술을 알려준 봉사자, 초가 타면서 복음 말씀이 드러나는 말씀초를 만들어보라는 아이디어를 준 신자, 오래된 빈집을 작업장으로 개조할 수 있도록 후원해준 의정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등 여러 고마운 이들의 도움으로 초 만들기는 계속되었다. 엘리사벳 수녀님이 공장장이 되어 까다로운 밀랍초 만드는 과정을 관리하고, 함께 사는 로안과 자키도 일을 거들었다. 정작 열심히 초를 만들었는데, 판로가 없어 고민했지만 대림 기간 의정부교구 내 여러 본당을 돌며 초를 판매했고 꽤 많은 수입을 얻어 로안과 자키에게 시급을 줄 수 있는 재원도 확보했다. 곧 공동체에 합류하는 우간다에서 온 싱글맘 크리스틴도 공동체에서 아이를 키우며 초 만드는 일을 같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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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만드는 작업이 한참 진행 중인 작업장 모습

 

김보현 수녀님은 초를 팔러 나가서 오히려 힘을 얻고 왔다고 얘기한다.

 

본당에 나갈 때는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각오를 좀 하고 갔는데 그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내리는 체험을 많이 했어요. 한 신부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도 자신의 집을 내어주지는 않았는데, 수녀님들은 자신의 집까지 내어준 사람들이라고 그런 얘기를 하면서 본당 신자들에게 초를 홍보하시더라고요. 그런 따뜻한 말씀들에서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어렵게 시작해 판로를 열어가는 중인 초 만들기 사업의 규모는 사실 아직 미미하지만 수녀님들은 앞으로는 지역 주민들과도 일을 통해 함께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이 이주민이든 난민이든 선주민이든 서로 만나고 환대하는 공동체, 같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동체로 나아가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되기를 꿈꾸기 때문이다.

 

“‘쉼터는 삶을 리셋하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쉼터가 자립할 수 있는 힘을 북돋는 공간이어야 한다고요. 저는 우리 집이 정말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자키는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세밀한 작업을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수거해 온 유리컵을 중탕해서 세척하는 작업이나 완성된 초를 포장하는 작업은 할 수 있거든요. 우리도 힘닿는데 까지 생활이나 의료비를 지원하겠지만, 언젠가 자키가 이곳을 떠나게 될 때 스스로 노동해 번 돈으로 자립을 위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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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초 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공장장 진은희 엘리사벳 수녀님 모습

 

오래전 퇴락한 골목에 살며 수녀님들은 수도복 대신 편안한 츄리닝 차림으로 살아간다. 엘리사벳 수녀님은 가끔은 수녀회 안에서 살아갈 때는 겪어보지 못한 일들도 경험한다고 얘기한다.

 

사복을 입으니까 아무래도 밖에 나가면 무시하는 투로 아줌마하고 저를 부른다던가,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있죠.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수도복을 입지 않고 살아가려는 이유는 수도복이 제공하는 보호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혹시 무시를 당한다면 우리도 똑같은 무시를 받기 위한 것이었고, 이 골목에 살아가는 어르신들과 같은 모습으로 그분들의 손녀, 딸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김보현 수녀님은 이곳에서의 삶이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수도자 개인은 가난하지만 수도 공동체는 공간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풍요롭잖아요? 이곳은 사는 곳도 초를 만드는 작업장도 너무 비좁아요. 공간적으로 가난한 셈이죠. 수도회 공동체에 살면서 넓고 쾌적한 공간을 누리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여기서 살아가는 것이 편안해요. 동네 사람들이 일부러 저희 집에 와서 두리번거리고 가세요. 그리고 우리에게 항상 뭔가를 주고 가고, 우리도 역시 바구니에 또 뭔가를 담아서 드리죠. 우리는 가난하지만 곳간에는 계속 뭔가 쌓이고 있어요.”

 

물론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에도, 수녀님들의 새로운 삶에도 도전은 있다. 내리는 비를 같이 맞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처절하게 깨닫는다. 몸이 아픈 이주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같이 아파하는 것도 굉장히 쓰라린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내 힘이 부족하구나 싶은 무력감을 넘어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나 싶은 존재론적 도전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어디까지 나를 열어야하는지 고민이 되기도 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열 수 있는 만큼 열겠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과 직면하는 것이 어렵잖아요? 저는 이 집에서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만 이상하게 나를 만나고 있습니다.”

 

 

녹취/기록: 김민SJ

정리/사진: 정다빈 멜라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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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은 빛을 이주민, 난민들이 쉼터에 머무르며 새 출발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함께 합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그들의 빛을 찾아가는데 함께해주세요.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에서 만드는 초는 천연밀납과 콩왁스로 정성껏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후원 및 제품 문의: 010-8430-0597, 010-9295-8126

후원 계좌: 국민 506501-04-479178 (보내는 이름 뒤에 '착한사' 라고 붙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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