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image

  

[이주·난민] 분투하는 개인에서 대화하는 공동체로, 레이보스 섬에서의 성찰

김건동SJ 121.♡.235.108
2021.12.22 17:54 2,385 0

본문

 

사본 -제목을 입력하세요 (7).png


어느새 대림절 후반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달 초,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소외되고 잊혀진 이들에 대한 당신의 관심사를 강조하시듯, 레스보스 섬을 방문하셨습니다. 철이 바뀌어 눈이 나리는 이 시절, 교황님의 소식을 들으며 문득 지나간 여름을 떠올립니다.


지난 여름, 921일에서 27일까지, 그리스 에게해의 레스보스 섬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 소재 Fachhochschule Würzburg-Schweinfurt (FHWS)에서 “International Social Work with Refugees and Migrants“ 과정을 걷고 있는 학생들과, 뮌헨 소재 예수회 대학인 Hochschule für Philosophie (HfPh), 그리고 저희 공동체 예수회 형제들과 함께 International Summer School Lesbos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난민을 주제로, 지난 해 불에 타서 없어진 모리아 난민 캠프가 있었던 레스보스 섬을 방문하여 학술 발표도 듣고 워크숍과 나눔도 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레스보스 섬은 갈라진 섬입니다. 현지인들은 난민들에게 우호적인 이들과 적대적인 이들로 갈라져 있고, NGO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난민 문제에 대한 입장이 달라서 갈라져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수용소에 가두는 방식의 난민 대책에 반대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그런 상태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 주어진 상황 속에서나마 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림3.png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많이 들었던 표현 가운데 하나는 역량 강화(empowerment)입니다. 난민들에게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의 효율적인 부품이 될 수 있는 기술만을 가르치기보다는, 이들이 스스로 목소리와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자각심을 주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는 난민 문제를 개인의 문제나 개인 구제의 차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난민 문제를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셨던 에게 대학(University of the Aegean) Nikos Xypolytas 박사님은 난민 문제의 정치적 성격에 대해서 크게 강조하셨습니다. 사실 과거 난민 문제는 냉전 체제의 정치적 대립 상황의 틀에서 다루어진 측면이 크다는 점도 배웠습니다. “억압적인 공산 독재 체제에서 빠져나오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적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뜻이 난민이라는 단어 이면에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이 변하면서 난민 문제의 성격도 바뀌었습니다.

 

 또 하나는 정체성(identity)에 관한 것입니다. “난민난민답게 행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이들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입니다. “난민은 무조건 불쌍해야 하고 도움을 청하는 입장에 있어야 하고 고분고분해야 합니다. 그들이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욕구를 당당히 드러낼 때, “난민이라는 틀에 벗어난 위험 인물이 되고 맙니다. “난민돕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과연 난민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상태로만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사실 난민들의 정체성은 우리들의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역량 강화의 중요성을 다시 상기합니다.

 (사진은 불에 타버린 Camp Moria 내부의 모습)

 

한편 우리는 난민 문제를 개인화(individualise), 의료화(medicalise)하는 경향성에 대해서도 주목하였습니다. 난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난민이 발생하게 된 곳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은 개개인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도록 만든 더 큰 차원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현재 유럽의 난민 정책은 필요에 따라서는 난민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혹은 다른 필요에 따라서 이를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하는 정치적인 문제이기보다는 난민 개개인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본질적인 차원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한편 난민들이 천신만고의 상황을 겪고 유럽 땅에 발을 딛고 나면, 이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의학적 상태에 처하는 것으로 치부됩니다. 얼핏 보면 수긍이 가는 표현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이 표현을 바라보면 또 다른 점을 알게 됩니다. 

 

먼저 “후(後, post)”라는 말은 소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난민 생산국들과, 이들이 목숨을 걸고 도달하려고 하는 유럽 등의 선진국들을 구분하는 표현입니다. 트라우마, 즉 정신적 외상은 글로벌 사우스에서나 겪는 일이고, 이제 트라우마 따위는 없는 유럽과 같은 치유의 땅에서는 그 의 상황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식에서 나온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난민들이 겪는 상황을 의료적인 차원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고, 아울러 이들의 상황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것의 연장선상에 놓인 시각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아와 타자를 구분하고 타자를 자신의 방식대로만 해석하는 태도도 포함하는 것일 것입니다.


결국 난민 문제는 개개인에 대한 동정이나 한때의 사회적 공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서 접근해야 합니다. 저는 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 고유한 개성을 지닌 개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난민의 지위를 지니고 살아가는 동안 개인적으로 사회에 적응해 가는 데 필요한 도움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난민 문제를 사회 시스템 차원에서, 더 나아가 공동체적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배웠습니다. 

 

아울러 난민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골치 아픈 문제로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 상황에 대하여 대화를 해 나갈 수 있는 지점을 찾고, 사회 구조 전체를 공동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함께 다가서고자 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난민들도 주체로서 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희는 조를 나누어 현지의 활동가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하였는데, 저희 조가 만난 분 가운데 한 분은 영국에서 오셔서 난민들을 법적으로 돕고 계시는 변호사, 다른 한 분은 그리스인으로서 난민들이 겪는 상황과 그들이 받는 처우를 외부에서 모니터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본래 1시간 정도 만나 말씀을 듣는 계획이었는데, 두 분 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 주셔서 저희들은 거의 2시간 가깝게 야외 카페에 앉아 질문과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열정을 보면서 자신을 소명의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 비록 난민 문제에 대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암울한 생각도 들지만, 이런 분들이 연대하시기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지 않은가 하는 감사한 마음과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림1.png

글을 마치며, 레스보스 섬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이미지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하루는 저희 그룹이 One Happy Family라는 NGO 단체를 방문하였습니다. 이 곳은 난민들이 제한적으로나마 주어지는 외출 시간에 찾아와 쉬거나 필요한 것을 배울 수도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 주는 곳입니다. 방문을 마칠 즈음, NGO 한 켠에 마련된 작은 이동식 도서관을 보았습니다. 녹색으로 칠해진 자동차에 도서관이라고 여러 나라 문자로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 안에 참으로 책이 들어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녹색 자동차 도서관을 보면서 이 상징하는 것, 즉 난민들에게 배움을 통해 힘을 키워 주고, 더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해주는 것의 가치를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함께 상상력으로 꿈꾸는 참으로 인간적인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요? 개인과 공동체가 균형을 이루며 사회 정의와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요? 대림절을 보내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로서 우리의 현실 속에 보이지 않게 오셔서 별 볼 일 없이죄수로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오신 길도 가신 길도 미미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드님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십니다. 비록 그 세상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고 오직 그분 만이 이루실 수 있지만, 그 세상을 꿈꾸고 그 세상이 이루어지는 데에 우리 모두가 참여할 수 있습니다. 대림절,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를 마음 속 깊이 되새깁니다.

 

(사진은 NGO 'One Happy Family'에서 본 이동식 도서관 모습)


 

 

 


 

202112월 대림절에

김건동 베네딕도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구글 애널리틱스